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새해가 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그의 전화가 왔다. 그는 도서관에서 어머니의 수필 수업을 수강했던, 말하자면 어머니의 제자이다. 어머니는 딸보다 어린 그의 문재(文才)를 귀히 여겼다. 그리고 종강 이후 몇 년이 지나도록 꾸준히 걸려오는 그의 안부 전화에 대해 나에게도 몇 번 이야기를 했다.
그의 전화를 내가 대신 받기 시작한 건 어머니의 투병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그날도 그는 새해 안부 전화를 했고, 병환으로 전화를 받지 못하는 어머니 대신 내가 그 전화를 받아 어머니의 상황을 전했다. 전화 너머로 들리던 그의 눈물 섞인 탄식 소리는 지금도 생생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마치 내가 자신의 ‘스승’이라도 되는 듯 그는 내게 매년 한두 번씩 꾸준히 안부 연락을 해 왔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나와 어머니에 대한 마음이 변치 않는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누군가가 내 어머니를 그리워한다는 건 감사한 일이었고, 나의 어머니가 그의 잊지 못할 스승이라는 것 역시 딸로서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그의 안부 전화는 이상하게 반갑지 않았다. 그의 전화를 받고 나면 내 마음은 이유 모를 불편함으로 요동쳤고 몇 년이 지나도록 누군가의 ‘유족’이라는 슬픔에 갇혀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60대 초반에 서둘러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그의 전화를 무뚝뚝하게 받았다. 그리고 전화를 끊자마자 엄마가 돌아가신 지 벌써 몇 년이 지났으니 이제 그만 연락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중얼거렸다.
올 새해에도 그의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그런데 휴대전화 화면에 보이는 그 이름이 신기하게도 반가웠다. 시큰둥했던 예전의 마음은 안개가 걷히듯 순식간에 사라지고, 구름 너머로 보이는 푸른 하늘처럼 그에 대한 고마움이 투명하게 떠 올랐다.
그날 처음으로 그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이 고마운 사람에게 왜 그토록 퉁명스러웠는지 새삼스럽게 반성을 했다. 그동안은 생각도 못 했던 그의 안부를 물었고,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꼭 만나자는 이야기도 먼저 꺼냈다. 그리고 어머니와 내 글이 실린 책을 보내주겠다며 그의 주소를 묻기까지 했다. 갑자기 변한 내 모습에 비로소 깨달았다. 어머니가 떠난 지 수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어머니의 빈자리를 겨우 받아들이게 되었고, 주변과 내 자신을 둘러볼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꾸준히 연락을 해 오는 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사실 나는 안다. 오래전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성당의 대녀(代女)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을 때 명절이나 연말이 되면 그 아이의 가족에게 안부 연락을 했다. 그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이 되었고, 떠난 아이를 절대 잊지 않겠다는 일종의 다짐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내 전화를 부담스러워하는 듯한 목소리에, 나는 연락을 그만두었다. 그만하면 대모(代母)로서 최선을 다했고, 내 전화를 받을 때마다 대녀의 가족들은 떠난 아이를 떠올리게 될 테니 이제는 걱정을 거두라는 신부님의 말씀이 옳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수년이 흐른 지금에야, 그때는 서운했던 대녀 가족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스승의 딸인 나를 잊지 않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우리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예전에 그와 잠깐 만난 적은 있지만, 얼굴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일방적으로 받기만 했던 그에게 이제는 내가 마음을 건넬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