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유미 May 31. 2023

된장



차는 계곡 가까이 접어들고 있었다. 물소리를 따라 큰길을 한 30분 달리다가 샛길로 빠져서 어느 정도 달렸을까, 차 속력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도착했나 싶어 바깥을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멈추는 듯하던 차가 다시 속력을 내며 수풀 속으로 돌진했다. 짧은 비명을 지르며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가렸다. 운전자는 승객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이 실실 웃으며 전진했다.

"하룻밤만 자고 일어나도 풀이 허리까지 자란다니까요."

길을 뒤덮고 있는 풀들이 차창 안으로 빨려 들어와 얼굴을 쳐대는 격한 환영 인사를 받으며 차바퀴가 돌부리에 걸릴 때마다 천장에 머리 찧기를 수십 번도 더 하고 나니 마침내 사람 사는 집(처럼 보이는)이 나타났다.

도대체 이런 곳을 어떻게 알고 동생은 들어와서 살게 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절로 솟았다.


“아, 여기 오게 된 건 다 선생님 덕분이야.”

“선생님?”


동생이 미소를 지으며 말한 그 선생의 정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음식 냄새에 잠이 깼다. 알람 소리가 아니라 음식 냄새를 맡으며 아침에 일어난 게 언젠지 기억이 안 난다. 제대로 된 음식을 맞아 본 지 오래된 내 위가 몹시 요동을 쳤다.


“잘 잤어? 안 그래도 아침 다 돼서 깨우려던 참인데.”


동생이 차린 아침상은 간소하고 정갈했다.


“제부는?”

“벌써 봉장에 나갔지. 어제 하루 집을 비운 바람에 걱정이 돼서 새벽에 나갔어. 벌 키우는 게 갓난애 키우는 거나 매한가지야. 여름엔 더울까 겨울엔 추울까 하루도 맘 편히 쉴 수가 없거든. 태풍 때문에 오늘은 종일 거기 매달려 있을 거야. 계상도 내려야 되고, 폐타이어로 눌러서 일일이 말뚝에 붙들어 매야 . 태풍 한 번 지날 때마다 일이 많아. 나도 이따가 나가봐야 해.”


할 일이 많다, 하루도 맘 편히 쉴 수가 없다고 말하는 동생은 전혀 지친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신나는 일을 앞둔 사람처럼 활기차게 보였다. 이렇게 바쁠 때 일을 팽개치고 나를 데리러 와 준 동생 부부에게 미안했다. 나라면 일을 뒷전으로 하고 하루 휴가를 낼 수 있었을까? 팀장 얼굴을 떠올리자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동생은 반찬그릇을 끌어당겨서 일일이 밥 위에 얹어주며 맛보라고 했다. 음식에서 희미하게 오래전에 먹었던 엄마 밥맛이 느껴졌다. 특히 된장찌개가 그랬다.


“된장찌개 맛있다. 옛날 엄마가 해주던 맛이 난다.”

“와, 언니 입맛 용하다. 그거 엄마 된장이야.”


돌아가신 분이 다시 돌아와 된장을 담갔을 리는 없고 무슨 소린가 싶어 동생을 쳐다봤다.


“엄마 보내고 집 치우러 갔다가 다른 건 다 정리가 되는데 된장독이랑 간장, 고추장까지 그건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무작정 가져왔어. 언니는 필요 없다 길래."


어렴풋이 그런 전화를 동생한테 받았던 것 같다. 그 당시 회사는 수입 원단 주문이 잘못 들어가서 난리가 났을 때라 장례를 치르는 며칠간 자리를 비우는 것도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재주문을 넣어 놓고 오매불망 도착날짜만 기다리던 중이었다. 여러 업체에서 걸려오는 항의와 독촉 전화에 직원들이 돌아가며 시달리던 터라 장례식장에서도 휴대전화가 사납게 울려댔었다. 장례가 끝나자마자 엄마 집이며 짐정리까지 동생에게 떠맡기고 회사로 도망쳐 왔다. 그런 상황에 된장독 처리 같은데 쏟을 정신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동생이 전화 왔을 때 나는 필요 없으니 알아서 버리라고 했던 것 같다.


도시 아파트로 그 큰 장독들을 어떻게 옮겼을까 궁금해지던 차에 동생이 된장이사 다닌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시댁이 주택이라 처음엔 거기 갖다 놓았지. 한 해는 거기서 나고 다음 해 무주로 들어오면서 장독도 이리 가져왔어. 커다란 장독 세 개가 트럭에서 내려질 때 어머니의 표정을 봤어야 하는데. 그런데 장맛을 한 번 본 뒤로 애지중지하시더라.”

“된장 입장에서야 주인도 바뀌고 집도 설고 예전 맛을 잃었다 해도 사 먹는 된장 맛에 비할 바 아니지. 여기로 올 때 우리가 멀리 가는 것보다 장독 가져가는 걸 더 서운해하시는 것 같았다니까. 그 뒤로 매년 장을 새로 담글 때마다 택배로 한 통씩 보내드려.”


동생이 엄마 장독을 가져간지도, 그 장을 씨된장 삼아 매년 장을 담그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잖아도 올해 장맛이 좀 괜찮다 싶었는데 언니 입에 맞는 걸 보니 장들도 여기에 적응을 잘했나 보다.”


웃으며 말하는 동생 목소리가 편안했다. 막상 내가 보기에 된장이 아니라 동생이 이곳에 적응을 잘한 것 같았다. 서울에 살 때는 서로 바빠 명절에나 겨우 만났는데 가끔 보는 동생은 늘 정신을 어디 딴 데 둔 것 같은 얼굴이었다. 드문드문 통화를 할 때면 목소리가 너무나 피곤한 나머지 용건을 말하는 중에 지쳐서 말을 끝내지 못하고 전화를 끊을까 봐 조바심이 나기도 했었는데 이곳에서 보는 동생은 언제 자기가 그랬냐는 듯이 온몸에 생기가 돌았다. 그러고 보니 동생은 귀농한 뒤로 나에게 자주 연락을 해 왔다.


동생이 나가고 더듬거리며 아침 먹은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나니 빈집에 적막함이 감돌았다. 커피 한 잔이 간절했다. 회사 다닐 땐 큰 컵에 가득 채운 커피 한 잔이 아침식사였다. 카페인이 몸속으로 들어가야 피가 돌고 눈이 떠지고 팔다리를 움직여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장소가 바뀌어도 내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카페인에 애를 태우다 깜빡 졸았는지, 갑자기 귓가에서 들리는 붕붕 소리에 머리끝이 쭈뼛 섰다. 뭐가 어디에 있는지 안 보여 손을 마구 휘젓다가 그만 눈두덩을 쏘였다.

악! 눈을 싸잡고 뒹굴었다. 너무 아파서 눈에서 콧물이 나는지 코에서 눈물이 나는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나중에야 하게 된 생각이지만 이때 벌에 쏘인 것은 앞으로 닥칠 시련의 예고편이 맞았다.




이전 04화 동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