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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 Apr 15. 2016

낯선 것에 대한 찬양

낯선 경험은 일상에 꽃바람을 실어온다

일상(日常):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


나의 일상은 이렇다. 아침에 눈을 뜨고 고양이 자세로 기지개, 화장실에 갔다가, 냉장고를 열어 아침을 준비한다. 뉴스를 보며 식사를 하고, 싱크대에 그릇을 넣은 후 샤워 시작한다. 젖은 머리를 타월로 말아 올려두고 로션을 바른 후 타월이 물기를 빨아먹을 동안 설거지를 한다. 그릇 정리가 끝나면 머리카락에 남은 물기를 탈탈 털어낸 후 드라이로 마저 말린다. 그 사이 로션이 스며들었을 테니 선크림을 올려 바르고, 옷을 갈아입고서 지갑, 립밤, 핸드크림이 잘 들어있는지 확인한 후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다. 보통은 지하철을 이용해 이동하고, 외출 후에는 아침의 역순으로 하루를 정리한다. 손을 씻고, 세수만 간단히 하고 나와 로션을 바르고 마른 그릇을 꺼내 다시 식사를 차리고, 밥을 먹고선 샤워, 샤워 후 설거지가 이어진다. 아침식사에 필요한 것들을 미리 정리해 냉장고에 넣어두고 화장실에 들렀다 잠시 몸을 늘려주는 간단한 스트레칭 후 잠을 청한다.


출근해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상적인 업무의 흐름이라는 게 있다. 일 자체도 큰 틀에서는 변하지 않는다. 첫 출근, 첫 업무. 처음이라는 단어가 붙는 일주일, 길어야 한 달. 높은 곳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볼 때 심장이 간질거리는 듯한 떨림은 딱 거기까지다. 연차가 쌓이면 일하는 요령이 생기니 적응하는 시간도 줄어들어 한 달 일하고선 삼 년 일한 사람처럼 업무도, 인간관계도 유들유들해진다. 다시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같은 생활의 반복이 이어진다.


발트해를 낀 헬싱키의 바닷가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한 생활, 누군가는 이것을 안정이라 할지도 모른다. 매일 같은 사람과 같은 분위기 속에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여가를 즐기는 것을 말이다. 요즘 같은 봄날 햇살을 만끽하며 평지를 걷다 보면 안정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계속 그렇게 걷다 보면 지겹고 심심해진다. 어느 한 순간은 뛰고 싶고, 산에 오르고 싶고, 강을 건너 보고 싶어 진다. 오랜 연애를 했던 사람들이 이제 사귄지 한 달인 커플을 바라보는 마음은 꼭 부러워서가 아니라, 그들 사이에 남아있는 낯선 감정이 그리워서다. 서로 다른 사람이 만나 같은 점을 발견하고 하하호호 즐거울 때다. 누군가를 오래 만나다 보면 다름에서 같음을 찾는 것이 아니라, 같음 속에 다름을 발견하며 이런 사람이었느냐 놀라워할 때가 많다. 



어른이 되어 갈수록 낯선 것이 줄어든다. 아이들은 해가 바뀌면 친구도 바뀌고, 선생님도 바뀌고, 그에 따라 삶의 형태가 바뀐다. 학년이 바뀌어 새 교실에 들어갔을 때의 긴장과 떨림은 약간의 스트레스를 줌과 동시에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어른은 다르다. 만나던 친구들을 만나 가던 식당에서 수다를 떠는 것이 힐링이다. 매년 연말이면 나는 그 해에 새로 사귄 친구들이 누가 있는지 떠올리며 나의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지 체크하는데, 그 숫자가 매 년 점점 줄었다. 어릴 때는 지방 세포의 개수가 늘고, 어른일 때는 세포 크기만 커졌다 작아졌다 한다던데, 생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사람보다는 이미 쌓인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해나가는 것이 어른의 세계다. 새로 만나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은 내가 새로운 경험이 줄어든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은 큰 기대 없이 그냥 살면 된다. 먹고, 자고, 일하는 것을 반복해가며 취미생활도 하나쯤 운동도 하나쯤 하며 오랜 사람들을 만나 함께 먹고 자고 일하면 그만이다. 틀림없이 행복한 생활이다. 그러나 한결같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낯선 감정이 그립다. 처음 접하는 것 앞에 느껴지는 경계심, 긴장감, 스트레스가 그립다. 동시에 낯선 환경에 아이처럼 자주 노출되지 않으니 그를 더욱 경계하게 된다. 훈련되지 않은 근육이 쓰일 때 근육통이 오는 것처럼 말이다. 어른의 세계에는 낯섦에 대한 그립고도 두려운 이중 감정이 작용한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


이 때문에 여행을 떠난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 낯선 환경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나를 다시 아이처럼 만든다. 하나부터 열까지 새롭고, 배워야 할 것들이다. 불편한 것은 당연하다. 여전히 상대 나라의 이민국을 거칠 때는 긴장 속에 애써 웃음 지으며 여권을 건네고, 공항에서 나와 숙소까지 가는 길에서는 내내 지도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숙소에 도착하면 예약이 잘 되었을지 걱정이고, 무사히 방문을 열어 앉을 때가 되어서야 숨을 몰아 쉬며 ‘드디어’ 도착했다 안도한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아무런 의미 없던 길들이 여행을 떠나면 모두 새로운 길이 되어 숙소라는 임시 보금자리가 유일하게 일상을 지속하는 공간이요, 나머지는 모두 낯선 곳이니 이것이 그립던 그 감정이다.


또한 낯섦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것이 여행의 힘이다. 버스와 택시의 모양도 다르고 버스 손잡이의 모양도 다르다. 표지판과 신호등도 다르고 길에 깔린 차들의 형세도 다르다. 숙소를 나서 길을 잠시 걷기만 해도 낯선 것들이 천지에 깔렸다. 그리고 낯선 것들에 손을 뻗어 본다. 입지 않던 스타일의 옷도 사보고,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먹어보고, 쓰지 않던 그릇을 써본다. 잘못 들어선 골목 조차도 즐겁게 걸어본다.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주문해 옆자리 노인처럼 즐겨보기도 한다. 낯선 체험 중에 간혹 현대자동차가 지나간다거나, 식당에 달린 텔레비전이 삼성이라던가 할 때는 괜히 반갑다. 마치 상대방의 말에 손뼉 치며 ‘저도요.’ 하는 말이 절로 나는 예감 좋은 소개팅 자리처럼 말이다. 도심이면서도 데이터가 터지지 않는 지역에 있다 보면, 한국의 빠른 통신망이 몹시 그리워지기도 한다. 다른 곳에서 같은 점을 발견하는 즐거움. 지겨웠던 일상의 재조명. 낯선 체험의 가치는 이런 것이다.



여행지에서 눈을 뜨면 내가 언제 회사를 다닌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인데, 돌아오면 또 귀신처럼 잊고 내가 언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나 싶어 진다.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여운이 좀 더 오래갈까 궁금했는데, 그렇지도 않다. 다시 아침에 눈을 뜨고 고양이 자세로 기지개, 화장실에 갔다 아침을 준비하는 일상으로 복귀하는 순간 익숙한 감각들이 다시 깨어난다. 습관이란 무섭다.


여행을 마치고 열흘 남짓이 지난 엊그제, 5분이면 될 거리를 버스를 잘못 타 20분이 걸려 목적지로 향했다. 약속이 있었던 것도 아니면서 시간을 날린 기분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처음 가보는 골목골목이 매우 낯설고, 무언가 크게 잘못되는 것만 같았다. 고작 15분 차이이지만 모르는 길이니 그 15분이 굉장히 길게만 느껴졌다. 버스 노선을 인터넷으로 열심히 살피며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잠시 고개를 드니 창 밖으로 벚꽃이 가득했다. 올해 꽃놀이를 한 번도 하지 못했는데, 잘못 탄 버스는 여의도 윤중로를 경유하는 것이었다. 아. 잠시 창문을 열어 벚꽃이 섞인 그 공기를 한껏 마셨다. 낯선 경험은 일상에 꽃바람을 실어다 주는 것이다.


우연히 들른 헬싱키 레스토랑에서의 만찬
나의 생애 첫 유리 접시


집에 돌아와 여행에서 사 온 유리접시를 꺼내 들었다. 평소 유리로 된 그릇은 깨질까 무섭고 그 차가움이 싫어서 웬만해선 쓰지 않았는데, 이번 여행에서 조금 달라졌다. 여전히 추웠던 헬싱키의 그 날, 바닷가 산책을 마치고서 들어간 식당은 사방을 둘러 유리로 창을 낸 곳이었다. 유리를 통해 들어온 햇살은 따뜻했고,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는 그 빛을 반사해 근사한 분위기를 냈다. 메뉴판이 등장하고 안 것은 이 곳이 프랑스 요리를 주로 하는 레스토랑이라는 것이었다. 전 세계 어딜 가도 프랑스식은 꽤 고가다. 기분파가 되질 못한 탓에 여행 중에도 먹고, 마시고, 체험하는 데 드는 비용이 합리적이지 않으면 뿌리치는 편이지만, 이번엔 온몸이 언 터라 장소를 옮기긴 어려웠다. 마음이 통한 건지, 운이 좋았던 것이었는지, 다행히도 그때는 매우 합리적으로 코스 요리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고 주저 없이 주문했다. 첫 요리가 식탁에 내려지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투명한 유리그릇은 마치 짜임이 있는 듯 하니 훨씬 튼튼한 느낌이었고, 그 위에 얹어진 오리 가슴살 요리는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의 조화였다. 이런 맛이 있구나. 유리접시는 이런 매력이 있구나. 이 날을 기념하며 나는 내 생애 첫 유리접시를 들였다. 접시 위에 케이크 한 조각을 즐기니, 열흘 전 그 식당의 모습이 떠오른다. 낯섦을 대하는 나의 잠자는 근육들이 조금은 깨어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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