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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l Apr 19. 2018

우리 집 아가베의 옛날이야기

술이 되었다가 바구니가 되었다가... 또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실내 식물로 많이 키우는 아가베 아테누아타



어딘가 모르게 은은한 빛을 내뿜는 것 같다. 어느 고운 노인의 은발처럼 잔잔하고도 다정한 빛이다. 퉁퉁한 줄기에서 태어난 초록도 아가아가 하지 않은 의젓함을 풍기는데, 집안의 어느 한 벽면은 이런 색으로 페인팅해도 좋겠다 싶게 차분하고 경쾌하다. 90년대의 많은 가정집에 키우던 알로에를 떠올리는 이 초록은 아가베(agave), 용의 혀를 닮았다 하여 ‘용설란’으로도 불리는 식물이다. 상상 속의 영물이 용이니 그 혀를 누가 직접 볼 수야 있었겠느냐만 신비로운 색감에 기다란 모양, 종에 따라서는 가시도 돋아 있다니 전혀 설득력 없는 이야기만도 아닌 것 같다.   



요즘에야 실내 식물로 많이 기르지만, 아가베는 본디 멕시코 서쪽에 자생해 왔다. 영어의 illustrious(저명한, 빛나는)에 해당하는 고대 그리스어 agavos에 어원을 둔 이름인데, 많은 식물의 이름이 그러하듯 이름을 붙인 학자가 이 식물의 외관에서 떠오른 직관적 느낌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현지에서는 마게이(maguey)라 불린다.



아가베는 마야우엘 여신의 상징물이다 / 출처: thoughtco.com




인류는 약 1만 년 전부터 아가베를 식용으로 이용해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13세기부터의 아즈텍 문명의 사료에서 흔히 등장하는데, 이는 술과 환각제의 여신인 마야우엘(Mayahuel)의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부 지역에서 아가베는 경배의 대상이기도 했다고.


왜 술과 환각제인가에 대해서는 현지의 전통문화가 뒷받침한다. 이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아가베의 수액을 발효시킨 음료를 신에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종교적 용도로 혹은 고통을 잊게 하는 의학적 용도로 사용해왔기 때문인데, 이것이 발전해 오늘날의 데낄라가 됐다. 데낄라는 블루 아가베라 일컫는 아가베 데낄라나(Agave Tequilana) 종을 사용한다.


한편 식용으로는 덜 쓰였던 몇몇 종은 그 섬유가 가진 질긴 성질에 기반해 노끈이나 텍스타일로 가공됐다. 특히 가장 흔하면서도 질긴 아가베 사이잘(Agave Sisal) 종은 인디언들이 즐겨 써 온 소재다. 식물의 몸체에서 섬유는 세포벽의 주성분인 셀룰로오스가 배열된 형태로 식물체를 지지하고 보호하는 동시에 영양과 수분을 나르는 통로로 활용된다. 밖으로부터의 공격을 막고 내부의 안녕을 도모하는 일종의 성벽이자 생명의 끈인 셈이다. 어느 동물의 먹이가 되더라도 식물의 섬유질은 소화하기 어렵고, 오랜 삶을 살아온 식물일수록 그를 지키는 섬유 역시 더욱 질기다. 



톱니바퀴를 통과하며 사이잘 섬유가 추출되고 있다 / ⓒ Celestyn Brozek



섬유를 추출하는 과정 자체는 단순하다. 특히 요즘에는 공정화되어 더욱 단순해졌는데 채취한 잎을 기계에 올리면 커다란 톱니바퀴 사이를 통과하며 마찰을 일으켜 섬유질을 노출시키고, 이를 다시 두드리고 물에 씻어내며 남은 과육을 깨끗이 제거하면 섬유만 남게 되는데 이것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실의 형태가 된다. 이를 얇게 뽑아 베틀에서 짜 내면 텍스타일이 되어 각종 의류와 침구에 사용되는 것이고, 그 자체로 여러 가닥 꼬아 만든 것이 농사에 쓰던 노끈이며 생활에 쓰일 각종 바구니들이다. 일부는 종이로 가공되기도 한다. 가까이에 자라는 식물을 먹고, 먹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 또 다른 먹을거리를 생산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며 의식주를 꾸려온 것이 인류의 역사니 이와 비슷한 삶은 세계 어디에나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아가베 섬유로 만든 바구니 가방



그리고 이들의 운명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우리의 살림에서 대바구니와 채반, 광주리 등이 사라져 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아가베 세공품들도 자리를 잃었다. 산업혁명과 세계대전 이후 대량으로 생산이 가능한 인공 화학 섬유가 널리 사용되며 닳지 않는 플라스틱의 혁명에 아가베의 자리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찾는 이가 줄면 만드는 이도 줄어들게 나름이고, 고대부터 이어진 아가베 가공술도 이젠 할 줄 아는 사람이 드물다.


식물도, 사람도, 그리고 그들이 쓰던 물건도 자연에서 나서 자라고 다시 돌아가는 자연스러움의 개념도 변했다. 순리에 맞고 당연한, 힘 들이고 애쓰지 않은 상태란 이전의 사회의 그것과는 무척 다르다. 삶의 환경 자체가 바뀌었으니 현대를 잣대로 과거를 평가하는 것도, 과거의 방식을 현대에 고집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인류가 무엇이 불편하고 무엇이 좋은지, 불편함은 어떻게 개선하고 좋은 것은 어떻게 더 좋아질 수 있을지 생각해 온 결과가 현재라는 거다. 결국 오늘의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은 과거와 같은 고민을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 


봄날의 꽃시장 한 구석, 아가베 화분을 보며 문득 생각한다.






※ 삼청동 코지홈과 공동 기획하여 추구하는 가치를 담아 작지만 야문 매거진을 만들고 있습니다.

     코지홈 블로그 : blog.naver.com/cojeehome





YUL

일상이 모여 인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중요한 가치는 일상에서 실천하고 싶습니다.

블로그 : blog.naver.com/yulscountry 
인스타그램 : @withtp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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