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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Mar 09. 2018

하루에 살인을 몇 번이나 하는겨…

1일1리뷰: 먹고살자고 하는 일들이 나 살자고 너 죽이는 일이었네

크기나 실린 글의 양으로 책의 무게를 판단할 수 있겠냐만은 혼자 다짐하고 혼자 버거워하는 날 위해 오늘은 좀 다른 책을 리뷰 하고자 한다. 홍대 땡스북스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샀다. 아마 몇 개월 전인 것 같은데 글 한 장 그림 한 장 이런 식으로 나열돼 있다. 


‘일상의 살인’ 추측이 가능한 사람도 있겠으나 일단 ‘살인’이 들어가면 뭔가 싶다. 그런데 앞에 ‘일상’이 붙는다. 그렇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지에 관한 책이다. 여기서 살인이라 함은 당연히 작가가 주관적으로 정한 것이다. 

살면서 이런 경험 한 번쯤 있지 않나? 무생물인 게 분명한데 의미를 부여해서 “아이고 아프겠다” “너무 슬프겠다”라고 한 적. 예를 들어 과일을 깎거나 연필을 깎으면서 깎이는 사과나, 연필에게 제 몸이 깎여 나가니 얼마나 아프겠어,라고 생각하는 거 말이다. 이처럼 우세계(이름도 멋지다) 작가는 일상에서 사물을 향해 아무렇지 않게 하는 행동을 살인으로 비유해 그렸다. 내 손으로 대수롭지 않게 하는 행동들이 상대에겐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그림을 보면 더 잘 이해가 될 것이다. 기도 차고 어이도 없을 것이다. 근데 왠지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진짜 아플 것 같고 쓰릴 것 같고 따가울 것 같다. 무생물에 마음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몇 해 전 ‘사물의 시선’이란 책을 냈다. 말 그대로 물건의 입장이 되어 사람들을 바라보는 이야기다. 많은 상상력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단순히 내가 그 물건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만 곰곰이 생각해 봐도 절반은 채워지는 일이었다. 2년 넘게 연재를 했다. 어떤 물건으로 할지 걱정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내 주위에는 뭐가 많았다. 게다가 물건을 파는 회사에 다니지 않는가. 내 일이 그 물건을 글로 파는 것이고. 


우세계 작가도 그랬는지 모르겠다. 나는 ‘사물의 시선’을 쓰면서 물건의 입장이 되어 많이 생각했다.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됐고 어두운 곳에 남겨진 사물에 마음이 많이 쓰이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살았던 것이 당시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지나고 보면 필요한 생각들이었던 것 같다. 내게 이로운 물건을 대충 다루지 않는 것. 귀하게 여겨주고 오래도록 잘 보호하는 행동들이 결국은 나에게서 우러나는 행동이고 기품이 되지 않을까. 


어른 손바닥만 한 이 핑크색 책을 보노라면 허허,를 연발하게 된다. 기가 찬단 말이다. 자르고, 태우고, 찍고, 찌르고, 깎고, 짜는 일련의 행동들이 이렇게나 많았단 말이야? 싶어 진다. 이 책의 재미 중 하나가 ‘친절한 금자 씨’의 금자 씨 같이 날카롭고 창백한 그림에도 있지만 짤막한 글도 한 매력 한다. 제목이 살인이다 보니 이 모든 상황을 어우르는 글은 스릴러를 방불캐한다. 


“불쾌지수가 극에 달한 8월이었다. 주저할 새도 없이 미리 준비되어있던 가위를 집어 들었다. 형광등에 반사되는 날이 보기에도 날카로워 한 번에 끝날 것 같아 기분이 나아졌다. 방해되는 것들 것 일찍 해치워놓았기에 어려운 작업은 아니었다. 싹둑 잘라내자 힘이 빠진 듯 바닥으로 추욱-쓰러지는 모습이 참으로 볼썽사나웠다. 이미 바닥은 벌겋게 흥건했고 나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고 있다.” (냉면 편)



#일상의살인 #우세계 #청춘문고 

#본인이 얼마나 많은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지 알고 싶을 때 읽으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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