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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나 Aug 27. 2022

이 순간 내 곁에

엄마 없이도 나는 잘 지낸다

내 상황을 잘 아시는 어른께서 요즘도 엄마가 보고 싶으냐고 물으셨다. 나는 조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가끔 그리울 때는 있지만 엄마가 떠난 지 몇 년이 지나서 그런지, 못 견딜 정도로 보고 싶거나 하지는 않다고 말이다.

엄마가 없어도 나는 잘 지내고 있다. 밥도 잘 먹고, 친구들과 만나서 재미있게 놀기도 한다. 이런 내 모습에 스스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가끔, 정말 가끔은 내가 ‘엄마’ 하고 부르면 안방이나 부엌에 있던 엄마가 내 방으로 쓱 들어오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엄마는 화장할 때 마스카라로 속눈썹을 한 올 한 올 올리는 과정을 절대 빠뜨리지 않았다. 나는 얼마 전 값싸면서도 사용하기 편한 마스카라를 구했는데, 그것으로 눈 화장을 하면서 엄마에게도 이걸 사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매실청을 담기 위해 밑작업을 할 때도 엄마가 내 곁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특상품의 좋은 매실을 사서 깨끗이 씻고, 매실의 배꼽 손질까지 이쑤시개로 꼼꼼히 하는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주면서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엄마가 했던 것처럼 한 달에 두세 번은 흰색 면 빨랫감을 모아서 삶고, 요즘처럼 햇빛이 화려한 계절이면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반드시 베란다 바깥쪽으로 빨래를 널어 말릴 때도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다.


엄마는 나이 육십이 넘어서도 자그마한 액세서리와 귀여운 소품들을 좋아했다. 나는 그동안 엄마와 취향이 완전히 달랐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고르는 물건들은 엄마가 좋아했던 것들의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변한 내 취향에 놀라긴 했지만, 나 자신에게서 엄마를 느낄 수 있어서 마음이 오히려 따뜻해졌다. 엄마 옷에서 나던 체취가 내 옷에서 느껴질 때, 그리고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엄마가 가르쳐 줬던 방법대로 국을 끓이고 반찬을 할 때, 나는 엄마를 생각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엄마의 글 쓰는 모습을 보며 자란 나였기에, 내가 글을 쓰게 된 것은 글쟁이의 딸에게 주어진 의무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어디까지나 환경적 영향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굳게 믿은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서야 내가 글 쓰는 과정을 즐거워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이 엄마가 건네준 유산임을 느꼈다. 그때 엄마의 무엇인가가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행복했다.


나는 우리 집 멍멍이 뚱이가 세상을 떠날 때도 엄마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때는 엄마가 이곳에 없는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했다. 여리디 여린 엄마가 뚱이의 마지막 모습을 봤으면 얼마나 슬퍼했을까. 무덤덤한 나와 아버지 둘이서만 그 일을 겪어내는 것이 훨씬 나은 일이었다. 엄마는 하늘에서 뚱이를 맞이했을 테니 뚱이도 낯선 곳이 겁나지 않을 테고, 엄마도 적적하지 않을 것이다. 뚱이와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던 엄마는 지금도 뚱이랑 같이 놀고, 옆에 앉아있는 그 녀석의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으며 글을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본인의 병 때문에 외국에서의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귀국한 딸을 몹시도 안타까워했던 엄마. 수술 후 부축을 받으며 거동을 겨우 할 때에도 엄마는 병원으로 문안 온 내 선배에게 말했었다. 유나가 다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자기가 빨리 나을 것이라고. 그때 엄마가 바랐던 그 학교의 학생이 되어 캠퍼스를 거닐고 있는 요즘, 눈앞에 꿈처럼 펼쳐지는 학교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엄마도 지금 이 순간 내 곁에서 함께 학교를 걷고 있다고.

  

엄마의 손때 묻은 필기도구를 만질 때, 엄마가 쓰던 화장품을 정리할 때, 엄마가 모아 둔 예쁜 손수건이 가득한 서랍을 열 때. 그리고 밥을 먹고, 빨래를 널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등교를 하고, 국을 끓이는 순간에, 나는 엄마를 생각한다. 그러나 엄마가 못 견디게 보고 싶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언제, 어느 곳에서도 엄마는 늘 나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면 충분하다. 그것뿐이면.



에세이문학 작가회 동인지 <마법에 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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