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으면 없는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발목 부상이 가르쳐준 수영

by 맛있는 하루

아악!!


작년 봄에 다쳤던 발목이 또다시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삐끗했는지 기억도 없는데 발목이 부어올랐다. 소염진통제를 복용하고, 발목 보호대를 찼다.


어짤쓸꼬.


허리디스크 통증이 다리로 종종 내려가 제대로 못 걷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 조금 절뚝거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주요 관심사는 오직 수영이었다.


- 일주일? 아니면 보름 정도 수영장 휴회를 신청해야 하나?

- 수영장도 안 가면 발목 핑계 대고 집에서 한 걸음도 안 걸을 텐데. 그럼 허리가 또 문제인데.


'어느 것을 고를까, 코카콜라 맛있다. 딩동댕'도 아니고 발목과 허리, 어느 쪽 치료에 집중해야 하는지 장단점을 따져봤다.




일단, 수영을 해보자. 자유형의 핵심은 팔로 물 잡는 거지. 발은 거들 뿐이다. 허벅지 사이에 풀부이를 끼우고 팔 동작을 연습하기도 하잖아? 오늘은 풀부이로 연습을 해볼까?


풀부이(Pull Buoy)는 허벅지 사이에 끼워 하체의 움직임을 줄이고 팔 동작에 집중하게 해준다. 자유형이나 접영 연습 시 팔 동작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도구다. 수영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킥보드가 발차기 연습에 효과적이라면, 풀부이는 팔 동작에 주력을 두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절뚝거리며 수영장에 들어갔다. 한켠에 정돈되어 있는 풀부이를 챙겼다.


ChatGPT Image 2026년 2월 10일 오후 08_20_47.png AI 생성 이미지 사용


어기여차. 풀부이를 허벅지에 끼고 발을 차지 않으며 그날의 수영 목표를 완주했다.


'할만한데? 풀부이와 함께 팔 동작 연습하면 발목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는데?'


그날 밤이었다. 허리 통증으로 밤새 끙끙 앓았다. 풀부이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골반과 허벅지에 힘을 준 결과, 허리에 무리가 왔나 보다.


끙끙 앓으면서도 수영 생각뿐이었다. 이 정도면 중독이 아닌가 싶었다.


'아.. 이런 상태면 내일 풀부이를 못 쓰겠는데? 이러다가 수영도 못하는 거 아니야?'




다음 날 아침, 센터 휴회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수영장으로 향했다.


어제 풀부이를 끼고 발차기를 안 하던 그 느낌을 되살려보자. 풀부이가 허벅지에 있다고 상상하고 발차기를 하지 말고 수영을 해보면 어떨까.


발은 거들 뿐, 팔로 물을 가르자. 몸이 많이 가라앉으려 할 때만, 한 번씩만 발로 투욱.


이게 될까?

어라?

이게 되네?!!


발은 없다 치자. 팔을 더 잘 써보자. 팔을 몸통 쪽으로 더 깊이 당겨보자.


일주일, 이주일.. 생각보다 발목은 쉽게 낫지 않았다.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 계절이 바뀌었다.


그렇게 몇 달 넘게 팔에 집중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광배근을 사용하고 있었다. 발차기는 잊었는데, 속도는 빨라졌다. 엎어진 물은 담을 수 없어도, 수영장 물은 잡을 수 있었다. 팔 전체와 광배근으로 물을 잡아 허벅지 뒤로 던져주기. 허벅지와 발은 팔이 던진 물 위를 타고 갈 뿐.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그냥 그런대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없는 것을 만들려고 애쓰고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애쓰고

불편한 것을 못 참아 애쓰고 살지만


때로는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또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사는 것이 참 좋을 때가 있습니다.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만족할 수 있다면

애써 더 많이 더 좋게를

찾지 않아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없이 살고, 부족하게 살고,

불편하게 사는 것이 미덕입니다.

자꾸만 꽉 채우고 살려고 하지 말고

반쯤 비운 채로 살아볼 수도

있어야겠습니다.


온전히 텅 비울 수 없다면

그저 어느 정도 비워진 여백을

아름답게 가꾸어 갈 수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꾸 채우려고 하니

비웠을 때 오는 행복을

못 느껴 봐서 그렇지


없이 살고, 부족한 대로,

불편한 대로 살면

그 속에 더 큰 행복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발목 부상으로 시작된 고민이 시의 구절처럼 흘러갔다.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발목이 불편해서 발차기를 못했더니, 팔로 물 잡는 법을 알게 되었다. 풀부이가 없어도 풀부이가 있다고 상상하며 헤엄쳤더니, 광배근을 쓰는 법을 터득했다. 부족한 것을 채우려 애쓰지 않고 그저 주어진 상황에 적응했을 뿐인데, 수영 실력은 오히려 늘어났다.


물속에서 배운다. 없음이 때론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는 것을. 불편함이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는 것을.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 발목은 여전히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괜찮다.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물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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