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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 Aug 07. 2017

우리는 왜 초록을 곁에 두는가

우리 모두를 보듬어 줄 따스하고 넓은 품

한 달에 한두 번은 꽃시장에 갔다. 전문적으로 꽃을 다루는 사람이 아닌 내게도 커다란 홀을 가득 메운 다양한 색과 모양과 향기는 풍성한 감정을 즐기게 하는 장소다. 단순히 꽃을 사려는 목적이라면 동네 꽃집을 찾는 것이 쉬운 방법이겠지만, 시장에는 볼거리도 배울 거리도 많다. 나와 같은 아마추어는 상대해 봐야 별 수입이 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건 이름이 뭐예요? 언제 많이 나와요?’ 물으면 친절한 답이 돌아왔고, 핸드폰 메모장을 열어 어려운 이름들을 적어두었다 마음에 드는 꽃은 두 번 세 번 입술을 움직여 되뇌었다. 마치 이상형을 찾아 소개팅에 나가듯 시장을 찾다 보면 취향에 맞는 꽃, 내게 어울리는 꽃, 우리 집에 두면 더 예쁠 꽃을 고르는 눈이 생긴다. 


그렇게 한 단씩 신문지에 둘둘 말아 가져온 꽃은 잎을 떼고 적당한 길이로 손질해 화병에 꽃아 두는데, 작은 방 안에나 외에도 아름다운 생명이 있는 기분이 제법 좋다. 텅 빈 집이 아니라 꽃이 있는 집, 자기 전에도 아침에 눈을 떠서도 발견하는 예쁜 무언가에 마음이 조금은 더 보드랍고 하늘거린다.



여행지에서 잠시 머무를 숙소에도 근처 꽃시장을 찾아 꽃을 묻고 산다.



그러나 그것도 여름이 오기 전까지다. 더위가 시작되면 꽃을 가까이하기가 어렵다. 내가 사는 오피스텔은 여닫이의 창을 열어봐야 고작 10cm 열리는 데다, 한쪽에만 창이 나 있으니 맞바람이 치질 않아 환기가 어렵다. 게다가 한쪽 면은 가득 유리창이다. 유리벽 밖을 훤히 내다보긴 좋아도 여름날 긴 햇볕이 그대로 들어와 방의 공기를 덥힌다. 정체된 뜨거운 공기 아래 꽃은 하루 저녁이 지나고 나면 이내 스러져 붉은 잎도, 하얀 잎도, 분홍 잎도 모두 길바닥의 담배꽁초처럼 누렇게 지고 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번 여름엔 커다란 야자수를 한 묶음 들였다. 하늘하늘 꽃잎보단 솟아나듯 단단한 줄기와 잎을 가진 초록은 ‘시원한 여름’이라는 불가능한 개념을 거뜬히 구현했다. 누워서 올려다보면 동남아의 해변에 온 듯하고, 어쩌다 잠시 눈을 맞추면 얼음이 가득한 파인애플 주스를 한 잔 들고 훌라춤을 추는 듯 경쾌했다. 고향 땅에 비하면 이쯤의 무더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씩씩한 야자수 한 다발은 그렇게 두 달을 더 함께했다. 


이후 빈자리는 크고 넓적한 잎사귀가 매력적인 몬스테라가 대신했는데 그것도 벌써 3주 전의 이야기로, 짙은 초록의 힘을 여전히 뽐내듯 온 방에 퍼뜨리고 있다. 심지어 이 녀석은 화병에 꽂는 데서 끝이 아니다. 잘 보살핀 몬스테라는 절단된 줄기 끝에서 뿌리가 자라 화분에 심을 수도 있다니, 매일 같이 물을 갈고 잎에 쌓인 먼지를 닦아내며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그 끝을 섬세하게 관찰한다. 뿌리야 나와라, 우리 집에 같이 살자.



...



함께 지내보니, 초록은 무척 강하다. 수많은 꽃들이 스러져간 그 자리를 초록은 책임지고 지켜낸다. 자연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데칠 듯 펄펄 끓는 물이 솟아오르는 온천 주위에서도 풀은 자라나고, 살을 에는 극지방의 추위에도 초록은 기어코 그 팔을 땅 밖으로 뻗는다. 바위틈의 몇 줌 되지 않을 흙에서도 소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건물의 갈라진 틈바구니에서도 풀이 자란다. 질리도록 끈질기고, 미련하도록 성실한 생명. 그것이 마치 주어진 숙명인 양 초록은 기어이 뿌리를 내린다. 그렇게 살아 남아 다른 동물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한다. 숨 쉴 수 있는 산소를 주고, 살 수 있는 먹이가 된다. 인류의 기원도 초록 덕분이지 않은가. 미국립과학원은 이끼의 존재가 이후 고등동물의 출현에 기여하였음을 알리는 연구를 소개했다. 4억 7천만 년 전 이끼가 증식하며 지구에 처음으로 안정적인 산소공급이 가능해졌다는 것이 핵심이다. 초록은 아무도 없는 불모지에 홀로 가 땅을 개척하고 후발주자들을 따스히 끌어안는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이 곳은 안전해.’ 초록은 이렇게 우리에게 편안함과 안정, 휴식을 준다. 사람이 초록을 찾는 것은 본능적이다.




18세기 말 서양 사회에서 초록에의 열망은 돋보인다. 산업 및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도시가 발달함에 따라 언젠가는 매일 곁에 있던 자연에서 멀어지다 보니, 그와 접촉하고자 하는 욕구는 더 강해져 예술계에서 전원시, 전원 풍경의 그림 등이 인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명제로 유명한 루소의 자연주의 사상도 이 시대의 반영이다. 


2017년, 우리는 도시가 잃어버린 초록을 또 한 번 찾고 있다. 세계적인 색채연구소 팬톤(Pantone)은 매 해 그 시대의 사회현상을 살펴 사람들의 태도와 감정을 대변할 수 있는 색을 선정해 ‘올 해의 컬러’로 소개하는데, 2017년의 색은 그리너리(greenery)였다. 분열과 대립이 가득했던 2016년에서 회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쌓아 나가고자 하는 생명과 열정, 안정의 욕구를 반영했다. 패션쇼 런웨이는 초록으로 가득했고, 식물을 활용한 실내장식이 유행하며 인테리어에 민감한 카페들은 초록으로 뒤덮였다. 치열하게 살아온, 그럼에도 미래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어 불안한, 일상에 기댈 곳이 없는 현대인이 그래도 잘 살고 있다는 위안, 이제 괜찮다는 위로, 그리고 내일을 향한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곳. 결국 우리 모두를 보듬어 줄 따스하고 넓은 품을 찾아 우리는 초록을 곁에 두고 싶은 것이 아닐까.







※ 삼청동 코지홈과 공동 기획하여 추구하는 가치를 담아 작지만 야문 매거진을 만들고 있습니다.

     코지홈 블로그 blog.naver.com/cojeehome







YUL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중요한 가치는 일상에서 실천하고 싶습니다.

블로그 : blog.naver.com/yulscountry 
인스타그램 : @withtp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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