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윤아 Nov 13. 2020

"저는 식이장애를 겪은 식이장애 전문 상담사입니다"

상담사의 불안일기

섭식장애를 겪고 나서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면 아주 당연하게도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선생님은 그럼 이제 살찌는 게 두렵지 않은거예요? 저 같은 사람들이 매일 와서 하소연하고 힘들어하는 데 그걸 보면 불안해지지 않나요?”


그들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를 알기에 나는 최대한 솔직하게 답하려 한다.

“당연히 두렵고 불안하죠. 강도만 약해질 뿐 살찌는 거에 대한 두려움은 아마 평생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심리학에 관심을 가지는 (추측컨대)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이해하거나 해결해보려는 이들이다. 멀쩡하게 잘 먹고 잘사는 데 굳이 머리 아프게 뇌의 구조나 감정의 종류, 내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애써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그랬다. 심리학은 ‘내가 겪고 있는 섭식장애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다. 그래서 더 흥미로웠고, 학부 전공이 아님에도 스스로 찾아가며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가 결국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었으니까. 


심리 상담 역시 비슷한 이유로 받기 시작했다. 몇 년을 ‘혼자 극복해볼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버텨왔지만, 사실 나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폭식으로 최고 몸무게까지 찍었는데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더 살이 찌지는 않을 거 같기도 했다. 그래서 급하게 알바를 해서 딱 100만원을 모아 혼자 섭식장애를 전문으로 하는 정신과를 찾아갔다. 그 이후로 나는 대학교 상담센터, 사설 상담센터를 가리지 않고 힘들 때마다 SOS를 청했다. 일단 뭐든지 체험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라서 개인상담도 집단상담도 가리지 않고 다 받아보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나는 대학원에도 진학했다. 혹자는 ‘누군가를 돕고 싶은 마음’에서 심리상담 공부를 시작한다던데 나는 그보다는 ‘나 스스로를 더 파보자’라는 마음이 훨씬 컸더랬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가 섭식장애를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수많은 고민과 생각 끝에 많이 알게 되었다. 거기에 더불어 나에게는 “살이 찌든 안찌든 상관없이 너를 사랑할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옷을 입을 때 끼는 느낌이 들거나, 생리 전후로 배가 더부룩해지거나, 평소보다 더 부어 보이는 날에 내가 백퍼센트 진심을 담아 “응. 완전 상관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머리로는 ‘그래. 체중은 항상 왔다갔다 할 수 있고, 부어도 사람들은 나를 신경쓰지 않을 것이며, 나의 가치는 체중에 있지 않지. 그러니까 너무 불안해 말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날이면 다이어트 제품 광고들에 더 시선이 꽂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마음이 들 때면 나는 나의 불안함을 담아 글을 쓴다. 글을 쓰다보면 무심코 지나쳐왔던 ‘나의 고군분투기’를 발견할 때도 있고, 글을 쓰면서 내 경험이 이해될 때도 있으며, 감정을 털어내는 그 자체로도 위안을 받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짠! 저는 이제 음식을 볼 때 정말 아무 생각이 없어요. 살이 찌든말든 1도 상관이 없죠.’라는 동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혹여나 ‘섭식장애를 극복한 상담자’이기에 그런 희망을 기대했다면 송구스럽지만 나는 앞으로도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쓰는 글을 보면서 ‘아. 이 사람도 정말 많이 불안했고, 아직도 불안하구나. 그래도 괜찮구나.’라는 위안 정도를 받아갔으면 좋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