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율 Nov 01. 2020

3) 내가 아프구나

3장

한참 잠 때문에 사투를 벌이던 무렵이었다. 잠시 볼일이 있어 외출을 했는데, 버스에 올라탔을 때 갑자기 숨이 쉬어지질 않았다. 심호흡도 해보고 버스 창문을 열어 환기도 시켰는데 나아지질 않았다. 잠시 이러다 말겠거니. 라는 생각은 완전히 오산이었다. 


그 무렵, 나는 밤이를 혼자 돌보느라 심신이 매우 지친 상태였다.  밤이 두려워졌다. 잠을 잘 수 없는 하루하루가 내게는 점점 더 공포로 다가왔다. 거기에 끝이 보이질 않는 육아의 터널은 갈수록 나를 괴롭게 만들었다. 밤이는 무럭무럭 자랐지만, 나는 점점 더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고 있었다. 


혼자 힘으로 밤이를 키우면서, 나는 점점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도맡아 책임진다는게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님을, 나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진 거라고 가슴 깊이깨달았다.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런 어중간한 각오로는 몸이 쉬이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 바로 육아였다. 단순히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잠을 재우고 하는 육체노동 외에도, 아이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많았다. 그 모든 일이 누군가의 손을 통해서가 아닌 오로지 나 자신이 전부 감당해 내야 하는것이었다. 엄마로써 이겨내야 하는 것이었다. 


참... 많은 엄마들은 이 힘든 일을 묵묵히 감당하는 듯이  보였는데. 어째서 나는 이렇게 쉽지 않고 힘들기만 할까. 꾸역꾸역 힘을 내고자 마음을 먹어도, 약해진 체력과 멘탈로는 그걸 이겨내지 못한 자신이 서러웠다. 그러나 어쩌겠어. 내 몸이 그렇게 생겨먹은 걸.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걸.


결국, 인정하기로 했다. 



내가 아프구나.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나는 신랑에게 도움을 청했다. 신랑은 언제나 묵묵히 내 편이었다. 나의 힘듦은 이해해 주었고, 도와주고 싶어했다. 긴 상의끝에 나는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이 괴로움과 고통을 벗어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정신과를 간다는 게 나로써는 몹시 도전적인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조금이라도 나에게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용기를 낸 것이었다.


병원에서는 가벼운 우울증이라고 했다. 산후우울증이 이렇게 늦게 올수도 있는 건가 싶었다. 양상은 좀 다르지만, 어쩄든 아이를 돌보면서 병원에 오게 되는 엄마들은 많다고, 선생님은 친절하게 설명 해주시면서 약을 먹기를 권하셨다. 심하진 않았으므로 내가 먹는 약은 딱 하나였다. 약을 먹으면서 그동안 내 몸을 갉아먹던 우울한 감정은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대신 깊은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것과, 누군가의 말에 약간 늦게 반응한다는 것, 입이 마르는 증상들이 생겼지만, 가슴을 쿡쿡 찌르는 고통을 견디는 것보단 나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 시간이 지나고 나는 조금 더 내가 건설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말은, 다만 엄마로서의 삶만 살지 않겠다는 뜻과도 같았다. 내가 왜 이렇게 아프게 되었는 지를 생각해보면 답은 나왔다. 나는 내가 정체되어 있단 사실이 싫었던 거다. 그저 밤이를 보며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는 게 살아있지 않다고 느꼈던 것 같다. 즉, 나는 회복해 나아갔다. 스스로,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 과정에서 다시 시도해보고자 마음을 먹은 것이 바로 ‘일’ 이었다. 나는 다시 일을 하고 싶었다.


“밤이야. 이런 엄마라 미안해.”


온전히 육아.

일과 병행하는 육아.


너무 다른 길이었다. 밤이에게 미안하다 말했지만, 내가 잘못한 것 같지는 않았다. 난 좀 더 나다운 나로 밤이를 대하고 싶었다. 


때마침 우리 친정에서 편의점을 내게 되었다. 나는 기회가 생기자마자 덥썩 붙잡았다.  나가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답이 돌아왔다. 아이는 어떻게 하고? 우리는 상의를 했다. 그리고 친정 엄마를 소환했다.


시름시름 시들어가는 나를 뒤에서 지켜봐온 엄마. 엄마는 내 모습이 많이 안쓰러웠는지, 도와주시기로 결정 했다. (물론 약소한 성의는 우리 능력껏 드리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일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일을 위해 나가는 출근길의 공기가 그렇게나 반가울 수 없었다. 덕분에 나는 몇개월간 그렇게나 고생했던 우울한 감정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전 17화 2) 잠을 못자면 사람이 어떻게 되는 지 알아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