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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카타임 Nov 22. 2020

익숙함에 대하여

오늘도 북까페에서


북까페.

거리를 떠돌다 결국은 또 이곳에 다다랐다. 오늘의 산책 계획엔 이곳을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어느덧 습관처럼 늘 앉던 자리를 잡고 있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두고 있자니... 역시나 이곳을 좋아할 수밖에 없음을 다시 느꼈다.

봄이 늦도록 왕벚꽃을 피워대던 거목은 이젠 낙엽을 떨어뜨리는데 제 모든 걸 쏟아붓고 있었다.

계절의 끝엔 항상 비가 왔다.

봄 끝에 비가 와서 꽃잎들이 제 명보다 일찍 떨어질까 봐 조마조마했었는데,

가을 끝에 온 비는 강까지 동반하는 바람에 나무에 더 달려있어도 되는 단풍들을 땅으로 다 떨어뜨려버렸다.

규칙 없이 땅을 덮고 있거나, 때론 밟혀 이겨진 낙엽들이 커다란 폴딩 도어 너머로 가득 보인다.

몇 주 전부터 주인장이 창문의 테두리 끝에 걸쳐둔 알전구가 운치를 더했다.

그리고 하늘. 비 온 뒤 하늘, 혹은 비가 오기 전일 지도 모를 하늘. 하루 종일 해를 보인적 없이 구름으로 가득 덮인 하늘도 늦은 오후가 되니 그 빛이 달라졌다. 창밖을 주시하고 있던 시야가 흩뿌였게 흐려진다.


오길 잘했다. 오늘도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이곳에 오길 정말 잘했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열 번 중 아홉 번은 드는 생각이다.


익숙하단 말에 겁을 먹는 건 익숙함을 설렘의 반대말이라 생각하기 때문 일 것이다.

난 대부분의 일에 빨리 익숙해지길 바라며 살았다. 그렇다고 설레고 싶어 하지 않는 건 또 아니었다. 좀 더 어렸을 때는 늘 사람 사이에 설레고 싶어 했다.

그런데 설레는 상대 앞에서 겨우 반도 먹지 못하는 파스타도 좋았지만 집에 돌아와 배부르게 먹는 국밥도 포기할 순 없었다.


설렘은 수동적인 말이다.  타인이 , 혹은 외부세계에 어떤 것이  날 그렇게 만들어줘야만 한다. 스스로 설렘을 만들어낼 순 없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그 감정이 좋아 오래 가져가고 싶어도 설렘은 일정기간이 지나고는 사그라든다.

설렘이란 감정이 사라지고야 마는 데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실수를 줄이기 위함은 아닐까, 이성적 사고를 하게 하기 위함은 아닐까, 에너지를 아끼게 하기 위함은 아닐까... 혹은 내가 상대 앞에서도 음식을 맘껏 먹을 수 있게 함은 아닐까.


사람은 원하든 원치 않든 짧은 설렘과 긴 익숙함 속에 생을 보낼 것이다.  난 정해진 그것의 시간을 바꾸기 위한 노력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나의 익숙한 곳의 모습이, 사람이든 장소든 좀 아름답길 바란다. 마치 엄마의 크리스마스 장식과 같았으면 좋겠다. 매해 새로울 것 없이 익숙하지만 거실에 그 익숙한 장식이 놓이면 왠지 겨울이  따뜻했다. 그리고 스산한 계절이 봄처럼 예뻐졌다.

주말마다 오는 이 북까페가 집처럼 익숙하나 날마다 아름답듯, 내 곁에 익숙한 사람이 설렘은 없더라도 늘 정직하고 착하듯.

내게 주는 익숙함의 모습들이 가치 있고 아름답길 바란다.

그것을 위한 노력이라면 기꺼이 하며 살고 싶다.


설레지 않더라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설레지도 않는데 어찌 살까 지레짐작할 필요는 없다.

비록 설렘과 짝하는 열정은 느끼지 못할지 몰라도, 난 익숙함에서 비로소 미안함을 느낄 것이다, 고마움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익숙한 상대를 위해 희생도 기꺼이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설렘이 끝나간다고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다.


늦은 손님으로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바람에 나뭇잎들이 사방으로 날린다. 비처럼 그것에 내 옷이 물들 수 있다면 참 예쁠일일텐데... 나를 비껴가며 날리는 나뭇잎에 그저 아쉬움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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