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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피카소 1

3년 주기로 돌아오는 선물

by 하유미



울 집 애는 어려서부터 손이 여물지 못했다. 친구 딸인 동갑내기 여자 친구가 항상 누나처럼 데리고 다녔다. 누나는 동생을 따라다니며 흘린 물건들을 줍기 바빴고 어느 날은 빠진 자전거 체인을 다시 걸어주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나무에 걸린 셔틀콕을 내려주기도 했다. 한 번은 캔 따기를 무서워하는 아이를 지켜보다 그날은 엄연한 누나도 좀 지쳤는지 대신 콜라 뚜껑을 따주며 한마디 덧붙였다.

“너 참 손이 많이 가는구나.”

여덟 살 누나의 촌철살인의 말은 지금까지 아이를 놀려먹을 때마다 회자되고 있다.


손이 야무지지 못한 것과는 별개로 아이는 손이 섬세했다.

혼자 앉지도 못하는 개월 수에 엄지와 검지로 쌀 튀밥을 한 알씩 줍는 놀이에 열중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너무 작은 열 개의 손가락이 따로따로 움직이는 자체가 신통방통했다.

조금 더 커서 연필을 잡을 수 있게 되자 아이는 뭐든 그리고 싶어 했다. 특히 공룡과 중장비차를 너무 실감나게 그려서, 커서 피카소가 되려나 하는 헛바람을 우리에게 넣었다.


유치원을 다니게 되자 종종 글자를 쓸 일이 생겼다. 한글을 배운 적이 없는 아이는 그야말로 글자를 집처럼 지었다. 레고를 좋아해 쌓아 올리는 것에 익숙했던 아이로서는 글자도 그런 식으로 완성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상식을 파괴한 아이의 글자는 받침이 먼저 쓰였고 윗부분이 나중에 올라갔는데 더 요상한 건 글자 옆에 거울을 대고 본 것처럼 좌우가 완전히 뒤집혀있었다. 그렇게 뒤집어 쌓아 올려 자신의 이름을 그리는 걸 보는 게 너무 재밌어서 우리는 애써 고쳐주지 않았다.

왜 갑자기 정상적으로 글자를 쓰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다. 유치원의 다른 친구들을 보고 자기 글자가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아무튼 어느 날부터 더 이상 그 재미난 행위예술을 볼 수 없게 된 관람객 입장에서는 아쉬울 따름이었다.


일곱 살 피카소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열일곱 살이 되었다.

주말, 고깃집에서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나온 냉면을 자르던 아이가 안 잘린다며 혼잣말을 했다. 손을 아래에서 위로 거꾸로 집어넣어 가위질을 해대니 날이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실로 바보 가위질이었다. 나도 모르게 앞을 노려보고 있었던지 남편이 내게 나지막이 타일렀다.

“그러지 마.”

그때까지 나 자신이 아이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전혀 의식하지 못하다가 황망히 시선을 거두었다.


반짝이던 피카소의 손은 자랄수록 섬세함을 잃고 허술함만 남았다. 생각해 보면 가위질 좀 못하는 것은 다른 못 하는 일, 수만 가지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그럴 때가 있었다. 손가락을 움직이기만 해도 연필을 잡기만 해도 대견하던 시절이. 그러니 9999개를 못마땅해할 것이 아니라 잘하는 한 가지를 칭찬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라…….


어버이날에 아이가 말도 없이 나가더니 선물을 사들고 왔다. 무려 3년 만에 받은 선물이다. 전에 받은 핸드크림을 이제 다 써간다고 했더니 새 걸로 사다 주었다. 그동안 가방에 넣고 다녔는데 외출을 가뭄에 콩 나듯이 하다 보니 오랫동안 썼다.(혹, 썩은 거 아닐까 걱정하실 분들께 집에 유통기한 지난 화장품들이 수두룩해서 별 일 아니라는 말씀을 드린다.)

그렇다. 세상 남 일에 무관심해 보이는 아이는 흘리는 말에 무심히 선물을 챙겨줄 줄 아는 겉보기와는 다른 면모가 있다고 칭찬을 해본다.

한참 사진을 뒤져서 뒤집어진 이름 찾아냄. 오른쪽 아래 구석ㅋ

알파벳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음. 뒤집어진 알파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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