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 사이에 스민 엄마의 시간이 내게 온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엄마가 보낸 택배가 왔다. 손으로 뜨개질을 해 내 옷을 만들었다 하였으니, 궁금해 미칠듯한 나는 밭에서 감자를 캐듯 두 손으로 테이프를 헤집어 뜯어내 고이 접힌 니트의 어깨를 잡아 올렸다.
역시!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가 떠준 스웨터와 엄마가 만들어준 목도리로 겨울을 난 나는 이 모녀의 솜씨를 잘 안다. 용불용설이라고, 주는 것만 넙죽넙죽 받아먹던 나의 손은 대를 이어 손재주를 발달시키진 못했지만 대신 나는 매의 눈으로 예쁜 것을 찾아, “엄마, 나 이거” 슬쩍 들이민다. 그림이든 사진이나 영상이든 온갖 방법으로 자료를 보내며 만들어 달라는 무언의 압박을 넣는다.
이번도 그랬다. 일주일 전 들른 옷가게에 보헤미안 스타일의 조끼가 눈에 들었고, 나는 옆에 있던 엄마에게 또 한 번 눈빛을 날렸다. “엄마, 나 이거.”
들어가는 공력이며 실 값이며 단순한 숫자놀음으로만 보면 옷은 사 입는 편이 훨씬 이득이다. 그냥 손으로 집어 들고 계산만 하면 내 것이 되니 가장 빠른 방법이면서 한 치의 오차 없는 정확한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도 수천수만 장 똑같은 것과 엄마가 나를 위해 만들어 준 세상에 단 하나인 옷의 가치가 같을 수가 없다. 생각 없는 기계가 입력한 값에 맞추어 결괏값으로 찍어낸 물건은 사람의 눈길과 체온으로 만든 물건과는 차원이 다르다.
옷을 입을 때마다 나는 역으로 엄마가 쏟은 시간을 상상한다. 일단 동네 뜨개방에 가서 적절한 실을 고르며, 이 실타래 저 실타래 서로 겹쳐 색감이 어울리는지 살폈을 거다. 이 옷을 검정 옷과 매치해 입을지 혹은 흰 옷과 매치할지 엄마가 아는 나의 옷장 문을 머릿속으로 수없이 열고 닫으며 생각했을 거다. 무심하게 드라마를 보면서도 엄마의 손은 움직이고, 그 손 끝에서 실은 조금씩 옷으로 태어났을 거다. 완성하고서는 전신 거울 앞으로 걸어가 이리저리 대어보고 갸우뚱하다가 잡지의 한 컷처럼 방바닥에 옷을 늘여놓고 매치해보았을 거다.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아 뾰로통 해지지만, 그래도 내가 입겠다니 다음날 아침 우체국 문이 열자 마자 가장 빠른 등기로 보내 놓고 내게 전화를 걸었을 거다. 옷을 입으면 실과 실 사이에 스민 엄마의 시간이 내게 온다.
그냥 적당히 사면될걸, 눈 침침하다는 엄마를 이렇게 고생을 시켰나 불효자는 울면서도 막상 상자를 받아 열어보면 경박한 엉덩이를 실룩실룩, 철없이 춤추는 것이 또 자식인가. 실과 실 사이에 손가락을 끼워 넣어 여기 머물러 간 시간을 손가락 사이에 꿰어 본다.
※ 삼청동 코지홈과 공동 기획하여 추구하는 가치를 담아 작지만 야문 매거진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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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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