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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무단횡단

What is 'jaywalk'?

by 오드리

"사람들 왜 저래? 완전 무법천지네."

"응, 여긴 저래. 그냥 막 건너도 돼."


길은 녹색 신호에 건너야 한다고 철저하게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영국에 가면 저런 대화를 나눈다. 보행자 신호가 빨간불인데 사람들이 그냥 건너가 버린다. 건널목이 아닌 곳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건넌다. 바라보기에 심기가 불편하다. 끝까지 녹색불을 기다리며 '법'을 지키고 서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안타깝게도 영국에는 그런 '법'이 없다.


영국인들에 따르면 유치원부터 '좌우를 살피고 차가 없을 때 안전하게 건너라.'라고 배웠단다. 녹색불에 건너라고 배운 것이 아니라니, 설마 싶은데 당사자들이 그렇게 말하니 믿을 수밖에 없다. 영국인들은 왜 무단횡단을 하냐고 인터넷에 질문이 올라왔는데 자신을 영국인이라고 밝힌 사람들이 그렇게 답했다. 영국에는 '무단횡단'(jaywalk)이란 말이 없다고.


나도 첨에는 '법'을 준수하다가 나중에는 누구보다 무단횡단을 잘하게 되었다. 해보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특히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에 딱 맞았다. 한국에서 어떻게 참고 살았나 싶을 정도로 편했다. 뭐든지 '빨리빨리' 하는 근성에 딱 맞으니 누구보다 잘할 수 있었다.


런던에서는 어떻게 무단횡단이 가능할까? 가만히 살펴보았다. 일단 길이 좁다. 대부분 2차선이다. 몇 발자국이면 건널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마트에 갈 때 건너는 그 정도의 폭이다. 그곳에서 매번 무단횡단의 유혹을 얼마나 많이 느꼈었는지. 런던은 오래된 도시라 시내 중심도 도로가 좁다. 도로가 넓은 버킹검 궁전 앞에서는 아무도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도로의 폭이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보인다.


버킹검 궁전 (주변의 도로들이 넓어 아무도 무단횡단 하지 않았다)


런던은 인구밀도가 서울의 1/4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지하철역이 두더지 굴 같고, 지하철 차량이 좁고 낮아도 신도림역처럼 밀리는 현상 없이 잘 흘러간다. 인구밀도가 낮으니 보행자 수도 적고 도로 폭이 좁으니 과속 운행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모든 교통법규가 보행자 중심이다. 런던여행에서 직접 운전하고 벌금 폭탄을 맞았다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문제가 있다면 우리나라와 달리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보니 차가 오는 방향이 헷갈린다는 것이다. 바닥에 '왼쪽을 보세요(Look left)'라고 친절하게 적어 놓은 곳이 많았다. 램프 같은 곳은 '오른쪽을 보라'는 글자가 바닥에 적혀 있기도 했다. 차가 어느 쪽에서 오는지 고개의 방향을 정확하게 돌리는 것이 무단횡단을 마스터하는 마지막 단계였다. 나는 그 단계는 넘지 못하고 끝까지 이쪽저쪽을 두리번두리번거렸다.


여행을 하면서 다른 문화 속으로 들어가면 많은 것이 낯설다. 낯선 것은 불편하고, 불편하면 불평이 나온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다 이유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이유를 알아가는 것이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길이고 깊이 즐길 수 있는 비법이 아닐까. 이번 여행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이다.


무단횡단을 수없이 하고 벌금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었으니 이거야 말로 럭키비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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