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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나 Aug 25. 2022

장미

내 안의 장미를 피워낼 수 있을까

    노란색 장미가 폈다. 흙에 뿌리를 내린 지 2년 만에 핀 꽃이었다. 그동안 조그마한 장미가 가지를 새로 내고, 잎을 펼치는 과정을 경이롭게 지켜봤다. 그리고 한두 해가 지나 꽃봉오리가 맺혔을 땐 약간의 뭉클함도 느꼈다. 왜냐하면 새끼손가락 길이도 되지 않았던 부러진 장미가지 조각. 그것이 저 노란 꽃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베란다 바깥으로 빨랫감을 널어 말리는 것을 좋아한다. 햇살에서 여름이 느껴질 때 즈음, 햇볕 아래 빨래널기는 시작된다. 빨래든 이불이든 가슬가슬하게 말리는 것을 좋아했던 엄마는 여름이 되면 이른 아침부터 모든 것을 널어 말렸다. 엄마는 나에게도 그 일을 자주 시켰는데, 어린 시절에는 엄마가 참 별나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철이 조금 들어 햇볕에 말린 수건에는 청량한 여름향기가 숨어있다는 걸 깨닫고부터는, 엄마가 없는 지금도 빨래에 햇볕이 조금이라도 닿도록 부지런을 떤다.



   그날도 빨래를 널고 있던 참이었다. 먼저 빨랫감들을 옷걸이에 걸고, 그것들을 베란다 바깥쪽 화분대 아래에 가지런히 거는 것이 내 빨래 널기의 방법이다. 때문에 화분의 식물들이 다치지 않게 조심하는 것도 나에겐 중요한 숙제이다. 자칫하면 키 큰 식물들의 가지를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옷가지를 조심조심 밖으로 내어놓는 순간, 손등에 살짝 뭔가가 스쳤다. 속상하게도 노란색 미니장미의 줄기가 부러져 있었다. 부러진 조각은 내 새끼손가락 반도 안 되는 길이었다. 나는 그것을 버리러 집어들었으나 물기로 촉촉한 하얀 속살을 본 이상 버릴 수가 없었다. 부러진 단면에는 생명이 여전히 깃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줄기의 녹색 껍질 속에 숨어있어야 할 그 생명이 나로 인해 세상에 드러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었다. 줄기조각을 들고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빈 화분에 조심스레 꽂았다. 내 빈약한 식물지식으로는 장미도 꺾꽂이가 되는지 알 수 없었고, 꺾꽂이의 정확한 방법도 몰랐으나, 그것이 내가 장미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새로운 화분으로 옮겨간 장미줄기는 꺼멓게 마르는 듯 하더니, 새로운 가지 몇 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키도 차츰 자랐다. 꽤 시간이 흐른 후에는 누가 봐도 어엿한 한 그루 식물 그 자체였다. 과연 줄기조각이 새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걱정했던 나는 서서히 마음을 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2년 정도 지난 올해 여름. 장미 줄기 끝에 작은 꽃봉오리가 맺혔다. 꽃봉오리는 점점 통통해지더니 원래 줄기에서 물려받은 노란색 꽃을 소담스레 보여줬다. 만약 내가 그때 줄기조각을 그냥 버렸더라면 아니, 내가 잘 꽂아주었더라도 줄기가 열심히 뿌리를 내리고 잎을 돋우지 않았더라면, 나와 마주하고 있는 저 장미꽃은 세상에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남들이 보통 학위를 마칠 나이인 마흔 살에 나는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공부를 결심한 것은 학문적 호기심이나 명예욕 때문은 아니었다. 중증 환자의 딸로서 2년간 환자를 간병하면서, 삶이란 예상하지 못한 고통과 마주하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그것은 개인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문제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고달팠던 시간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 그것이 내 공부의 출발점이었다. 절절했던 경험과 동기는 좋았지만, 학문을 지속하기에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공부를 한다는 건 매 순간 나의 한계를 직시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과정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호기롭게 시작한 공부는 학기가 올라갈수록 괴로웠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한계투성이로 느껴졌으며, 내 위치에 걸맞은 지식과 사고력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연구실에서 맡고 있는 여러 업무들과 그로 인한 인간관계는 나를 더 지치게 했다. 그렇게 여러 고민으로 밤잠마저 설치게 되자, 내 몸과 마음은 암전이 되듯 한순간에 작동을 멈추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두드러기가 온몸을 휘감았고 나는 밤새 피부에 돋은 허옇고 붉은 발진들을 긁었다. 그리고 내가 깜냥에 맞지 않는 지나친 욕심을 부렸던 것은 아닌가, 내가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렇게 여러 달을 보낸 후 두드러기가 어느 정도 나아질 무렵, 노란 장미가 피었다.



   작은 줄기 조각이 꽃을 피워내는 어엿한 장미 개체로 성장하는 동안, 나는 그것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에게 ‘꽃’이라는 목표가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저 운이 좋아서 그가 꽃을 피워냈다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멀리서 지켜본 나의 감상일 뿐이다. 온몸으로 뿌리를 내려서 물을 흡수하고, 잎을 펼쳐 햇빛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저 노란꽃은 세상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장미꽃에 눈을 맞추고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줄기조각에 숨어있었던 꽃과 뿌리와 잎들을 다시 생각했다. 내 안에 숨어있는 꽃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그 꽃을 활짝 피울 수 있을까. 숨어있는 그 꽃을 마주하기 위해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잎을 키워낼 것인가.



   긴 상념을 끝내고 나는 장미에게 물을 듬뿍 주었다. 꽃잎에 맺힌 물방울은 햇빛 아래에서 투명하게 빛났다. 그리고 푸른 하늘을 향해 있는 장미처럼, 나도 하늘을 향해 다시 한번 가슴을 활짝 펼쳤다.



2021년 <월간문학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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