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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 Mar 16. 2016

나를 만나는 공간, 찬장

노선도 없이 걷는 한 걸음의 효율성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2년 만의 만남이었다. 이전 만남엔 인터뷰를 다니던 친구는 그동안 회사도 다녔고, 퇴사도 하였고, 자신의 영역을 갖춘 사업자가 되어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은 우리 둘 모두에게 많은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친구의 새 보금자리는 광교 신도시. 약속 장소였던 강남까지는 신분당선을 이용했단다. 중요한 건 아니 니 내색하진 않았지만 순간 의아했다. 신분당선은 강남을 지나 분당으로 내려가는데, 수원의 신도시인 광교로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디 가서도 방향 감각 없다는 소리는 듣지 않는 편인데 머리 속 내비게이션을 아무리 돌려도 신분당선과 광교가 연결되지 않았다.


수도권 전철의 2003년 9월 3일~2004년 1월 20일 사이의 지하철 노선도. 붉은 두 점이 각각 인천과 수원 (출처: 나무위키)
1호선 지하철 노선도. 붉은 두 점이 인천과 수원 (출처: 나무위키)


서울에 산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내 머릿속의 서울지도는 지하철 노선도 모양이다. 처음엔 행여 길을 잃진 않을지 지하철 노선도를 찢어지도록 펼치고 또 펼치며 위치를 확인하며 다녔었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서울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다녀야 함은 당연했고, 지하철에서 길을 묻자니 콧대 높은 서울깍쟁이들이 얕볼 것만 같았다. 매번 설 때마다 노선도를 펼쳐 확인 또 확인했다. 깜빡 잠들었다 눈을 뜨면 깜짝 놀라 다음 역을 확인했다. 내려야 하는 역에서 벨을 누르지 않았다는 생각에 잠시 등골이 서늘해진 적도 많았다. 길을 잃을까 무서워 짧은 거리도 걷지 않고 지하철을 탔다. 그렇게 입력된 탓인지 한 번 생긴 지하철 노선도 모양 서울 지리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광교는 수원이니 내 지도에서는 서울의 서편 끝자락에 있는 것이고, 분당은 강남의 아래이니 서울 남서쪽 하단에 위치, 둘은 서로 맞닿을 수 없는 공간에 있다. 그런데 신분당선이 광교로 통한다니, 그러려면 수원이 타원형으로 길 게이어 져 분당에 닿아야 했다. 집에 돌아와 지도를 확인하고서야 이해가 됐다. 서울의 남쪽에 성남, 그리고 그 아래가 수원. 노선도처럼 인천의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직사각형 서울 지도

사람이 세계를 인식할 때, 그것을 무슨 기준으로 받아들이는가는 중요하다. 그러나 처음에는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기도 벅차니, 그 기준에 대한 의문을 갖기란 쉽지 않다. 지하철 노선도를 안 보고도 그릴 수 있겠다 싶어 질 때서야 비로소 서울 여자가 된 기분이었으니, 노선도 자체가 미워질 일은 전혀 없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한 때 서울 지리 이해의 핵심 참고서였던 노선도가 이제는 원망스러웠다. 요즘 노선도는 많이 바뀌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10년 전의 노선도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 조금 서글프기도 했다. 그 시절 노선도 덕분에 묻지 않고도 서울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조금 헤매고 행인에게 물으며 다녔었다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지도를 가질 수 있지는 않았을까.


베트남 마이쩌우(Mai Chau) 동네 지도


여행을 하며 행인에게 길을 물으면,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안내한다. ‘쭉 가면 OOO라는 식당이 보이고, 그곳에서 오른편으로 들어가면 옷가게가 보이며, 그다음 블록 끝에 빨간 지붕의 집이 바로 그 가게다’는 식이다. 도심을 벗어날수록 설명하는 방법은 더 재미나다. 여행지 중 베트남 시골마을의 한 숙소에서는 동네의 나무들을 그림으로 그려지도를 만들어 내었는데, 알고 보면 꽤 정확하다. 물론 이방인의 눈에는 비슷한 나무들과 비슷한 집들인 데다가, 숙소 직원이 left, right를 헷갈린 바람에 반나절을 꼬박 논을 갈던 물소들과 헤매었지만, 다음날이 되어 다시 살펴보니 그야말로 정직한 지도였다. 지하철 노선도와는 달리 구부러진 길에 세 개의 집이 있다면 정말 그러했고, 나무가 하나라면 정말 하나였다. 숙소를 나서 처음 방향만 잘 잡았다면, 그 지도 하나로 그 동네를 활보하며 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지도는 현지인 직원이 직접 만들었던 것으로 자신이 뛰놀던 동네의 모습을 연상하며 그렸다고 했다. 그에게 그 지역은 속된 말로 ‘나와바리’ 였을 것이다. 작은 동네를 반나절을 헤맨 내가 관광객의 입장에서 그림을 그렸다면 나눠준 지도와는 또 다른 그림이 됐을 것이다. 수풀 더미에서 나무의 형새를 살피는 것은 어려우니 알기 쉬운 전봇대나 건물의 색깔 등을 위주로 말이다. 그것이 다른 관광객에게 통하는 방법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 나만은 그 그림을 보고 헤매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내 스스로의 경험만큼 비효율적이면서 효율적인 것은 없다. 오랜 시간이 걸리니 비효율적이지만, 같은 실수를 막아주니 효율적이다.


옷은 입어보고, 그릇은 써봐야 안다

나의 찬장에는 짝이 맞지 않는 그릇이 참 많다. 한식에는 오목한 그릇 이어 울린다거나, 파란색은 입맛을 떨어뜨린다거나 하는 조언들이 모였던 장소가 찬장이다. 내 살림을 꾸리기 전에는 마치 지하철 노선도처럼 어른들의 말씀과 잡지 속 이야기들에 의존했다. 밥공기, 오목 접시, 찬기 등을 세트로 구비했다. 그러나 밥보다 고기를, 나물보다 생풀을 좋아하는 나의 식성은 그들의 식성과는 달랐고 그러니 나의 편의와 그들의 편의는 달랐다. 이후에는 그릇을 하나씩 들이게 됐다. 그릇의 쓰임이란 미리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나의 경우엔 그렇지 않았다. 옷은 입어봐야 알고, 그릇은 써봐야 안다는 나의 신조가 생겼다. 그래서 이후엔 그릇을 하나씩 들이고, 잘 쓰이지 않는 것은 지인들과 나누거나 기부하거나 팔아서 공간을 아꼈다. 풍부한 시행착오를 통해 나에게 맞는 그릇들이 생겼다. 적어도 지금의 찬장은 나의 테스트를 통과한 조언들과 나의 경험이 모여있는 집합소다. 여전히 서울은 10년 전의 노선도 모양이지만, 찬장 속 살림들은 나를 기준으로 생성된 공간이다.


매일 쓰지 않는 컵은 먼지가 쌓일 수 있으니 정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오늘, 봄을 맞아 찬장 청소를 위해 그릇을 꺼내 닦아 넣으며, 그 그릇을 사고 써 온 시간을 생각한다. 무섭고 길게 느껴졌던 10년 전 서울의 거리, 헤매던 베트남의 시골길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길을 다시 걸었을 때 그것이 처음에 느낀 것처럼 길지 않았던 길이었음을 되새긴다. 노선도에 묻히지 않고 직접 한 걸음 떼어보면 시작의 불안함은 머지않아 나와바리가 되는 즐거움을 가져올꺼라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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