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탈출을 꿈꾸는 이유 중에는 회사에 속박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욕망도 있다. 회사를 탈출하는 자에게 자유란 무엇일까. 내 생각과 다르게 살도록 강요받지 않고 사는 것, 외부 세계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내 뜻대로 살아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자유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둔 캐릭터 둘이 떠올랐다. 하나는 마블 히어로 영화 주인공인 캡틴 아메리카, 그리고 또 하나는 니코스 카잔자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주인공 조르바다.
캡틴 아메리카는 언뜻 보면 법 잘 지키고 말 잘 듣는 모범생처럼 보이는 인물이다. 정의로움을 맨 위의 가치로 두는 캐릭터이긴 하지만 자유의 가치 또한 정의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긴다. 자유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이 잘 그려진 영화가 바로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다.
이 영화에서는 임무 수행과정에서 일어난 각종 사고로 인해 히어로들의 행동에 제약을 둬야 한다는 국제적인 여론이 일어나자 히어로를 규제하는 내용을 담은 국제 규약인 ‘소코비아 협정’ 제정이 추진된다. 이 협정 참여 여부를 둘러싸고 마블 영화 세계관 속 히어로들의 의견이 둘로 갈라졌는데, 캡틴 아메리카는 소코비아 협정을 두고 “개인 선택이 아닌 법과 집단의 명령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개인의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라며 반대 입장에 선다.
그는 협정 찬성파 히어로의 대표자 격인 아이언맨과 대화를 하면서 협정 내용이 보완된다면 참여할 생각까지 했지만 결국 마법을 쓰는 히어로 스칼렛 위치의 강한 파괴력을 우려해 아이언맨이 스칼렛 위치를 일종의 가택연금 시킨 사실을 알게 되자 자유를 희생시켰다는 점에 분노하고 협정 참여 의사를 거둔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인류에 해악을 끼친 나치에 대해서도 그는 단순히 미국 군인 신분이라서 상부의 지시에 따라 적과 싸운 것이 아니었다. 캡틴 아메리카는 “어디 사람인지는 상관없다. 남을 핍박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며 싸웠는데, 그는 자유를 가로막는 세상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일자무식 노동자로 한평생 자유롭게 살아간 인물이다.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세상을 온몸으로 부닥쳤던 그는 그 과정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익혔고 큰 욕심 없이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조르바에게 자유는 삶에 밀착된 가치였다. 그의 자유는 어려운 말로 묘사되지 않는다.
작가가 조르바에게 크레타에 있는 갈탄광에 가서 같이 일하자고 제의하면서 일 끝나면 산투리(그리스 악기의 일종)도 치자고 하자 조르바는 이렇게 대꾸한다.
“기분이 내키면 치죠. 알아듣겠소? 난 당신이 바라는 대로 당신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소. 노예처럼요. 하지만 산투리는 전혀 별개요. 이놈은 야수요. 자유가 필요해요. 내가 기분이 내키면 칠거요. 노래까지도 할 거요. 또 제임케키코, 하시피코, 펜토잘리 같은 춤도 출거요. 하지만 이건 꼭 분명히 해둡시다. 내가 기분 날 때만이오. 계산을 분명히 합시다. 만약 내게 강요하면, 난 떠납니다. 이건 분명히 아쇼.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간이라고요? 그게 무슨 뜻이오?”
“보쇼, 자유인이란 거요.”
(자료: 니코스 카잔자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문학과지성사, 2018) (p.36~37)
열심히 일하더라도 싫은 것은 강요하지 말라는 분명한 선언이었다. 자유를 방해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조르바는 그게 자신의 손가락이라 해도 용서하지 않았다. 도자기 빚는 일을 좋아했던 조르바는 도자기 빚을 때 거추장스러웠다며 스스로 도끼를 들어 오른손 집게손가락을 반쯤 잘라냈을 정도였다. 그의 손가락을 보고 작가가 어찌된 일이냐고 묻자 조르바는 이렇게 얘기한다.
“자, 보쇼. 이게 내 물레질을 방해했단 말이오. 중간에 끼어들어 내 계획을 망쳤어요. 그래서 어느 날 도끼를 집어 들어……”
“안 아팠어요?”
“어떻게 안 아파요? 내가 목석이오? 나도 사람이오. 아팠죠. 하지만 내 일을 자꾸 방해하니까…… 잘라버렸죠.” (p.41)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을 가로막는 것을 과감히 쳐내는 이 용감함이란! 조르바는 언제나 현재에 있는 행복을 누렸고, 생업을 우리 인생에 목줄을 죄어 끌고 다니는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어느 날 조르바는 제 흥에 취해 신나게 춤을 췄다. 작가가 뭐가 그리 기분이 좋아서 그러냐고 물었고 조르바는 대답했다.
“뭐가 기분이 좋았냐고요? 아니 지금 뜬금없는 소리를 한 게 누구요? 대장이 말해놓고도 정작 대장 자신은 모른단 말이오? 우린 석탄 때문에 여기 온 게 아니라고 말했잖소. 그 말에 나는 부담을 덜었단 말이오! 우린 여기에 놀러 온 거고, 석탄은 세상 사람들 눈에 재를 뿌려 우리를 바보 취급 못하게 하고, 잡스러운 헛소리를 못하게 하기 위한 거라고 말했잖소. 그리고 우리끼리만 남아 남들이 우리를 보지 않았을 때는 신나게 웃자고 했잖아요. (이하 생략)”(p.133)
작가 카잔자키스는 조르바의 눈으로 보면 세상이 달랐다고 묘사한다. “온 세상이 처녀성을 회복한다. 모든 일상의 것들, 빛바랬던 것들이 하느님의 손을 처음으로 벗어나던 때처럼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강과 바다도, 여자도, 별도, 빵도, 모두 태초의 신비스러운 근원으로 되돌아가고, 하늘에서는 하느님의 수레바퀴가 원초적 힘을 되찾곤 했다”고 말이다. 조르바는 “어떤 때는 사람을, 어떤 때는 꽃이 핀 나무를, 또 어떤 때는 시원한 물이 담긴 컵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르바는 매일같이 모든 것을 처음 보는 듯 봤다”고 말이다. 조르바는 늘 현재에 충실하고 매순간 일상에 감사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쯤 되면 단순한 자유주의자를 넘어서 도인의 경지에 이른 듯도 하다.
캡틴 아메리카가 따르는 자유의 가치는 고결하다. 다만 어딘지 모르게 우리 일상과는 동떨어진 딱딱한 이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 따르기 위해서는 굳은 의지와 자기관리, 절제력 같은 것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캡틴 아메리카에게서는 교과서처럼 사는 고지식한 샌님 이미지가 풍기는지도 모르겠다. 이와 달리 조르바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자유인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이념 같은 것은 모르지만 살아가는 것 그 자체로 자유를 증명한다고나 할까.
현대사회에 경종을 울렸던 대안경제학자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의 강연 내용을 기술한 책 『굿 워크』에는 슈마허가 설명하는 자유에 대한 아주 쉬운 이야기가 나온다. 슈마허는 젊은이들이 거부하는 것과 갈망하는 것을 나누어 나열한다.
그는 젊은이들이 거부하는 것이란 “나는 아무 의미도 없는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고 싶지 않다. 나는 기계와 관료제의 노예가 되어 권태롭고 추악하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바보나 로봇, 통근자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누군가의 일부분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이어 젊은이들이 갈망하는 것이란 “나는 내 일을 하고 싶다. 나는 좀 더 소박하게 살고 싶다. 나는 가면이 아니라 진짜 인간을 상대하고 싶다. 내겐 사람, 자연, 아름답고 전일적인 세상이 중요하다. 나는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라고 전한다. 그리고는 “이 모든 것을 저는 자유를 향한 갈망이라고 부른다”고 정리한다.
나는 캡틴 아메리카처럼 고결하지도 않고 조르바처럼 과감하지도 않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조금씩 그들과 닮아가고 싶다.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며 자유롭게 살아가면서, 남의 뜻이 아닌 나 자신의 뜻에 따라 한걸음씩 내딛으며 용감하게 자유를 갈망하며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