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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철현 Apr 02. 2023

깨진 유리창의 법칙

방심(放心) 하기 쉬운 인간의 마음

저자는 달리기 예찬론자다. 저자의 머릿속에는 무라까미 하루끼의 말이 단단히 심어져 있다. "근육은 기억하고 인내한다. 어느 정도 향상도 된다. 그러나 타협하지도 융통성을 부리지도 않는다." 운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하루끼의 말을 실감할 것이다. 근육을 만드는 데는 몇 달, 몇 년이 걸리지만 그 근육이 제자리로 돌아가기는 불과 며칠밖에 걸리지 않는다. 근육은 그야말로 진화론의 용불용설(用不用說)에 딱 들어맞는다. 


유달리 추웠던 작년 기상 조건과 상관없이 꾸준히 해오던 달리기를  몇 주간 중단했다. 부작용이 금세 나타났다. 인후염을 동반한 감기로 응급실을 찾아갔고 2주가 지나도 잘 낫지 않았다. 간신히 감기가 떨어지나 했는데 또 재발이 되었다. 달리기를 시작하기 전의 몸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과 함께 운동 조건이 어렵다고 포기해 버린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까지 들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맞는 운동이 있기 마련이다. 저자에겐 달리기야 말로 면역력을 키우고 건강을 지키는 최고의 보약이다. 체질적으로 달리고 땀이 나면 몸이 가벼워지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다. 달리기가 나를 지키는 수호천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곤이지(困而知), 어려움을 겪고 나서야 다시 깨닫는 하책(下策)을 반복했다. 달리기를 하기 전에는 환절기만 되면 제일 먼저 감기 신고를 해야 했던 저자가 다시 달리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다행히 운동을 다시 시작하면 기억력 좋은 근육이 활성화되어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다고 하니 희망이 생긴다.   


다시 희망의 달리기를 시작한다. 달리기 하는 거리마다 벚꽃, 개나리, 진달래, 목련 등 봄의 전령들이 응원의 박수를 치듯 환하게 웃고 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최상의 달리기 환경이다. 오래간만에 달리기를 시작하면 지켜야 할 철칙이 있다. 시작 전에 스트레칭으로 몸을 충분히 푼 후 보폭을 짧게 하고 시간과 거리를 적당하게 조절하는 것이다. 과유불급은 런너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철칙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조심 또 조심한다. 마치 다산 정약용이 여유당(與猶堂)이라는 호를 짓고 유배 후에 삶을 신중모드로 전환한 것처럼 조심해서 무릎 관절을 사용해야 한다.


이쯤 해서 본론으로 돌아가자. 저자가 거주하는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시에서 관리하는 생태숲이 조성되어 주말에는 어린이를 동반한 젊은 부모들이 마을의 진입로를 통해 생태숲을 찾는다. 쓰레기를 줍다 보면 일회용 커피컵, 생수병, 마스크, 비닐 등 현지의 마을 주민들이 버렸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쓰레기들이 도로 옆 논이나 밭에 너부러져있다. 몇 년 전 일본 관광을 하던 중 농촌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논이나 밭에는 농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비닐봉지나 휴지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일본의 청결문화를 알고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본 일본인의 청결은 명성 그대로였다. 저자는 일본 농촌의 청결한 풍경이 부러웠다. 주말마다 농촌에서 생활하는 저자 역시 할 수만 있다면 청결한 마을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자 마음먹었다. 마을 주민이 마을을 청결하게 관리하면 외부인들도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요즘 플로깅(Plogging)이 유행이다. ‘이삭을 줍는다’는 뜻의 스웨덴어 'Plocka upp'과 영단어 'Jogging'의 합성어로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 친환경 조깅을 의미한다. 저자도 플로깅이라는 거창한 말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주말에 달리기를 마치고 적당히 땀이 나면 집에서 쓰레기분리용 봉지와 집게를 가지고 도로 양옆에 쓰레기를 줍는다. 플로깅은 달리면서 쓰레기를 발견하고 줍기 위해 멈추지만 저자는 달리기를 마친 후 쓰레기를 줍는다. 플로깅을 하면 운동도 쓰레기 줍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플로깅은 농촌과 같은 환경에서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 마을에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도회지에서 사는 선배가 쓰레기를 줍는 저자를 보고 다음에는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선한 바이러스가 널리 퍼지면 좋은 일이다. 


스탠퍼드 대학교 심리학과 필립 짐바르도 교수는 인간 행동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를 수행했다. 슬럼가의 한 골목에 차량 한 대는 보닛만 열어두었고, 다른 한 대는 보닛을 열어두고 차량 유리창을 일부 훼손한 상태로 주차하고 일주일 후에 차량 상태를 관찰했다. 보닛만 열어둔 차량은 특별한 변화가 없었지만, 보닛을 열어두고 유리창 일부가 훼손된 차량은 차량의 주요 부품이 도난당한 것은 물론, 낙서와 쓰레기로 폐차 직전이 되었다. 사실 두 차량의 차이라고는 유리창의 훼손뿐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범죄학 이론이 바로 ‘깨진 유리창의 법칙'(Broken Window Theory)이다. 이 이론은 조그만 차이가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교훈을 시사하는 것으로 일상에서 흔하게 적용된다.


1994년 뉴욕시장으로 취임한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도 이 원리를 효과적으로 적용하여 범죄예방에 효과를 봤다. 뉴욕은 마천루가 즐비하고 화려한 세계적 대도시이지만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하로 내려가면 지상과는 별개의 세계임을 알 수 있다. 줄리아니가 시장으로 재임할 때만 해도 이 지하세계에는 온갖 범죄가 횡행하고 쓰레기가 뒤범벅이고 벽에는 낙서로 얼룩져 있었다. 깨진 유리창 이론에 따르면 이런 경범죄에 해당하는 쓰레기 무단 투척이나 노상음주, 낙서, 무임승차 등 기초질서 위반자가 나중에는 중범죄를 저지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줄리아니 시장은 뉴욕경찰국과 협력하여 기초질서 위반자를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단속을 실시하고 관행 이상의 과중한 벌금을 부과했다. 물론 시행 초기에는 시민들의 불만이 높았지만 시장 임기가 만료될 쯤에 뉴욕의 범죄는 눈에 보이게 낮아졌다고 한다. 이론이 이론으로 머물지 않고 일상에 적용돼 효과를 본 사례이다.


저자도 깨진 유리창 이론을 경험하고 있다. 마을 진입로를 쭉 따라가면서 관찰하면 길 양옆에 쓰레기가 없는 깨끗한 지역에는 쓰레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쓰레기가 널려 있는 지역에는 새로운 쓰레기 계속 버려진다. 악순환이다. 쓰레기도 연식이 있어 시간이 오래된 쓰레기와 최근 쓰레기를 구분할 수 있다. 지저분한 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사람에게는 양심이 작동하는데 더럽고 지저분한 곳에 쓰레기를 버리면 꺼림칙한 마음이 덜 생기는 법이다. 


마을 진입로는 누군가의 소유 공간이 아닌 모두의 공간이다. 모두의 공간이기 때문에 공공성이 필요한 법이다. 대개 님비(NIMBY) 현상이라고 하면 자기가 사는 주거지역에 장례식장, 화장장, 산업폐기물·쓰레기 처리장 등 이른바 혐오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현대인의 자기중심적인 공공성 결핍증상을 말한다. 마을 진입로는 님비와 같은 거창한 현상에 해당되지 않겠지만, 공공의식의 실험무대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을 진입로에서의 공공성과 시민의식의 회복으로 우리나라 국민의 의식도 선진국으로 가는 진입로가 되기 바란다.


저자는 부제를 '방심(放心) 하기 쉬운 인간의 마음'으로 달았다. 공공장소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것은 인간의 방심에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방심이란 글자 그대로 '놓아버린 마음'이다. 무엇을 놓아버렸단 말인가? 바로 인간이 태어날부터 갖고 있는 선한 마음이다. 유가에서 맹자를 공자 다음으로 치켜세우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인간의 놓아버린 마음을 무명지(無名指)에 비유하는 설법 때문이라고 한다. 무명지는 다섯 개 손가락 중 네 번째에 해당하지만 이름이 없는 손가락이다. 다른 손가락들과는 다르게 별로 쓰임새가 없기 때문이다. 탕약을 저을  때 쓴다고 해서 약지(藥指)라고 불린다. 맹자는 잃어버린 마음을 무명지에 비유하면서 설명한다. "무명지가 구부러져서 펴지지 않을 경우 당장 아프지 않아도 펼 수 있는 명의를 찾아 진나라나 초나라까지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내 손가락이 남들의 손가락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손가락을 고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의사를 찾아가지만 놓아버린 마음을 찾기 위해서는 이를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니 이는 분별력이 없기 때문이다"(최인호, 2012). 시민이 공동체에서 공공의식을 회복하는 곧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유일까.  



무라카미 하루키. (2017).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말. 임홍빈 옮김. 문학사상.

최인호. (2012). 소설 맹자. 열림원.

최지원. (2021). 한국경제. 근육은 기억한다…"소싯적에 운동 좀 했지". 9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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