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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리 Oct 14. 2023

[서른수집기] 뉴욕의 재즈 피아니스트 지희의 서른

뉴욕 맨해튼의 서른은 한국의 서른과 다를까?


지희 뉴욕 맨해튼에서 재즈피아노를 연주하는 아티스트이다. 뉴욕에서 생업을 하며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대단한데, 자신의 이름으로 낸 앨범도 있고, 이름만 대면 알만한 뉴욕의 재즈클럽에서 공연도 했다. 예술 쪽 진로는 생각해보지도 않은 내가 동경하지 않을 수 없다.


중학교 1학년때 만난 지희는 2학년 때 미국으로 떠났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긴 시간을 공유하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늘 여전하고 어제 만난 것처럼 어색함이 없는 고마운 친구이다. 언제나 궁금했지만 잘 알 수 없었던 그녀의 서른을 수집해 보았다.


자기소개 부탁해~

안녕하세요. 저는 뉴욕에 사는 서른 살 지희(가명)입니다.


피아노 연주할 때 가장 멋진 지희. 뉴욕의 한 재즈클럽에서.

뉴욕의 재즈 피아니스트

- 뉴욕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거야?

프리랜서로 일하는데 직장이 여러 개야. 피아노 레슨, 재즈 오케스트라 매니저, 교회 반주, 한글학교 교사를 하고 있어. 


제일 많이 시간을 할애하는 건 피아노 레슨이고, 수입이 제일 많아. 재즈 오케스트라 매니저로는 공연 관계자들 일정 짜는 것부터 시작해서 끝나고 회계사한테 보고하는 것까지 다 거의 다 한다고 보면 돼. 아티스트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이지. 한글학교는 그냥 사이드로 해. 거의 취미생활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너무 바쁜 것 같아.

 

- 아이고. 포(four) 잡이네.     

그렇지. 거기에 음악도 하고 있어. 금요일 저녁에도 레스토랑에서 밴드 연주가 있고, 뉴욕에서 열리는 서머 스테이지에서 밴드로 오프닝도 할 예정이야.


- 멋지다. 뉴욕에서 생활하는 건 좀 어때?

아무래도 뉴욕에 살면 시야가 좀 넓어지는 것 같아. 다양한 인종들이 살고, 나랑 같은 꿈을 향해서 가는 사람이나 유명한 음악인도 많이 볼 수 있으니까. 그러면서 많이 배우는 것 같아. 재즈 공연도 자주 볼 수 있고. 또 뉴욕이 미국 중부나 다른 곳들에 비해서 한국에서 살 때랑 비슷한 느낌이 좀 나기도 해. 미국 안에서 차 없어도 한국처럼 돌아다닐 수 있는 거. 그런 게 좋은 것 같아.


근데 또 내가 뉴욕에서 이사를 많이 다녀서 한 군데에서 정착하기는 좀 어려운 것 같아. 그리고 내 주변의 서른 살은 너무 하고 있는 게 엄청 다양하거든. 한국에 있으면 옆에서 이 때는 어떻게 해야 되고 이런 걸 듣게 되잖아. 여긴 그런 게 없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많이 반영하지도 않는 것 같아. 그러다 보니까 나도 '너무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도 가끔 들어. 뭐든 혼자서 스스로 해야 되는 느낌이 좀 단점인 것 같기도 해.

 

뉴욕에서 맞이하는 서른

- 너는 중학교 때부터 미국에 살았고, 뉴욕에서 일을 하고 있잖아. 미국에서 맞는 서른은 어땠는지 궁금했어

하하. 나는 일단 미국에서 살면서 한국인이라는 걸 많이 느껴. 어릴 땐 정체성이 불분명했는데 뉴욕 와서 느낀 것 같아. 한국인이야 나는. 그래서 좀 신경은 쓰이지. 


그리고 미국에서도 보면 맨날 인스타그램 광고에 난자 냉동하는 게 떠. 서른 살 전이면 난자 냉동을 공짜로 할 수 있다고. 그러다 한 5초 있다가 나오지. 기부를 하면 공짜로 해준다고. 그리고 최근에 만난 미국 친구들도 그런 비슷한 얘기를 했어. 서른을 떠나서 신체적인 한계랑 관련이 되는 거 같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나이라는 게 정해져 있는 거잖아. 그런 것 때문에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아. 또 미국에도. quarter life crisis(번역: 1/4 생활의 위기, 사람들이 삶의 새로운 장을 시작하면서 불확실성과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고통의 시기)라는 게 있어.

 
- 불확실한 시기라는 거구나

응응. 지금은 뭔가를 딱 결정할 수 있는 시기잖아. 내가 전공을 살릴 건지 다른 걸 할 건지.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 돈 생각도 예전보다 좀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
 

- 돈 생각이라면?

이제 혼자 책임지고 살아야 하고, 미래를 생각해야 하니까. 하루 벌어 하루 살기는 조금 그렇잖아. 처음에는 돈 벌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거에 되게 감사하고 행복했는데 이제 점점 기대치가 높아지는 것 같아. 처음에는 ‘이렇게 해서 돈 벌 수 있을까? ’ 하다가 이제는 ‘돈 더 벌 수 있을까?’ 나는 좀 레슨이 돈이 잘 벌리니까 이걸로 해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고. 연주라는 건 어찌 됐건 불확실하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음악을 해야 하는 건가?' 하는 고민이 있어. 사실 지금은 뭐든 하려면 할 수 있으니까. 지금은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아. 

 

내가 하는 선택의 무게

- 선택을 해야 하는 시기?
응. 이제는 선택이나 내 노력에 대한 결과가 온전히 내 어깨에 있는 것 같아. 내가 짊어져야 하는 거지. 그게 어려운 것 같아. 사실 이런 고민을 하는 것도 내가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싶어서 이렇게 얘기하는 거 아닐까 싶어. 학교 다니고 가족의 일원으로서 있을 때는 다른 사람 영향을 많이 받지만, 독립하면서 그런 생각도 이제 스스로 하려고 하고. 이제는 친구들도 좀 덜 만나게 되고 일도 하면서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아.


- 진짜 나로서의 어떤 정체성을 찾는 시기라고 해야 할까?

응. 어릴 때는 선생님이 필요했잖아. 누군가 나한테 어떻게 하라고 알려줬다면 요즘은 이제 내가 뭐가 부족한지 알아. 거기서 내가 그것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의 선택인 것 같아. 지금은 수입도 고정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안정적이거든.
 

- 미국에서 계속 지낼 건지 아니면 한국에 갈 건지도 좀 고민이 될 것 같아.

그건 완전 지금 내가 하는 이 모든 고민의 기반이야. 일도 비자랑 관련돼서 하고 있고. 아티스트 비자이기 때문에 음악 관련된 일을 해야 하거든. 비자도 그렇고 영주권 문제도 그렇고. 그런 게 제약이 있지. 아무래도.


연애도 고민이야. 내가 지금 연애를 하고 있지만 만약에 내가 한국에 가면 어떻게 해? 결혼은 어떻게 하고 식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도 그렇고. 양가 부모님은 어떻게 하고. 나중에 아이를 낳는다면 '내가 한국인이라 문화 차이 느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


음악을 안 하면 난 한국에서 살고 싶어. 근데 음악을 할 것 같으면, 한국 가면 할 수 있는 게 없어. 전공을 살리지 못할 것 같아. 한국에서도 재즈 연주하는 사람은 한대. 근데 5만 원씩 받으면서 매일매일 연주한다 해도 100만 원밖에 안 되는 거지. 하하. (너무 적긴 하다. 생계가 어렵겠네.) 자기만족이지. 미국도 그런 식이긴 한데, 그래도 미국은 연주만 하고 살 수 있으니까. 완전히 풍족하게는 아니더라도.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는 냥집사 지희. 지희네 고양이는 무려 '앉아'를 할 줄 안다!

- 비자 따는 것도 쉽지 않다고 들었어

맞아. 변호사 비용도 많이 들고 할 게 많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해. Press(번역: 언론보도) 같은 것도 필요하고. 활동 내용이나 이런 걸 다 영끌에서 오는 거지. 내 이름이 들어가야 하고 내가 스타가 돼야 해. 좀 유명한 사람들한테 추천서도 받아야 하고, 작곡도 해야 하고.


- 요즘 좀 제일 고민하는 건 비자에 대한 거야?

그렇지. 기간이 얼마 안 남아서 비자에 대한 게 제일 크고, 이게 지나가면 또 음악하고 커리어에 대한 게 제일 커지겠지? 나는 내가 그동안 쏟아부은 시간이 흐지부지될까 봐, 그게 인생에서 제일 두려운 것 같아.

 
아는 한국 언니들이 그런 얘기들을 하더라고. 뿌린 대로 거둔다고. 씨앗을 뿌리면 그게 뭐가 나긴 난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그게 소용없는 게 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 정말 그럴까? 지금은 잘 모르겠어.      


이전의 상처를 딛고 조금 더 성숙한 연애로

- 아까 연애나 결혼 얘기도 잠깐 하긴 했었는데, 요즘 연애는 좀 어때?      

나는 항상 연애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내 일에 대한 욕구가 커서 연애할 때도 그 성향이 드러나는 것 같아. 음악인을 만난다거나, 자기 일을 잘하는 사람을 만나. 나한테 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걸 다른 사람들한테 원하는 것 같아.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는 처음으로 음악을 안 하는 사람인데, 피아노를 잘 치긴 해.


그전에 연애를 할 땐 초반부터 막 좋아하고 했었는데 지금은 좀 다른 것 같아. 연애 초반에는 우리 둘 다 전 연애에서 상처가 있어서 눈치를 좀 보다가 요즘은 조금 더 오픈된 것 같아. 되게 새로워. 얘가 이만큼 받아주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얘기해 보니까 수용해 주는 부분도 있고. 고민도 잘 들어주고 나를 위해서 현실적인 조언도 많이 해줘.


- 결혼도 좀 생각해?

결혼보다는 아이를 생물학적으로 생각했을 때 좀 일찍 낳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좋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아이를 갖고 싶지 않을까? 나의 미니미를 만든다기보다는 그 사람의 미니미. 근데 지금 상황에서 결혼 생각은 별로 없어.

 
- 아이에 대한 생각은 있구나. 경력 단절 같은 거에 대한 고민은 없어?

남편에 따라 다를 것 같아. 수입, 성향 아니면 그 사람이 시간을 내서 아이를 봐줄 수 있는지. 근데 나의 커리어를 서포트하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시간 내서 나 뭐 일 있거나 고민했을 때 봐주고 그러지 않을까? 아니면 주변에 보면 오페어 같은 거도 쓰고.


남자친구는 대리모 얘기도 하더라. (진짜?) 그냥 '누가 좋다고 하던데?' 이런 식으로. 그러면서 나한테 '그런 거 어떻게 생각해?' 그러는 거야. 돈만 있으면 뭐. 하하. 그렇게 나한테 현실성 없는 얘기들도 자주 해.


나만의 작업물을 만드는 일

-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어?

내가 주체가 돼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싶어. 지금처럼 가르치고, 연주하고, 오케스트라 매니징하면서 같이 투어 가고 하는 것도 너무 좋지만, 이런 것들은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일인 것 같아. 작곡을 하거나 내 공연을 하는 것, 내가 기획하는 걸 해보고 싶어. 지금도 음악일을 하면서 뉴욕에서 살 수 있는 게 감사하지만 스스로 만들어낸 걸로 돈을 벌고 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앞으로 뉴욕이나 한국 어디에 살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고 싶어. 친구들, 가족들이랑 연락도 자주 하고.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지금은 뉴욕에서 치열하게 살기 때문에 내가 이루고 싶은 걸 이룬 다음에는 좀 편안하게 릴랙스 한 삶도 살아보고 싶어. 지금까지는 바로 코앞에 있는 걸 계획해 왔다면 이제는 5년, 10년 이런 장기 목표를 세워보면 좋을 것 같아.

    

- 너무너무 응원해. 10년 뒤의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 생각에 그때의 나는 뭐든 바쁘게 하고 있을 것 같아. 나는 항상 바빠. 친구들에 비해서 내가 제일 바쁘긴 한 것 같아. 미국 친구들 한국 친구들 다 맨날 나한테 하는 소리가 그랬어. "You are so busy"(번역: 너는 너무 바빠). 그래서 10년 뒤의 나한테는 좀 쉬라고 하지 않을까? 음.. 근데 사실 안 쉴 것 같아. 하하. 그냥 궁금하네. 그동안 살아오면서 해온 것들이 마흔이 되면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해. 그것 때문에 지금이 힘든 거 아닐까? 그걸 모르니까. 불확실한 건 항상 있는 거잖아.

 
- 그래. 나도 궁금해지네. 마흔 살의 너한테도 꼭 한 번 더 물어볼게.

좋아. 하하.

          



지희와의 인터뷰에서 많이 나왔던 단어는 선택과 독립, 책임과 같은 것들이었다. 지희는 자신의 커리어를 탄탄하게 쌓아오며 기반을 만들어왔고, 이제는 자신이 더욱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가기를 원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뉴욕의 서른이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삶의 방식에 있어서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진다는 점인 것 같다. 그들 역시 출산과 같은 신체적 한계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것은 정말 새로웠다.

급식실 앞에서 말뚝박기를 하며 말괄량이처럼 웃던 지희는 여전히 해맑은 미소로 뉴욕에서 독립된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비자와 같은 생활과 직결된 문제부터 자신의 커리어를 만들어나가는 일까지 이미 스스로 많은 것을 해내고 있는 지희가 정말 존경스럽다. 피아노 칠 때 가장 멋있는 지희가 자신이 원하는 길을 잘 찾아갈 수 있기를 응원한다. 그 길이 직선도로가 아니라 곡선 도로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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