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부상이 가르쳐준 수영
아악!!
작년 봄에 다쳤던 발목이 또다시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삐끗했는지 기억도 없는데 발목이 부어올랐다. 소염진통제를 복용하고, 발목 보호대를 찼다.
어짤쓸꼬.
허리디스크 통증이 다리로 종종 내려가 제대로 못 걷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니, 조금 절뚝거리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주요 관심사는 오직 수영이었다.
- 일주일? 아니면 보름 정도 수영장 휴회를 신청해야 하나?
- 수영장도 안 가면 발목 핑계 대고 집에서 한 걸음도 안 걸을 텐데. 그럼 허리가 또 문제인데.
'어느 것을 고를까, 코카콜라 맛있다. 딩동댕'도 아니고 발목과 허리, 어느 쪽 치료에 집중해야 하는지 장단점을 따져봤다.
일단, 수영을 해보자. 자유형의 핵심은 팔로 물 잡는 거지. 발은 거들 뿐이다. 허벅지 사이에 풀부이를 끼우고 팔 동작을 연습하기도 하잖아? 오늘은 풀부이로 연습을 해볼까?
풀부이(Pull Buoy)는 허벅지 사이에 끼워 하체의 움직임을 줄이고 팔 동작에 집중하게 해준다. 자유형이나 접영 연습 시 팔 동작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도구다. 수영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킥보드가 발차기 연습에 효과적이라면, 풀부이는 팔 동작에 주력을 두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절뚝거리며 수영장에 들어갔다. 한켠에 정돈되어 있는 풀부이를 챙겼다.
어기여차. 풀부이를 허벅지에 끼고 발을 차지 않으며 그날의 수영 목표를 완주했다.
'할만한데? 풀부이와 함께 팔 동작 연습하면 발목을 쓰지 않을 수 있겠는데?'
그날 밤이었다. 허리 통증으로 밤새 끙끙 앓았다. 풀부이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골반과 허벅지에 힘을 준 결과, 허리에 무리가 왔나 보다.
끙끙 앓으면서도 수영 생각뿐이었다. 이 정도면 중독이 아닌가 싶었다.
'아.. 이런 상태면 내일 풀부이를 못 쓰겠는데? 이러다가 수영도 못하는 거 아니야?'
다음 날 아침, 센터 휴회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수영장으로 향했다.
어제 풀부이를 끼고 발차기를 안 하던 그 느낌을 되살려보자. 풀부이가 허벅지에 있다고 상상하고 발차기를 하지 말고 수영을 해보면 어떨까.
발은 거들 뿐, 팔로 물을 가르자. 몸이 많이 가라앉으려 할 때만, 한 번씩만 발로 투욱.
이게 될까?
어라?
이게 되네?!!
발은 없다 치자. 팔을 더 잘 써보자. 팔을 몸통 쪽으로 더 깊이 당겨보자.
일주일, 이주일.. 생각보다 발목은 쉽게 낫지 않았다.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나 계절이 바뀌었다.
그렇게 몇 달 넘게 팔에 집중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광배근을 사용하고 있었다. 발차기는 잊었는데, 속도는 빨라졌다. 엎어진 물은 담을 수 없어도, 수영장 물은 잡을 수 있었다. 팔 전체와 광배근으로 물을 잡아 허벅지 뒤로 던져주기. 허벅지와 발은 팔이 던진 물 위를 타고 갈 뿐.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그냥 그런대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없는 것을 만들려고 애쓰고
부족한 것을 채우려고 애쓰고
불편한 것을 못 참아 애쓰고 살지만
때로는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또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사는 것이 참 좋을 때가 있습니다.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만족할 수 있다면
애써 더 많이 더 좋게를
찾지 않아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없이 살고, 부족하게 살고,
불편하게 사는 것이 미덕입니다.
자꾸만 꽉 채우고 살려고 하지 말고
반쯤 비운 채로 살아볼 수도
있어야겠습니다.
온전히 텅 비울 수 없다면
그저 어느 정도 비워진 여백을
아름답게 가꾸어 갈 수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자꾸 채우려고 하니
비웠을 때 오는 행복을
못 느껴 봐서 그렇지
없이 살고, 부족한 대로,
불편한 대로 살면
그 속에 더 큰 행복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발목 부상으로 시작된 고민이 시의 구절처럼 흘러갔다.
없으면 없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발목이 불편해서 발차기를 못했더니, 팔로 물 잡는 법을 알게 되었다. 풀부이가 없어도 풀부이가 있다고 상상하며 헤엄쳤더니, 광배근을 쓰는 법을 터득했다. 부족한 것을 채우려 애쓰지 않고 그저 주어진 상황에 적응했을 뿐인데, 수영 실력은 오히려 늘어났다.
물속에서 배운다. 없음이 때론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는 것을. 불편함이 새로운 길을 열어준다는 것을.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 발목은 여전히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괜찮다.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물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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