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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나리 Oct 19. 2023

[서른수집기] 찐 외향인, 10년 차 과장 봄이의 서른

그녀가 실명인터뷰를 요청한 이유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 봄이는 인터뷰를 실명으로 실어달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의 번호를 적어달라고 했다. 누군가 나랑 친해지고 싶어서 연락을 할 수도 있다는 이유였다. 그녀의 요청에 따라 봄이와의 인터뷰는 실명으로 올린다. 번호를 올리겠다는 것은 겨우 겨우 만류했다!


봄이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났고, 고등학교 2~3학년 때 붙어 다니며 친해졌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급식실을 가장 사랑했다. 점심시간 1시간 내내 급식실에서 밥을 먹으며 수다를 떨었고, 소화가 좀 되면 다시 밥을 받아먹었다. 


봄이는 10년 차 직장인이고, 최근에 과장님으로 신분이 상승했다. 항상 누군가를 만나느라 바쁜 봄이과장님의 서른을 인터뷰했다.


- 자기소개 해줘~
한지 10년 차가 된 과장 이봄이입니다. 


- 와 벌써 10년 차라고?

그러네. 그때는 빨리 일하면 좋은 거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이직할 때 딱 한 달 쉬고 한 번도 안 쉬었어. 대단하지? (진짜 대단하다) 근데 난 어딜 가도 약간 그랬을 것 같아. 이 업계가 아니더라도 모든 것에 그렇게 딱히 불만을 가질 만한 성격은 아니라서. 내 일이니까 내가 해야지라고 생각해.
 

얼굴이 나온 사진을 올려달라고 한 봄이

- 역시 과장님은 아무나 되는 거 아니네. 친구들보다도 엄청 빨랐겠다.

응. 그래서 예전에 내가 했던 고민들을 친구들은 지금 하고 있더라고. 나는 남들보다 연애, 결혼 이런 것도 엄청 빨리 고민을 시작한 것 같아. 지금은 일에 대해 고민할 게 없으니까. 다른 거 시작하기엔 너무 늦고, 사실 일에 권태기도 없었어. 나는 지금이 너무 여유로워.
 
-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 좀 부탁해.

국토지리정보원이라고 국토부 산하기관이 있어. 거기서 일을 받아서 하는데 주로 지도를 만들어. 카카오나 네이버 지도에 들어갈 백(back) 판을 만들면 거기서 위에다 그쪽에서 필요한 걸 올리는 거야. 우리는 그 백판을 매년 갱신해 주고.
 

- 그 일이 나한텐 좀 생소하게 들렸는데, 진로를 그쪽으로 하게 된 이유가 있어?

사촌 언니가 원래 이 일을 하고 있었거든. 이 일도 할 만하다고 해서 갔지. 형부도 이쪽에서 일을 하고 있어.

 

- 일은 만족스러워?

응. 이제 이 일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다 알고 회사 내에서도 거의 중간급이라서. 일하는 거나 생활하는 거 다 편하고 이쪽으로는 괜찮아. 그리고 난 아프다가도 회사 간다고 하면 괜찮아져. (왜??) 사람 만나는 게 좋은 것 같아. 그래서 후배들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줘.

 

- 최고네. 회사 사람들하고 놀러도 많이 가고 그러던데?

응. 같이 여행도 다니고 글램핑도 갔었, 생일 파티도 매달하고 있어. (어떤 식으로?) 퇴근하고 밥 먹고 케이크 불고. 케이크의 초를 한 세 번 정도는 불어줘야 해. 그리고 소원 빌고 술 먹고 새벽에 들어가.


- 후배들도 원하는 거야?

하하하. 그럼! 다 행복해! 나만 행복한 거 아니야. 내가 회사를 21년 10월에 들어갔거든. 근데 나 들어오기 전에는 정말 삭막한 분위기였대. 근데 내가 부서를 완전히 뒤집어 놓은 거야. 맨날 "놀까요?" 하면서 회식도 자주 하고.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어. 
 

- 좋아한다니 다행이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돼?
6시 일어나서 씻어. 씻고 나오면 아빠가 사과를 깎아놨어. 사과 먹고 준비를 하고 한 7시 반쯤 나가. 출근해. 9시 50분 전에 가지. 왜냐하면 회사 근처에 사람이 너무 많아. 그래서 출근을 하면 이제 모두 안부 인사를 해야지. 잘 지내셨어요? 어제 재밌는 일은 없었나 하고 한 바퀴 돌아.


- 나처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 있지 않아?

없어. 왜냐면 내가 이러는 걸 2년 가까이 봤으니까. 이제 내가 가잖아? 그럼 "언니 어제~" 이러고 막 얘기를 해줘. 어제 뭘 먹었고 누굴 만났고. 그리고 자리에 앉아 일을 해. 11시 반에 밥 먹으러 가. 난 얘기하느라고 밥을 맨날 늦게 먹거든. 그럼 애들이 "언니 이제 먹어"라고 해. 그럼 먹고 1시에 들어와. 

  

- 보통 일주일에 몇 번 약속 있어?

7번. 월화수목금토일. (거짓말) 달력 한번 보여줄까? 쉬는 날이 없어. 너무 바빠서 요즘 너무 피곤한 거야. (너도 피곤하긴 하구나) 그래서 오늘 9시에 일어났어. 원래 주말에도 한 7시, 8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해. 주말이 가는 게 또 아깝잖아. 그래서 매일 맛있는 거 먹고 얘기하고 그래. 아빠가 "봄이 얼굴 언제 보나" 그래. 하하.


- 와. 너의 체력의 원천은 어디야?
잘 먹는 거? 잘 먹어야 돼. (얼마나 먹는다고~) 근데 원효대사 해골물 알아? 안 피곤하다 생각하면 안 피곤해. 지금 행복하다 하면 행복한 거야. 하하하

 

- 사람들 만나는 게 진짜 좋은가 보다.

그런 것 같아. 사람 만나면 재밌잖아. 나는 기 빨리거나 이런 적은 없어. 최근에 친구가 캠핑모임에 가면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다고 해서 캠핑 모임에 갔어. 거기서 다른 ENFP 언니를 만났는데 그 언니가 진짜 찐 ENFP 더라고. 모르는 사람 수십 명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을 잊지 못해. 난 그 정도는 아니야. (나라면 모르는 사람이 30명 있는 곳에 애초에 가지 않았을 거야. 하하하)

 

연애와 결혼 사이

- 너의 서른에는 어떤 고민이 있어?

나는 너무 아기가 낳고 싶어. (왜?) 지금이 너무 안정되니까 또 다른 안정을 찾아서 헤매고 싶은 거지. 그런 안정된 울타리 안에 있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싶고. 그리고 이제 다 해봤잖아. 취업도 했고 돈도 모았고 그런 모든 것에 고민은 다 해봤으니까 다른 고민들만 남은 거지.


- 근데 결혼을 해야 애를 낳는 거잖아. 근데 왜 결혼이 아니라 애를 낳는 게 고민인 거야?

왜냐하면 애기가 너무 귀여워. 사실 결혼을 하고 싶은 목적 중에 하나가 애기 때문인 것도 있어.
 

- 애를 낳음으로써 생활이 흔들리게 될 수도 있잖아. 

그렇지 않아. 사람은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바라봐야지.
 

- 하하하. 너 같은 사람만 우리나라에 있으면 출산율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
걱정을 미리 해서 뭐 해. 나의 로망은 남편과 아기와 주말에 셋이 산책하는 거야. 얼마나 행복해.

 
- 그럼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될 텐데 그게 고민인 이유는 뭐야?

남자가 없으니까. (남자친구는 있잖아?) 남자친구가 과연 남편감일까? 좋은 아빠일까? 이런 고민은 하게 되지. 아기한테 최선을 다 할 사람인지도 보고. 나도 약간 안정되어 있으니까 안정돼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내가 감정 기복이 심하잖아. 그래서 나무 같은 사람이 좋지 않을까? 싶어.


- 사실 네가 작년부터 결혼을 엄청 하고 싶어 하다가 지금은 그 마음이 많이 줄은 상태잖아. 이유를  얘기해 줄 수 있어?

너무 슬픈 사연이 있어. 내가 작년부터 소개팅을 엄청 많이 했어. 결혼을 하고 싶으니까 조건과 성격만 엄청 봤는데 내가 좋아하는 마음이 안 생기는 거야. 연애가 안 되더라고. 사람이 조건이 참 좋고 한데 마음이 안 생기니까 만나도 재미가 없고 시간도 안 가고 얘랑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싶고.


그러던 중에 원래 알고 지내던 사람이 한 명 있는데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대. 처음에는 부정을 했지. 나는 결혼하고 싶기 때문에 저분은 안 만날 거라고 했었거든. 그런데 이 사람이 계속 "가 날 너무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내가 어떻게 하면 되냐"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 그래서 고민 끝에 '그래 그럼 좋아하는 사람 만나보자' 해서 만나게 됐어. 그렇게 마음을 먹은 데는 '결혼 생각을 버리고 연애를 해야겠다. 뭔 결혼이냐?' 하는 게 있었지. 왜냐하그 사람은 내가 지금까지 찾던 그런 조건과는 완전 다른 사람이었어.
 

- 네가 찾는 조건은 어떤 거였는데?

내가 어느 정도 돈도 모았고 직장 내에서도 안정돼 있으니까 상대도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 어쨌든 그렇게 마음을 먹고 만나기 시작했고, 만난 지 얼마 안 됐어.


근데 최근 들어서 인스타에 애들이 프러포즈받고 결혼하고 이런 게 막 계속 올라오는 거야. 그런 거 보면 또 마음이 싱숭생숭한 거지. 나도 결혼하고 싶다. 근데 모르겠어. 과연 누구랑 결혼을 해야 내가 행복할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을 해야 행복할지 좋은 조건의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게 행복할지는 모르겠어.

 

밥 잘 사주는 예쁜 대표

- 중요한 문제네. 결혼 말고 일적으로도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어?

나는 대표가 되고 싶어. 우리 회사 대표님이 사원에서 대표가 된 케이스야. 가능성은 누구한테나 열려 있어. 나는 대표가 되는 게 꿈이야. 나는 실현 가능하다고 봐. 대표되잖아? 놀러 와. 한강뷰와 대표? 인생 성공한 거지. 우리 집에서 불꽃 축제 보자고.

 

- 너네 집 가면 온갖 사람 다 만나는 거 아니야?

집에 사람이 좀 많을 수는 있어. 나는 내가 돈 쓸 때 남이 행복해하는 걸 보면 행복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성공해서 친구들한테 쓰고 싶어. 다른 사람한테 얻어먹는 것도 당연히 좋은데 나는 "내가 살게" 이런 걸 좋아해. 내가 성공해서 사는 건 좀 다른 느낌이겠지?

 

- 이거 보고 친구들이 다 너한테 사달라고 하면 어떡해?
괜찮아. 아직 그 정도로 성공하지 않았어. 그렇게 성공했을 땐 찾아도 된다. 그리고 내가 잘 돼서 쓰면 좋은 거 아닌가? 몇 살에 가능할까? 한 쉰? 열심히 해야지.

청담동 며느리룩

내 꿈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 대단하네. 그런 꿈이 있는 줄은 몰랐다. 우리가 한창 같이 놀던 때가 고3 때인데, 그때 생각했던 서른하고 지금의 서른은 부합하는 것 같아?

아니. 난 내가 좀 더 성공해 있을 줄 알았어. 이런 애매한 서른일지 몰랐어. 오피스룩 입고 또각또각 구두에, 엄청 큰 건물에 막 이러고 다니는 예쁜 언니일 줄 알았는데 지금은 사실 20살의 나와 지금의 나와 비슷한 것 같아. 생활에서는 여유가 생겼지만 아직 마인드는 20살인 것 같아. (20살 마인드는 뭔데?) 노는 거 좋아하고, 아직도 혼자보단 친구가 좋고, 마냥 철없는 느낌?
 

- 하하하. 그게 봄이지 뭐. 그러면 마흔에 너는 좀 어떨 것 같아?

마흔에는 돈을 더 많이 모았겠지? 한 부장쯤 되어 있을까? 아기도 있어야겠지? 제발. 


그리고 내가 원래 너무 수지(용인시 수지구) 살고 싶었거든 수지가 좋아서. 난 수지 홍보대사거든. 모두 수지로 놀러 오세요. 애 키우기 좋고, 사람들 착하고 진짜 좋은 동네랍니다. 그렇지만 회사가 너무 멀어서 서울에 살고 있지 않을까? 그때도 관리를 열심히 해서 서른처럼 보일 수 있게 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술도 그만 적당히 먹어야겠네.
 

- 그땐 월화수목금토일 약속은 힘들 수도 있겠다.

남편이랑 놀 수 있는 거니까. 어쨌든 집에만 있는 생활은 할 수 없지 않을까?


- 그래. 마흔의 너한테 얘기를 해준다면?

마흔의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니? 행복하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거니까. 그리고 좀 더 성공할 수 있게 어서 노력하렴.

 

-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하하하.

인생은 행복하려고 사는 거 아니야? 하하하. 그리고 마흔 살 유나리야, 그때도 우리는 분기별로 만나고 있을까? 내가 맛있는 거 많이 사줄 테니 열심히 나오렴.


- 고맙다. 하하하.

 



봄이와 나는 정 반대다. 나는 완전한 내향형, 봄이는 대문자 E 외향형이다. 체력, 관심사, 친구들을 만나는 빈도 등등 뭐 하나 비슷한 게 없다.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됐을까?'라는 질문이 절로 떠오른다. 그럼에도, 주변에서 나와 봄이를 보면 둘이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웃음포인트나 리액션이 닮았다나 뭐라나. 참 신기한 일이다.

석사 공부를 할 때 봄이를 만나면 봄이는 항상 밥값을 내주며 나중에 취업하면 쏘라고 얘기하곤 했다. 돈도 자신감도 없던 시기에 봄이의 그 말이 참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겉으로 보는 봄이는 강해 보인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사람들을 잘 챙기고, 좀 덜 만나도 되지 않겠냐는 나의 말에 서운해하는 세심한 마음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봄이의 서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했다. 한 회사의 대표를 꿈꾸고,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기를 목표로 삼는다. 앞일을 걱정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봄이가 대표가 되어 한강뷰 아파트에 나를 초대할 그날을 기대한다. 그리고 그때의 우리도 고등학교 때 얘기에 실없이 웃고 있는 모습이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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