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생리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명저 『총, 균, 쇠』 9장을 보면 “가축화할 수 있는 동물은 모두 엇비슷하고 가축화할 수 없는 동물은 가축화할 수 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는 얘기가 나온다. 다이아몬드는 이 책에서 인간이 야생동물 대부분을 가축으로 만드는 데 실패한 이유를 6가지 제시했다. 까다로운 식성, 느린 성장 속도, 감금상태에서 번식 실패, 골치 아픈 성격, 겁먹는 버릇, 과도한 독립성이 그것이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이 6가지 특성의 정반대 특성은 가축의 특성이 된다. 즉 무난한 식성, 빠른 성장 속도, 가둬놔도 번식을 잘하고, 성격은 무던하며, 겁먹지 않고 인간 곁에 머무른다. 독립적이기보다 인간에게 의존하며 살게 된 동물이 결국 길들여져서 가축이 되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가축은 무던한 직장인과 통하는 면이 있고, 가축화에 실패한 야생동물은 직장을 탈출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과 닮은 점이 있다.
회사에서 어떤 일을 시켜도 잘 해내고, 빨리 배우며, 성격이 둥글둥글해서 조직생활도 잘하는 데다 회사 의존도가 높은 사람이면 회사생활 잘하는 직장인으로 적응하기 쉽다.
직장인은 일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성격이 무던해서 가축과 닮은 거라고 주장하고 싶...
하지만 회사 탈출을 꿈꾸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회사에 길들여지고 싶지 않다. 우리는 원하는 것이 분명하고, 사고방식을 일정한 틀에 가둬놓기 싫어하며, 성격은 무던히 좋다는 평가보다는 예민하다 혹은 까칠하다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회사생활에 인생을 걸지 않는 스타일이 적지 않으니 회사 의존도도 낮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우리 같은 특성을 지닌 사람들은 본성을 거스르며 살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게 아니라, 뭔가 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자기 마음을 가축과(科)로 바꿔서 조직적응력을 높일 수 없다면 하루빨리 회사 탈출 자금을 마련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유의할 사항 하나. 회사 탈출러는 몇 달도 견디지 못하고 툭하면 회사를 때려치우는 ‘회사 도망러’와는 다르다. 스무 살 넘어 성인이 되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각자 자기 밥벌이 정도는 하고 살아야 하는데, 어찌어찌 취업을 했으나 두어 달 다니면 힘들다며 걸핏하면 그만두기를 반복하는 사람들, 즉 회사 도망러는 그냥 일하기 싫은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세력권을 갖고 혼자 살아가는 동물은 몰고 다니기가 불가능하다’고 묘사했다. 여기서 핵심이 되는 용어는 바로 ‘세력권’이다. 회사 탈출러에게는 이 세력권이 분명하게 형성돼 있다. 자기만의 전문분야라든지 성실함 같은 것이다. 하지만 회사 도망러에게는 딱히 세력권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그 대신 끝없는 불평불만, 잦은 지각과 결근 같은 것들이 그들의 대표적인 캐릭터다. 또 회사 탈출은 치밀한 계획과 실행의 결과로 이룰 수 있지만 회사 도망은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냥 일하기 싫을 뿐이니 회사 때려치우기 적당한 시기가 올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회사 탈출러는 고양이와도 많이 닮았다. 고양이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동물이라서 리더 지시에 절대 복종하는 늑대나 개와 같이 조직생활 능력을 타고난 동물이 아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인간과 대등한 입장에서 인간의 친구로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선택한 동물이다. 나는 고양이 두 마리와 9년째 함께 살고 있는데, 내가 겪어보니 고양이는 정말 그렇다.
고양이 같은 마인드의 회사 탈출러는 회사를 탈출하기 전까지는 회사에서 최선을 다해 근무한다. 입사할 때 함께 하기로 스스로 결정한 회사니까 떠날 이유가 생길 때까지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마치 고양이가 같이 사는 인간을 집사로 받아들이고 나면 그 이전과 비교도 안될 만큼 집사에게 애정을 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