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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리 Oct 04. 2023

[서른수집기] 어느덧 7년 차, 스튜어디스 수연의 서른

스튜어디스 수연의 일과 사랑에 대한 고민


수연이와는 용인의 작은 초등학교 5학년 2반에서 처음 만났다. 야외활동을 많이 했는지 까맣게 탄 얼굴 사이에서 보였던 또랑또랑한 눈빛이 언뜻 기억난다. 중학교를 함께 진학하고 같은 반이 되어 지내며 더욱 친해졌고, 2년 전부터 나와 함께 독서모임을 꾸려나가고 있다. 수연이는 대학교에서 통계를 전공했고, 졸업하기 전에 스튜어디스가 되어 어느덧 7년 차에 접어들었다. 일을 빨리 시작했다는 건 알았지만 7년 차라니. 새삼 대단해진다. 가까이 지냈지만 한 번도 직접 물어본 적 없는 이야기. 서른이 된 수연이의 일과 사랑에 대한 고민을 들어보았다.   


- 자기소개 부탁해~

안녕하세요. 대작가 유나리 씨와 15년도 넘은 친구 이수연(가명)이라고 합니다~ 국내 LCC 항공사(low-cost carrier, 저가항공사)에서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고 17년도에 입사해서 벌써 만 6년 차 다 돼 갑니다. 연차로는 7년 차, 이렇게 됐습니다.

나의 18년 지기 친구 수연


눈 떠보니 7년 차 스튜어디스

- 우와. 7년 차. 벌써 그렇게 됐구나. 일을 빨리 시작했지?

응응. 그렇지. 나는 되게 일찍 취업을 했고 처음에 내가 입사를 했을 때는 주변보다 1년에서 2년 정도는 평균적으로 다 내가 빠른 편이었어. 그리고 항공업계가 그래도 보수가 나쁘지 않아서 괜찮다고 생각했어.


- 승무원이 된 과정은 어땠어?

사실 나는 취업을 되게 오래 준비하지도 않았고 운이 좋아서 그냥 첫 지원에 최종까지 다 붙었어. 그렇게 해서 운이 좋게 빨리 됐는데 항공사로 갈 거였으면 차라리 좀 더 준비를 해서 항공사에 가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요즘은 해.
 

- 네가 갑자기 승무원이 됐다길래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 승무원을 하게 된 계기가 있어? 

대학교 때 홍보대사를 했었는데 그때 내 주변에 친했던 언니들이 승무원을 많이 준비하는 걸 봤고, 그래서 좋은가보다 싶기는 했지. 그러다가 내가 취업할 때가 되니까 나도 지원을 해볼까? 했는데 너무 빨리 돼버린 거지. 근데 사람이 내가 가지 않는 길에 대한 동경이 있잖아. 좀 더 해봤으면, 아니면 아예 전공을 살려서 통계 쪽도 좀 넣어보고, 안 되면 승무원 준비를 했어도 되지 않았을까. 그런 거에 대한 후회도 있었지.


근데 항상 이게 업다운이 있는데, '이직을 해야겠다. 승무원 오래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다가 요즘은 요즘은 비행기 좋아져서 열심히 하고 있어. 사실 코로나 때까지만 해도 빨리 때려치워야겠다 생각했지. '이 코로나가 하늘이 주신 기회다' 그렇게 생각도 했었고. 하하.
 

네가 통계학과를 졸업했잖아. 근데 이제 그쪽 전공을 살리지 않은 이유는 뭐야?

나는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외국에서는 한국인들이 굉장히 수학을 잘해. 하하. 그래서 나도 수학을 잘했고. 그중에서도 나는 특히 통계를 재밌어했고 잘했어. 그래서 '나는 정말 통계를 잘하는구나' 이렇게 생각을 한 거지. 그런데 통계가 한국에서는 왜 인지 모르겠지만 커트라인이 낮았어. '나는 통계를 좋아하니까 개이득인걸?' 이렇게 생각하고 통계학과를 넣었는데 된 거지.


그래서 들어가자마자 좌절을 맛봐. (하하하) 한국 애들은 정말 로봇이야. 우리는 다 계산기로 하고 컴퓨터로 했단 말이야. 미적분도 그렇고. 근데 한국 애들은 우리가 처음 보는 수학을 다 이미 한 거야. 학과 필수 과목에 수학이 있어. 그래서 맨날 죽 쑤고. 그래도 해보려고 도전했으나 '안 맞는다', '내가 통계로는 좋은데 취직하기가 쉽지 않겠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또 흥미도 승무원에 있었으니까 들어갔지. 어쨌든 그렇게 승무원이 됐고, 오래됐다.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하하.

 

나랑 적성이 참 잘 맞는 일

- 일은 할 만해?

응. 체력적으로 힘든 거 빼고는 괜찮아. 내가 요즘 점점 더 느끼는 건데 나랑 적성이 참 잘 맞는 것 같아.


- 어떤 점에서?

일단 나는 엉덩이가 가볍고 지긋이 앉아 있는 일을 별로 안 좋아하고, 싫증을 잘 내는 스타일인 것 같아. 변화하는 걸 좋아하고 좀 다이내믹한 걸 좋아하는데 아무래도 우리 근무 환경이 계속 가는 곳도 바뀌고, 일하는 사람들도 매번 바뀌고, 손님도 매번 바뀌잖아. 그런 게 좋아.
 

그리고 근무 외에 스트레스가 별로 없어. 비행이 끝나면 끝이고, 큰 과제가 있어서 엄청 머리를 쓴다든지 그런 게 별로 없고. 나는 술도 잘 못 먹고 회식 문화에 안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것도 없고. 동료들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 너무 친하게 지낼 필요도 없고 적당히 친하고. 그냥 가벼운 수다 정도만 할 수 있는 그런 관계. 그런 게 좋은 것 같아. 
 

- 일정이나 스케줄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건 불편하지 않아? 휴가를 미리 잡기가 어렵다거나.

맞아. 그건 진짜 힘든 일이지. 스케줄 근무의 특징이긴 한데, 스케줄을 좀 늦게 알려주고 연차 반영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힘들긴 해. 내가 배우고 싶은 게 생겨도 출퇴근시간이 일정하지 않으니까 정기적인 강습을 받기가 힘들고, 약속 잡기도 힘들어. 남이 쉴 때는 다 쉬는 이유가 있다 이런 생각이 드니까. 지금도 사무직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지원해 보려고 하고 있어.


- 승무원도 나이가 들수록 고민이 많아진다고 하던데 그런 건 좀 어때?

음~ 나이가 들어서도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인가? 그건 쉽지 않은 일인 건 맞아. 비행기 타는 게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일이고, 우리는 시차를 자꾸 넘나들고 비행 자체를 밤늦게 가거나 막 밤을 새우고 오고 이런 경우가 많으니까. '이 일을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는가?' 이거에 대한 고민은 항상 있는 것 같아.


애를 낳아서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고민이야. 왜냐하면 애를 낳았어. 근데 애를 두고 내가 3박 4일 비행을 가야 돼. (아이고) 아빠가 프리랜서고 맨날 집에만 있어. 그럼 상관이 없지. 근데 그런 사람은 많이 없잖아. 그럼 애는 누가 키워? 보모를 두기도 쉽지 않은 게 보통 직장인 맞벌이 부부는 정해진 시간에 항상 그 보모를 부르잖아. 나는 그런 것도 어렵지.

비행 후 잠시 휴식 중인 수연

7년 차 평사원의 고충

- 서른을 지나면서 요즘 좀 새롭게 하게 되는 고민이 있어?

많지. 일적인 부분에서도 고민도 있고 연애에 관해서도 고민이 있는데, 일적인 얘기를 쭉 하고 있었으니까 일단 진급이지. 내가 아직 사원이거든. 코로나 때문에 진급이 거의 없었기도 했고 대리 진급 대상자들이 너무 많아. 그래서 첫 번째 때는 당연히 안 될 걸 알고 있었고, 올해도 밀렸어. 사실 올해도 7~80%는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단 말이야. 그래도 막상 또 안 되니까 기분이 안 좋더라고.


내가 입사를 17년에 했는데 아직도 내가 평사원이니까. '어느 회사가 이렇게 대리가 달기가 힘든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가 '내년까지만 한 번 더 해보자' 이런 마음도 들었다가. 왔다 갔다 해.
 

사회가 정한 정답과 목표에서 나는 어디쯤에 있을까

- 정말 그렇겠다. 그러면 다른 고민은?

다른 고민은 내 주변 사람들이 슬슬 삶의 방향이 너무 다양해지잖아. 나름 비슷한 길로 걸어가고 있던 사람들이 다 뿔뿔이 흩어져서 나뉘니까 나는 그쯤에서 어느쯤에 있나. 하는 거지. 특히 우리나라 사회는 결혼과 행복한 가정이 뭔가 인생의 정답과 목표라는 느낌이 무언에 깔려 있잖아.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하게 사는 게 목표여야 되는데 가정을 꾸리는 게 목표처럼 느껴지니까. 그런 데서 약간의 조바심이 나는 거지. 잘 사는 것의 정의도 그냥 자기들이 행복한 소소한 행복함이 아니고, 경제적으로도 잘 살고 가정적으로 행복도 추구해야 되고. 아무튼 결혼이 해야 될 것 같은 거지. 그러니까 좋은 사람을 만나서 할 수 있는 선택지 중에 하나가 결혼인 게 아니고 결혼이 먼저가 되는 것 같아.

 
- 결혼이나 출산에 대한 고민이 있구나.

근데 사실 애 안 낳을 거면 결혼 안 해도 되지. 난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해. 그냥 가볍게 연애하고 동거하고. 근데 이제 아기를 낳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면 신체적인 것도 그렇고 법적인 보호를 받으려고도 그렇고 결혼을 해야 되는 거지.
 
사실 나는 아기를 별로 안 좋아했어. 그런데 사람이 나이가 드니까 예전엔 정말 예쁜 아기만 예뻐 보였는데 이제 못생긴 아기도 예쁘고 귀여워 보이고, 그러더니 생각이 조금씩 바뀌면서 '애를 한번 낳아보고 싶다.' '이 세상에 나를 닮고 또 괜찮은 사회 구성원을 낳아서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도 내가 신기하다고 생각하는데 근데 그런 생각이 자꾸 들더라. 어릴 때부터 금융교육도 야무지게 시키고, 가정교육이나 예절교육도 잘 시키고 싶은. 사교육에는 너무 목매지 않고 자연에서 이런 풀과 벌레와 흙을 만지면서 모래를 좀 주워 먹는 애로 키우고 싶어.

 
내가 요즘 소개팅을 계속하고 있는데 그전에는 뭐 얼굴이 중요했고 직업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일단 결혼 생각이 있는 사람이 중요하지. 잘 만나고 있는데 알고 보니까 독신주의야. 아니면 알고 보니까 딩크야. 그러면 안 되니까. 결혼 생각이 있고 아기 생각이 있는 사람. 그게 중요한 것 같고 성격이 가정적인가? 다정한가? 뭐 이런 거
 
- 그런 게 요즘 관심사겠네.

응. 내 삶을 어떻게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갈 것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게 제일 요즘 내 관심사고 지금 열중하고 있는 것 같아.

 
그리고 나는 엄청난 부를 이뤄서 서울 한남 뭐 잠실에 살고 싶다는 꿈은 없지만, 적당히 신도시 같은 곳에서 공원과 자연과 가까운 인프라를 누리면서 살고 싶단 말이야. 근데 그것도 사실 제로베이스에서 너무 힘들잖아. (거의 불가능이지.) 하하. 그 정도의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월급 이외의 재테크에도 관심이 많지.

수연이의 취미는 클라이밍이다. 엄청 잘한다!

응원할게. 마지막으로 마흔 살의 너한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어릴 때의 나한테는 너무 쉬운 길을 가려고 하지 라고 할 것 같아. 왜냐하면 내가 내 인생을 좀 돌아봤을 때 좀 쉬운 길을 운이 좋게 좀 빨리 많이 갔어. 그래서 나도 치열하게 한번 해보고 했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후회가 남더라고. 너무 쉬운 길로만 가려고 하지 않고 좀 도전하고 뭔가 열심히 하면 좋겠다.


그런데 마흔의 나한테는.. 마흔에 나는 더 편했으면 좋겠어. 마흔부터는 좀 여유가 더 있고 삶이 그냥 좀 편하게 흘러갔으면 순탄했으면 좋겠어. 지금 열심히 살아서. ‘애는 편하게 그냥 자연에서 풀어놓고 그렇게 그 초심을 잘 지키면서 살고 있지? 유난스럽지 않고 너의 삶을 살면서 애가 제일 우선이 아니고, 애도 중요하지만 그 발란스를 잘 잡으면서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주고 싶네. 하하.


- 그래. 마흔의 너에게 꼭 다시 얘기해 줄게. 아이가 많이 컸겠구나.

그렇지? 하하하.




수연이의 서른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이정표에서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를 고민하고,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주체적으로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시간인 듯 보였다. 내가 있어야 할 위치를 정의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지금을 통해 수연이는 점차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는 옆에서 그런 수연이를 지켜보다가 마흔 살에 물어봐야지. "마흔은 좀 어떠니? 답을 찾은 것 같아?"

가끔 비행기를 탈 일이 있으면 승무원들을 보며 수연이를 떠올린다. '수연이가 저렇게 탑승안내를 하겠구나', '저렇게 비상구 안내를 하겠구나' 상상하며 혼자 신기해할 때도 있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에게는 이른 나이에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한 수연이가 그저 대단하다. 수연이가 언제나 자신이 정한 위치에서 밸런스를 잘 잡으면서, 그렇게 편안하게 지내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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