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진다는 것
사람이 가장 마음으로 느끼는 컬러가 있다면 그것은 블루다. 푸른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파란 하늘을 올려다볼 때, 차분하고도 날카로운 이 색은 그를 바라보는 이의 답답한 가슴을 뚫고 지나니 시원하고 상쾌하다. 때로는 너무나 관통해버린 나머지 더욱 깊은 마음속 저 안쪽에 차디 차게 얼어붙은 눈물, 슬픔과 우울을 마주하게도 한다. 그러나 마냥 슬픔에 잠기게 하지만도 않는다. 다시 앞을 보고 희망을 읽고 나아가게 하는 것 역시 블루의 힘이다. 사람의 복잡한 내면이 스며 있는 자연의 색, ‘블루’는 그저 눈으로 살펴서만은 얻을 수 없는 색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그린이다.
이 작은 그린 안에 하늘의 색이 숨어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한국에서도 푸른빛을 내는 데 ‘쪽’이라 불리는 식물이 사용되었지만 가장 짙고 깊은 푸름을 많이 간직한 것은 열대 지방에, 그중에서도 인도에서 많이 자라는 ‘인디고 페라(indigofera)’였다. 때문에 인디고 페라는 트루 인디고(true indigo)라 불리기도 한다.
기록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이미 4천 년 전부터 고작 무릎 높이가 될까 말까 한 이 식물을 염료로 사용했으며 이집트로 수출해 하늘의 색을 전했다. 이집트에서는 이렇게 얻은 블루로 죽은 자의 신성함을 기리고 추모의 의미를 담아 직물을 염색했고, 이것으로 미라를 감싸기 위한 마포를 만들었다고. 우리의 쪽도 인도와 중동에서 중앙아시아, 중국으로 전해진 것이 원류다. 이 초록이 푸름을 품고 있음을 인류가 어떻게 알게 됐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모든 발명이 최초에는 발견이었던 것처럼, 이것도 어느 비 오는 날이 가져다준 우연이 아니었을까. 속내를 알 수 없었던 사람과도 무언가가 계기가 되어 그 안에 감춰진 모습을 발견하고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듯이.
이 작은 초록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속에 간직했던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인디고 페라는 너른 웅덩이에 몸을 푹 적신 채 실온에 하루에서 이틀 정도의 시간이 지나서야 발효의 과정을 거치며 꽁꽁 담아둔 푸른빛을 토해 낸다. 자신의 일부를 꺼내 그를 둘러싼 물에 풀어낸다. 속마음을 털어놓기가 어려운 것은 사람이나 초록이나 매한가지인가.
투명했던 물빛이 푸르러지면 남은 그린은 모두 건져낸다. 이제는 언젠가 푸른 바닷속에 살던 굴 껍데기와 조개껍데기가 도울 차례다. 굴과 조개껍데기를 고온에 구워 부수어 얻은 소석회는 강한 알칼리성을 가져 물속을 떠도는 염료를 덥석 껴안는다. 이 둘이 더욱 가까워지도록 물을 젓고 또 저으며 아래쪽의 물을 끌어올리듯 고무래질을 계속하면 이 둘의 관계는 산소의 작용과 함께 더욱 단단하게 굳어진다. 연녹색의 물빛은 점점 더 푸르게 변한다.
잘 저은 푸른 물을 또 하루 이틀 내버려 두면 회오리치던 물은 금세 잔잔함을 되찾고 침착하게 스스로 입자를 걸러낸다. 염료와 결합한 석회는 일종의 앙금이 되어 바닥으로 가라앉고 물은 점점 맑아진다. 이렇게 가라앉은 앙금을 건져내면 일본에서는 스쿠모라 불리는 인디고 페이스트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우리의 전통 염색에서 일컫는 니람이다. 비로소 인디고가 탄생하는 것. 물감의 격인 이 니람이 가공되어 수천 년 전에도 지금도 저 멀리 수출되고 수입되는 것이다.
니람을 얻었다면 염색은 이제부터다. 직물이든 무엇이든 염색하려는 대상에 푸른색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석회와 염료가 서로를 끌어안은 두 손을 조금씩 느슨히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 이때 쓰는 것이 잿물이다. 산성인 잿물이 앙금을 분해시키는 원리인데, 색소를 우려내고 건져냈던 인디고 페라를 잘 말리고 태워 만든 잿물을 쓰기도 하고 다른 나무를 태워 만든 것을 쓰기도 한다. 잿물을 구비하기 어려울 때나 아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는 설탕이 같은 역할을 한다.
앙금과 잿물, 혹은 앙금을 설탕물과 잘 섞으면 염료는 다시 물에 용해되고 이 물에 염색하려는 직물을 넣으면 물속에 떠돌던 염료가 직물에 스며들어 안정을 찾는 것. 니람을 얻는 과정에서 고무래질을 하며 산소를 물속에 공급하니 물빛이 달라졌던 것처럼, 직물은 물속으로 잠수했다 공기 중에 숨을 쉬었다 자맥질을 반복하는 동안 공기와 접촉하며 산화되어 점점 색이 변한다. 초록빛인 듯 푸르렀던 직물은 점점 그 푸름이 짙어진다. 반복할수록 그 푸름은 더욱 짙다.
원하는 색을 얻었다면 이제는 그 색을 직물에 고정시킬 차례다. 수일간 물에 담그고 헹궈 잿물 등의 이물질을 제거하고 햇볕에 잘 말리는 것. 산성과 알칼리성을 왕복하던 직물은 중화되어 모든 격동의 시기를 뒤로 하고 안정을 찾는다.
마음을 전하려면 먼저 나 자신이 천천히 조금씩 나를 풀어내야 한다. 누군가의 진심을 알고자 한다면 나 스스로가 온몸을 적셔 그 마음을 받아주어야 한다. 물아래와 물 위를 수백수천 번을 오가듯 우여곡절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진다는 것은 그런 것. 어려움을 함께하다 보면 새하얀 천이 푸르러지듯 서로의 색이 닮아진다. 눈에 보이는 초록이 아닌, 그 마음에 담긴 푸름으로 아름다워진다. 푸름에서 초록을 보고 그린을 보며 블루를 떠올릴 수 있는 지혜, 하늘과 바다의 색을 담는다는 것은 이러한 지혜를 얻는 과정인 것도 같다.
※ 삼청동 코지홈과 공동 기획하여 추구하는 가치를 담아 작지만 야문 매거진을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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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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