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는 왜 아버님한테 발끈하고 그래.”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이 나무랐다.
“내버려 둬. 아빠랑 싸우는 사람은 어차피 나뿐이야.”
“가만 보면 아버님한테 기본적으로 반감이 깔려있어.”
“아빠가 이제 할아버지가 돼서 그렇지, 젊었을 때 엄마한테 얼마나 잔소리를 해댔는데. 당신이랑 살면서 좋은 게 뭔지 알아?”
“뭔데?”
“나한테 잔소리를 일절 안 해서 좋아. 결혼 잘했다 생각하는 큰 이유야.”
결혼 망했다 소리보다야 낫겠지만 남편은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쳤다.
엄마는 자식들 어느 정도 키워놓고 일을 시작해 평생 쉬지 않고 돈을 벌었다. 마지막에 청소노동을 몇 년간 하다 올해 퇴직을 맞았다. 계약직이라 원하면 일을 더 할 수 있었지만 더 일할 수 없는 몸이 되어서 그만둔 것이다. 지난 2,3년간 일을 그만두게 하려는 노력이 씨알도 안 먹히더니 본인 몸이 나가떨어지고 나서야 드디어 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제 일 그만두면 뭐 하고 싶어? 시간이 많은데.”
“그래서 걱정이야.”
“여성회관에 강좌도 많은데 친구들이랑 배우러 다니면 되지.”
“나야 그러면 되지. 신청도 해놨어. 아빠가 걱정이다.”
“왜? 아.”
“그래서 미리, 내가 사람 만나고 배우러 다니는 걸로 절대 잔소리하지 않기로 약속받아놨어.”
둘 다 머릿속에 불 보듯 그려지는 상황을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가 되었다.
전생에 원수가 부부가 돼 만난다는 말이 믿어질 정도로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상극이었다. 싸움이 잦은 부모 아래 자라서 우울감과 자존감 상실 등 마이너스 옵션을 장착한 인생이란 생각을 오랫동안 했었다. 도대체 N, S극이 왜 만나서 결혼을 했을까 하는 원망의 사춘기 늪을 빠져나오기도 했다.
이제 전투력 넘치던 부모님은 서로에게 기운이 다 빠졌고, 자식은 젊은 시절 부모보다 더 나이 들어 그때의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최근에야 하게 된 생각이지만 덕분에 갖게 된 플러스 옵션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눈치를 잘 본다는 것. 좋은 말로 풀어내면 사람과 사람사이를 잘 읽어낸다는 것이다.
어렸을 땐 자기 비하의 원흉인 성격이라 생각했는데 요즘 시대에 각광받는 능력으로 꼽힌다니 부모님은 시대를 심하게 앞서간 교육을 했었나 보다는 우스갯말을 할 정도로 마음에 굳은살이 생겼다.
마음의 상처는 몸에 난 것과 달라서 건강해진다고 완전히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울타리를 치고 접근주의 표지판을 세워 놓고 상처를 조심히 다루는 법을 살면서 터득할 뿐이다. 언제라도 무심히 상처가 밟히면 또 아프다.
그날 아빠가 내 울타리를 넘고 상처를 묻어놓은 화단을 무신경하게 밟았다.
주말 집에 갔을 때 동네 친구들과 외출한 엄마는 아직 귀가 전이었다. 먼저 도착한 우리를 보자 아빠는 기회다 싶었는지 엄마의 (아빠 기준에) 만행을 성토하려 목소리를 높였다. 아빠의 잔소리에는 항상 맥락이 있다. 그러나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고 논리로만 따져 드니 엉터리일 때가 많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사람 태우고 운전을 하고 다니는 엄마가 걱정된다는 명분은 반대를 위한 반대일 뿐이었다.
“엄마가 초보운전자도 아니고 그만하세요. 엄마 평생 일하다가 이제 쉬는 거예요. 하고 싶은 대로 마음 대로하게 내버려 두세요. 저는 이렇게 한 번 듣는 것도 싫은데 엄마는 그동안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겠어요. 안 하시기로 약속하셨잖아요.”
똑같은 소리가 세 번쯤 반복되었을 때 이미 내 목소리는 아빠 말소리보다 더 커진 걸 눈치채지 못했다. 남편이 나를 제지시키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다.
마침 엄마가 들어와 화제는 급변했고 우리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함께 저녁을 사 먹고 웃으며 헤어졌다.
아빠도 엄마도 자식인 나도 우리는 변한 게 없다. 단지 다툼을 넘기고 상처를 피하는 방법을 세월을 통해 익히고 능숙해졌을 뿐이다.
남편에게 했던 말을 곱씹었다.
“할머니가 먼저 죽은 경우에 할아버지들이, 반대의 경우에 비해 오래 살지 못한대. 왜 그런지 알아?”
“글쎄, 들어본 것도 같고.”
“잔소리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생활력이 떨어진대.”
“그러네.”
“그런데 아빠는 다른 이유로 오래 못 살 거야.”
“왜?”
“잔소리할 대상이 없어서.”
“하, 설마.”
진심으로 한 말이었는데 남편은 웃음을 터뜨렸다.
론 뮤익의 전시에서 닭이랑 대치하고 있는 팬티바람의 고집불통 할배가 왜 그렇게 인상적이었는지 몰랐는데 그날 깨달았다.
닭은 할배에게 의미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