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의 불안일기
섭식장애를 겪고 나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아주 당연하게도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선생님은 그럼 이제 살찌는 게 두렵지 않은거예요? 저 같은 사람들이 매일 와서 하소연하고 힘들어하는 데 그걸 보면 불안해지지 않나요?”
그들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를 알기에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답하려 한다.
“당연히 두렵고 불안하죠. 강도만 약해질 뿐 살찌는 거에 대한 두려움은 아마 평생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는 (추측컨대)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이해하거나 해결해보려는 이들이다. 멀쩡하게 잘 먹고 잘사는 데 굳이 머리 아프게 뇌의 구조나 감정의 종류, 내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애써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심리학은 ‘내가 겪고 있는 섭식장애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고, 학부 전공이 아님에도 스스로 찾아가며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가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으니까.
심리 상담 역시 비슷한 이유로 받기 시작했다. 몇 년을 ‘혼자 극복해볼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버텨왔지만, 사실 나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폭식으로 최고 몸무게까지 찍었는데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더 살이 찌지는 않을 거 같기도 했다. 그래서 급하게 알바를 해서 딱 100만원을 모아 혼자 섭식장애를 전문으로 하는 정신과를 찾아갔다. 그 이후로 나는 대학교 상담센터, 사설 상담센터를 가리지 않고 힘들 때마다 SOS를 청했다. 일단 뭐든지 체험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라서 개인상담도 집단상담도 가리지 않고 다 받아보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나는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혹자는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에서 심리상담 공부를 시작한다던데 나는 그보다는 ‘나 스스로를 더 파보자’라는 마음이 훨씬 컸더랬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가 섭식장애를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수많은 고민과 생각 끝에 많이 알게 되었다. 거기에 더불어 나에게는 “살이 찌든 안찌든 상관없이 너를 사랑할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옷을 입을 때 끼는 느낌이 들거나, 생리 전후로 배가 더부룩해지거나, 평소보다 더 부어 보이는 날에 내가 백퍼센트 진심을 담아 “응. 완전 상관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머리로는 ‘그래. 체중은 항상 왔다갔다 할 수 있고, 부어도 사람들은 나를 신경쓰지 않을 것이며, 나의 가치는 체중에 있지 않지. 그러니까 너무 불안해 말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날이면 다이어트 제품 광고들에 더 시선이 꽂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마음이 들 때면 나는 나의 불안함을 담아 글을 쓴다. 글을 쓰다보면 무심코 지나쳐왔던 ‘나의 고군분투기’를 발견할 때도 있고, 글을 쓰면서 내 경험이 이해될 때도 있으며, 감정을 털어내는 그 자체로도 위안을 받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짠! 저는 이제 음식을 볼 때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요. 살이 찌든말든 1도 상관이 없죠.’라는 동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혹여나 ‘섭식장애를 극복한 상담자’이기에 그런 희망을 기대했다면 송구스럽지만 나는 앞으로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쓰는 글을 보면서 ‘아. 이 사람도 정말 많이 불안했고, 아직도 불안하구나. 그래도 괜찮구나.’라는 위안 정도를 받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