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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서 선수교체

새로운 뮤즈의 발견

by 오드리

"엄마, 이쪽이야."

"엄마, 발 조심해."

"엄마, 어딜 봐?"


힝! 이게 무슨 상황일까요? 런던에 딸이 기거할 방을 구해주고, 이사도 해주겠다고 국제 운전 면허증까지 발급받아 갔건만, 직면한 현실은 그녀 뒤를 쫄쫄 따라다니며 잔소리 폭풍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이었네요. 첨엔 기분이 묘했습니다.


딸은 귀엽게 말하면 호기심이 왕성하고, 진지하게 말하면 주의가 산만한 아이였어요. 오죽하면 제 육아의 목표가 '잃어버리지만 말자.'였겠어요. 그러니 순간순간 잔소리를 했겠지요. 조심해라, 하지 마라,는 기본이었겠지요. 가까이 나들이를 가거나 멀리 여행을 가면 제 모습은 마치 이리저리 튀어 다니는 럭비공을 잡으러 다니는 것 같았지요. 제가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에휴, 이 글을 쓰면서 넋두리를 늘어놓을 줄은 몰랐네요.


내친김에, 스페인 여행을 갔을 때도 말해야겠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루트를 제가 다 계획하고, 비행기며, 기차며, 숙소 예약도 제가 다 했었지요. 호텔을 옮겨 다닐 때마다 흘리고 다니던 물건을 챙기고, 못 챙기는 날이면 잃어버리고. 한마디로 뒤치다꺼리를 다 하고 다니던 참이었지요. 20년째. 딸은 뭐 했냐고요. 예쁘게 차려입고, 예쁘게 화장하고, 사진 찍고, 저만 졸졸 따라다녔지요. 불과 5년 전입니다.


이번엔, 공항에 마중 나온 딸의 뒤를 자연스럽게 따라나갔습니다. 짐을 찾고 나오는데, "엄마, 지금 지하철로 가고 있으니 그 자리에 꼼짝하지 말고 있어."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성의 없이 꾸며서 세워 둔 크리스마스트리 옆 차가운 의자에 앉아 얌전히 기다렸지요. 첫 인상이 시골 간이역 같은 히드로 공항 4 터미널에서 이미 선수교체가 시작되었지요.


긴 목도리를 휘감고 나타난 딸은 5년 전의 그녀가 아니었어요. 이미 큰 캐리어를 끌며 앞서가고 있었고, 저는 작은 캐리어를 끌며 뒤따라 갔지요. 마중을 나오지 않았더라도 혼자 다 할 수 있었지만, 문제가 생겨도 지갑에는 든든한 비자카드도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갔지요. 그렇게 런던에서 선수가 교체되었습니다. 여행 내내 폭풍 잔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선수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잔소리는 다소 거슬렸고 보호를 받아야 되는 입장은 낯설었어요. 첨에는 반감도 생기고 나도 할 수 있다고 눈을 흘기기도 했지요. 그러다 딸의 뒷모습이 훅 다가온 순간이 있었어요. 걸음을 멈추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지요. 젊고 활기차고 때로는 개구쟁이 같이 천진한, 축축한 회색빛 도로에 빛이라도 몰고 온 듯 환한, 거리낌 없이 내닫는 걸음이 당당한. 그녀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바이브를 선물처럼 받으며 서 있었지요. 새삼 새로운 뮤즈를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


어린 그녀도 그랬을까. 내 뒤를 따라오면서 같은 생각을 했을까. 나의 뒷모습도 환했을까. 나도 그녀에게 뮤즈였을까. 궁금해서 다가가려는 순간, 뒤를 돌아보며 그녀가 소리칩니다.


"엄마, 거기서 뭐 해? 얼른 와. 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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