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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 Mar 02. 2016

소심한 사람이 전하는 결단의 과정

그릇도 사람도 갑작스러운 변화에는 탈이 난다

며칠 동안 알레르기로 고생했다. 굴러다니는 아무 화장품이나 발라도 탈이 없는 강인한 얼굴 피부와는 달리 그 외의 피부는 꽤 예민하다. 계절 변화, 새로운 화장품, 음식이나 생활장소가 바뀔 때는 꼭 한 번 씩 얼굴을 제외한 피부에 이상이 생긴다. 여행 중에 큰 돈 들여  마사지받고도 숙소에 오면 온 몸이 불긋해 비싼 화장품을 씻어내야 할 때가 태반이고, 안 먹던 음식을 먹었다 알레르기가 생긴 적도 많다. 이번에도 그랬다. 새로 쓰기 시작한 소스류 하나가 말썽이었는지, 피부에는 발진이 생겼다. 갑작스러운 식단 전환에 몸이 경기하는 거다. 무식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처음엔 적응되겠지 하며 새 화장품도 계속 바르고 새 음식도 계속 먹었다. 물론 증상만 악화됐다. 트러블이 생기기 전에 적응기를 거쳤어야 효과가 있지, 이미 생긴 트러블을 진정시키기는 어렵다.


언뜻 보면 그냥 하얀 듯 하지만, 가뭄의 논바닥처럼 자글자글 갈라져 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하는 건 사람이나 그릇이다 똑같다. 오래된 그릇을 쓰다 보면, 원래는 없던 각종 증상들이 생겨난다. 물리적인 충격에 의한 손상이 다가 아니다. 주변 환경의 변화에도 그릇은 꽤 민감하다. 요즘이야 신기술로 각종 처리를 한다지만, 50년 100년 전의 기술로 만든 빈티지 그릇들은 더 그렇다. 생각해보면 한 시대의 디자이너가 자연의 재료를 불로 구워낸 예술이니 이 그릇들은 미술관 혹은 박물관에 놓였어야 할 작품이기도 하다. 손상시키지 않으려면 다른 예술작품들처럼 늘 적정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겪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 쓰다 보면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때 생기는 가장 흔한 손상이 유약 갈라짐, 흔히 빈티지 수집가들 사이에서 크레이징(crazing)이라 불리는 증상이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생기는 그릇의 알레르기 '크레이징'


크레이징은 제작과정이나  일상생활에서 그릇이 급격한 온도 변화를 겪을 때 생기는 그물무늬의 패턴을 말한다. 그릇은 기본적으로 흙으로 빚고, 그 사이 유약을 발라 다시 구워 반짝이면서도 단단하게 하는 제작공정을 거친다. 흙과 유약은 따로지만, 고온으로 굽는 과정에서 화학작용이 일어나며 밀착한다. 그러나 이후 급격한 온도 변화를 겪으면 이 둘이 열에 반응하는 속도가 달라서 둘 사이에 균열이 생긴다. 비유하자면 마치 얼굴 위에 팩을 발랐을 때, 시간이 지나면 얼굴은 당기고 팩은 갈라지는 것과 같다. 


크레이징 없이 그릇을 쓰려면, 갑자기 뜨겁고 찬 것에 노출시키지 않아야 한다. 극단적인 온도 사이를 오가는 동안 그릇은 놀라 자빠진다. 오래된 찻잔은 쓰기 전에 예열이 필요하고, 세척할 때에도 찬물이나 뜨거운 물 보다는 미지근한 물로 헹궈주는 게 좋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너무 한 순간 갑작스러운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좋지 않다. ‘어제의 나는 없다. 오늘의 나는 어제와 다르다’는 건 멋있는 말이지만, 썩 건강한 방법은 아니다. 조금씩 생각에 변화를 주며 시간에 균열을 주었다가는 탈이 난다. 자칫 잘못하면 조증과 울증을 오가는 롤러코스터를 맛보기 쉽다.


뜨겁고 찬 온도를 갑작스레 마주하게되면, 유약은 이렇게 갈라져버리고 만다.


질리도록 성실한 3년의 고민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타인의 시선보다 그 목소리에 충실히 살아가겠다는 결심은 어느 한 순간 이뤄졌던 건 아니다. 뛰어난 용기를 가진 사람은 아닌지라, 결심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 퇴사는 3년 정도의 시간 동안을 고민한 결과였다. 곧 그만하겠다는 이야기를 지인들에게 계속 해댔고, 그들을 오랜만에 만나면 아직 다니느냐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그때마다 여전히 고민 중인 내 모습이 부끄러워 숨고만 싶었다. 한동안은 같은 말을 하는 것도 지겨워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피하기도 했다. 못  그만두겠거든 잔소리 말고 묵묵히 다니던지, 그것이 아니면 결단을 내려야 하거늘 질질 끄는 스스로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퇴사를 하고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답이 없었으니 고민 외에 달리 수가 없었다. 나는 기술도, 재주도, 특기도, 게다가 모아둔 재산도 없으니 바꺝 세상은 위험했고, 그 위험을 감내하기엔 용기가 없었다. 이 진동을 빠짐없이 매일 3년을 계속했다. 의도한 바는 아니나 질리도록 성실한 고민이었다.


갈라진 틈으로는 찻물이 배어들어, 찻잔의 크레이징은 적나라하게 보인다.


이곳에도 저곳에도 발을 붙이지 못한 채 공중 부양하는 기분으로 장시간 지내는 것은 지금 와서 생각해봐도 괴로웠다. 그러나 꾸준히 고민하는 것은 마음의 변화를 관찰하는데 도움이 된다. 매일 같은 고민을 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주 그렇지만은 않다. “이것은 내 길이 아니다 ▶ 내 길을 가고 싶다 ▶ 내 길은 무엇인가 ▶  잘 하는 것이 없다 ▶그럼 무엇을 좋아하는가 ▶ 좋아하지만 특별한 것은 아니다 ▶ 특별해야만 의미 있는 것인가 ▶ 그렇지 않으면 나가서 굶어 죽는다 ▶ 왜 굶어 죽는가 ▶ 남들도 하는 것 적당히 해서는 망한다고들 하더라 ▶ 한 번 망하면 죽나 ▶다시 경제활동인구가 될 수 있는 기회는 그걸로 정말 끝일까” 매우 간단히 추려야 이 정도의 패턴이다. 


갈라진 틈 사이로는 음식물이 배어드니, 크레이징이 생긴 접시는 버리거나 관상용으로만 써야한다.


소심한 사람이 전하는 고민의 팁


오랜 시간 고민의 끝에 나는 이게 끝은 아니라는 믿음을 발견했고, 그래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아 변화를 시도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할 수만 있다면 나는 뛰어난 자의식을 가져 ‘이건 아니지’ 결단을 빨리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부끄러워 배달 주문전화도 걸지를 못하니, 굳이 따지자면 소심한 편이다. 그러니 오랜 시간 고민하는 것이 나의 속도에 맞다. 예열에 예열을 거쳐야 크레이징이 없는 그릇이 나다. 그러나 소심한 사람의 특징 중 하나는 끝없이 고민하고 끝없이 타인을 관찰하며 추측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조금 수정하니 뫼비우스의 띄 같은 고민의 고리를 끊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고민의 과정에서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자는 다짐이었다. 소심하게 매일매일 고민하되 논문을 쓰듯, 논리에 집중했다. 감정에 휘말리기 시작하면 결국은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지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감정을 배제하고서 남의 이야기처럼 나의 소리를 듣고 질문하길 반복하다 보면, 조금씩 고민에 진전이 생기는 것 같았다. 꽤 흘러버린 시간이 아쉽긴 하지만, 덕분에 퇴사라는 변화 이후에도 튼튼하게 살고 있다. 느려 터진 나의 소심한 시계 때문에 삶의 온도를 바꾸는 데 오래 걸릴지도 모르겠지만, 내 그릇을 더 오랫동안 튼튼하게 쓸 수 있는 나의 방식임은 틀림없다. 지긋지긋한 고뇌의 시간이지만 역시, 헛된 시간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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