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이유미 Jul 03. 2017

야심 찬 내 패션의 수명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결국 손을 내민 사람은 나였고 반지는 무겁게 내 손가락 밑으로 매달렸다. 
<줌파 라히리 ‘그저 좋은 사람’ 중에서>



유난히 도트 패턴을 좋아할 뿐 나의 차림새는 지극히 평범하다. 청바지를 주로 입고 티셔츠가 편하다. 라인이 드러난 원피스나 치마는 큰 결심을 하지 않으면 선뜻 손이 뻗어지지 않는다. 아마 올해도 숏팬츠는 못 입을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반바지는 나의 구매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간 것보다 펑퍼짐하거나 툭 떨어지는 스타일이 좋다. 그런데 가끔 여기에 뭔가 더 추가하고 싶어 진다. 예를 들면 액세서리다. 혹하게 가공된 이미지를 보면서 나도 이렇게 귀걸이 하면 예쁘겠지, 좀 달라 보일 거야, 라는 생각으로 덜컥 주문을 한다. 택배로 받은 상품은 예상보다 화려하지만 괜찮을 것 같다. 다음 날 출근할 때 착용해 본다. 뭔가 좀 어색하지만 꾹 참기로 한다. 누군가 나를 보며 귀걸이 했네?라고 말하지 않길 간절히 바라본다. (나는 늘 티 나지 않게 반짝이길 바라기 때문에) 하지만 참기로 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귓불이 빨개지며 간지러워 자꾸만 귀에 손이 간다. 맞다. 내 귀는 금속 알레르기가 있다. 금을 해도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 결국 나는 회사에 도착하기도 전인 2호선 지하철 안에서 귀걸이를 빼 작은 파우치에 집어넣으며 한숨을 쉰다. 사실 짐작했던 한숨이다.


사람은 가만히 두면 편한 쪽으로 가게 된다


청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입고 거울 앞에 선다. 어딘가 밋밋해 보여 다시 화장대 앞에서 고민하다가 화장대 서랍에서 초커를 꺼낸다. 초커는 짧은 목걸이다. 즉 목둘레 사이즈에 딱 맞게 하는 것으로 내가 착용한 것은 얇은 검은색 가죽 줄이고 한가운데 아주 작은 십자가 펜던트가 달려있다. 초커를 하고 거울 앞에 선다. 아까의 그 밋밋함에서 살짝 조미료를 쳤을 뿐인데 어딘가 세련돼 보인다. 그래, 맘에 들어. 출근길에 나선다. 회사에 도착할 즘 목이 갑갑해져 온다. (살짝 과장해서) 누가 목을 조르는 것 같다. 얇은 줄인데 덥기까지 하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초커를 뺀다. 이번에도 실패다.


여러 개가 세트인 반지를 샀다. 알이 제법 큰 것도 있고 링의 굵기가 얇은 것도 있다. 온라인으로 반신반의하며 주문한 건데 생각보다 사이즈도 잘 맞고 디자인도 맘에 든다. 득의양양하게 반지를 낀다. 이번 출근길은 다른 액세서리 없이 ‘원 포인트’로 반지에만 힘을 준다. 머리를 묶는데 굵은 알반지 때문에 머리카락이 자꾸 걸린다. 흠… 신경 쓰이네. 그래도 괜찮아. 손을 씻으려는데 비누가 반지에 꼈다. 아… 이런. 손가락에 낀 반지를 모두 뺀 뒤 비누를 씻어냈다. 졸지에 깨끗이 씻긴 반지들… 빼고 보니 뭔가 굉장히 홀가분하고 시원하고 가볍다. 키보드 치는 손가락이 자유롭다. 그냥 빼고 있어야겠단 생각이 든다.

illust by 윤지민


며칠 후 출근 복장, 메달이 제법 큰 목걸이를 했다. 이번에도 내추럴한 티셔츠 차림에 포인트만 주기 위해서. 신경 쓴 듯 안 쓴듯한 내 모습이 맘에 든다. 지하철에서도 문제없고 오전 시간을 다 보내는 동안에도 괜찮았다. 다행히 목에는 금속 알레르기도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목이 뻐근해져 온다. 뒷목을 잡고 목을 좌우로 돌려본다. 설마 목걸이 때문일까? 목걸이를 슬쩍 빼본다. 아니길 바랬지만 너무 가뿐해진다. (근데 실제로 무거운 목걸이는 디스트를 유발한다, 고함) 그러고 보니 사원증도 못 걸고 다니는 나였다. 이렇게 큰 목걸이를 하루 종일 하고 있을 생각을 하다니. 무릇 고수들은 이런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다 견뎌내는 거겠지만 나는 일단 패션 고수되긴 글렀다. 집을 나설 때의 야심 찬 내 패션은 그날 오전이면 기력을 소진한다. 매번 이런 식이니 자꾸만 포기하게 된다. 귀걸이를 포기하고 반지를 단념하며 목걸이를 체념한다. 나는 점점 높은 구두를 짧은 옷을, 과감한 디자인을 절념했다. 어디 그뿐인가 멋스럽지만 무거운 가죽 가방을 꺼내 들지 않게 됐다. 가끔 장롱에서 그런 가방을 볼 때마다 이런 걸 내가 들고 다녔다고?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그때는 그 가방 아니면 그 구두가 아니면 잠을 못 이뤄 샀을 텐데.


예뻐지는 것도 수고와 노력이 필요한 법


“사람은 가만히 두면 저절로 편한 쪽으로 가게 되지요. 저 자신도 피곤하다 싶은 날이면 ‘오늘은 로퍼 말고 다른 건 못 신어!’하고 종종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멋을 추구하는 마음’은 발끝에서 드러난다고 믿어요. 가끔 길거리 등에서 머리는 백발인데 핀 힐을 신고서 당당하게 걸어가는 여성분을 보면, “멋지다!” 하고서 넋을 잃고 쳐다보게 됩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도 등을 쭉 펴게 되는 기분이 들어요. 누구든 언젠가는 힐을 신고 싶어도 신을 수 없는 날이 분명 찾아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여성으로서 매일 신지는 않더라도 ‘힐을 신을 때 얻는 고양된 느낌’을 포기 하기란 조금 쓸쓸하지 않나 싶습니다.”
-앞으로의 라이프 스타일 p87-

책 ‘앞으로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일본 대표 스타일리스트 이누바시리 히사노의 말이다. 오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높은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포즈를 취한 그녀를 보자니 뜨끔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를 낳고 관절이 약해진 건 사실이지만 많이 회복되었다고 건강검진 결과를 눈으로 확인했지만 여전히 높은 구두는 병적으로 꺼려한다. 도전해 보지도 않고 겁부터 내는 게 분명하다. 이누바시리 히사노의 말처럼 어차피 신고 싶어도 못 신는 때가 반드시 올 텐데 겁부터 내는 내가 나를 너무 편하게 내려놓기만 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알레르기 반응이야 참고 견딜 필요가 없지만)


우리가 흔히 멋지다,라고 생각하며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남모를 고통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도 사람인데 그렇게 화려한 치장을 하고 아무런 불편함이 없을 수 있을까. 불편함을 참고 인내하는 거겠지. 그건 타인을 의식하고 안 하고를 떠나 내가 좋고 즐거우니까 하는 거다. 티 나지 않게 반짝거리는 사람이면 좋겠지만 이미 그렇게 되긴 글렀으니, 앞으로는 작은 불편함이라도 참고 견뎌보는 인내가 필요할 것 같다. 어떤 고통이든 순간을 넘기면 참을만하지 않을까? 하물며 예뻐지는데 공짜가 어디 있겠나.

매거진의 이전글 요즘 뭐 읽냐고 물어주면 좋겠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