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의 불안일기
2012년 어느 가을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어젯밤 뒤척이다 3시쯤 잠이 들었다. 아침이 오는 것이 달갑지 않다. 아침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정말 있을까? 아침부터 부은 느낌도 너무 싫다. 거울로 확인하고 싶지 않지만, 또 그래야겠지.
어제도 다이어트가 실패로 돌아갔다. 20살 겨울 폭식이 시작된 이후로는 다이어트가 계속 도돌이표인 것 같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다짐을 한다. 오늘은 1000kcal만 먹어보자. 내일은 아예 저녁만 먹어보자. 다이어트는 마치 이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매일 실패를 준다. 어제도 그런 날의 하루였다.
오후 5시까지 요거트와 사과 반쪽 먹은 게 다였다. '아. 이제 살이 좀 빠지겠군.' 하려는데 학교에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또다시 충동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런 충동은 항상 나를 의지를 이겨먹는다. 마치 비가 새는 천장을 이곳저곳 겨우겨우 셀로판 테이프로 막아보고 있는데, 갑자기 폭우가 퍼붓는 느낌이다. 턱도 없는 느낌. 손도 써볼 수 없는 느낌. 이럴 때면 나는 너무나 무력하다. 지하철에서 내려 개찰구를 지나 집 방향으로 가지 않고, 반대쪽에 있는 파리바게뜨로 향했다. 이제는 거의 포기 상태이다. 나의 예산은 만 원이니까.. 양이 많고, 가격이 괜찮은 게 뭐가 있을까 둘러본다. 아예 큰 빵을 사거나, 한 봉지에 작은 도너츠나 파이가 많이 든 것을 고른다. 이럴 때는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 1000칼로리만 먹기 위해 아침부터 쫄쫄 굶었던 나와 지금 파리바게뜨에서 칼로리는 내팽개치고 크고 많은 빵을 고르는 나는, 정말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게 어제도 집에 와서 방문을 잠시 잠가두고 꾸역꾸역 빵을 먹었다. 저녁은 엄마한테 먹지 않는다고 말해두었다. 언뜻 엄마의 뚱한 표정이 얼굴에 비치긴 했지만 그걸 신경 쓸 기력도, 정신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루하루 다이어트에 치여 내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속에 있는 듯 옆에서 무슨 얘기를 해도 웅웅대서 또렷이 들리지 않는 느낌이다.
오늘은 정말이지 일어나고 싶지 않다. 일어나면 내 부은 얼굴과 어제 먹은 빵으로 인해 찐 살을 마주해야 하니까. 오늘이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