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유나 Aug 29. 2022

안부전화

이 고마운 이에게 나는 왜 그리 퉁명스러웠을까

올해도 새해가 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그의 전화가 왔다. 그는 도서관에서 어머니의 수필 수업을 수강했던, 말하자면 어머니의 제자이다. 어머니는 딸보다 어린 그의 문재(文才)를 귀히 여겼다. 그리고 종강 이후 몇 년이 지나도록 꾸준히 걸려오는 그의 안부 전화에 대해 나에게도 몇 번 이야기를 했다.


그의 전화를 내가 대신 받기 시작한 건 어머니의 투병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그날도 그는 새해 안부 전화를 했고, 병환으로 전화를 받지 못하는 어머니 대신 내가 그 전화를 받아 어머니의 상황을 전했다. 전화 너머로 들리던 그의 눈물 섞인 탄식 소리는 지금도 생생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마치 내가 자신의 ‘스승’이라도 되는 듯 그는 내게 매년 한두 번씩 꾸준히 안부 연락을 해 왔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나와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변치 않는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누군가가 내 어머니를 그리워한다는 건 감사한 일이었고, 나의 어머니가 그의 잊지 못할 스승이라는 것 역시 딸로서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그의 안부 전화는 이상하게 반갑지 않았다. 그의 전화를 받고 나면 내 마음은 이유 모를 불편함으로 요동쳤고 몇 년이 지나도록 누군가의 ‘유족’이라는 슬픔에 갇혀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60대 초반에 서둘러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그의 전화를 무뚝뚝하게 받았다. 그리고 전화를 끊자마자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으니 이제 그만 연락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중얼거렸다.


올 새해에도 그의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휴대전화 화면에 보이는 그 이름이 신기하게도 반가웠다. 시큰둥했던 예전의 마음은 안개가 걷히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구름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처럼 그에 대한 고마움이 투명하게 떠 올랐다.


그날 처음으로 그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이 고마운 사람에게 왜 그토록 퉁명스러웠는지 새삼스럽게 반성을 했다. 그동안은 생각도 못 했던 그의 안부를 물었고,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꼭 만나자는 이야기도 먼저 꺼냈다. 그리고 어머니와 내 글이 실린 책을 보내주겠다며 그의 주소를 묻기까지 했다. 갑자기 변한 내 모습에 비로소 깨달았다. 어머니가 떠난 지 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어머니의 빈자리를 겨우 받아들이게 되었고, 주변과 내 자신을 둘러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꾸준히 연락을 해 오는 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사실 나는 안다. 오래전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성당의 대녀(代女)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명절이나 연말이 되면 그 아이의 가족에게 안부 연락을 했다. 그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고, 떠난 아이를 절대 잊지 않겠다는 일종의 다짐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내 전화를 부담스러워하는 듯한 목소리에, 나는 연락을 그만두었다. 그만하면 대모(代母)로서 최선을 다했고, 내 전화를 받을 때마다 대녀의 가족들은 떠난 아이를 떠올리게 될 테니 이제는 걱정을 거두라는 신부님의 말씀이 옳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수년이 흐른 지금에야, 그때는 서운했던 대녀 가족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스승의 딸인 나를 잊지 않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우리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예전에 그와 잠깐 만난 적은 있지만, 얼굴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던 그에게 이제는 내가 마음을 건넬 차례이다.  



에세이문학 22년 여름호 수록  

이전 09화 고통과 축복, 그 어디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