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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네바 Mar 10. 2024

20대 후반에 캐나다에서 1년을 지내면서




캐나다온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아직까지도 스스로가 온지 한 달도 안 된 워홀러처럼 느껴지는데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렀다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영주권에 도전하겠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고생을 한 간들이 벌써 작년 일이라는게 너무나도 낯설다.


캐나다에 온 초반에는 1년이라는 기간이 짧으면서도 굉장히 길게 느껴졌다. 해외생활을 하면 3개월, 6개월, 9개월 단위로 위기가 온다는데 실제로 이 기간에는 조기 귀국에 대한 갈망을 크게 느꼈다. 3개월과 6개월 때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너무 막막하고 불안정했고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가면 한국 생활을 다시 시작해야될텐데 여기서 이렇게 방황하며 억지로 1년을 채우는 것보다 일찍 돌아가는게 더 나을 수도 있을거라는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다. 대학생이나 사회 초년생이라면 주어진 기간을 모두 채우고 돌아가도 미래에 크게 지장을 줄 일이 낮지만 그러한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많은 갈등과 싸워야했다. 어느 정도 직장 생활을 했고 지금은 경력을 쌓아가야 될 시기에 해외살이에 대한 로망하나로 여기에 모든 시간을 투자한다는건 굉장한 도전정신과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고민을 했지만 결국에는 이곳에서 어떻게든 1년을 버텨보기로 결심했고 힘든 순간들마다 어떻게든 이 악물고 버텨냈다.


이곳에서 주어진 시간을 버티기로 다짐한 이유는 간단했다. 정말 운 좋게도 원하던 오피스잡을 시작하게 되었고 안정적인 수입을 얻게 되었고 좀 더 나은 집으로 이동을 하며 점차 이곳에 뿌리를 내리게 되며 좀 더 머물게 되었다. 마치 물 흐르듯이 모든 일이 하나 둘 씩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렇게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다가 어느새 365일을 캐나다에서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안정적인 일을 구하는데만 해도 거의 반년의 시간이 걸렸고, 괜찮은 월세 집을 구하는데도 8개월의 시간이 소모되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자신감과 희망이 가득해서 적당히 괜찮은 오피스잡을 구하는데 최대 1개월이면 충분할 것이고 한국의 원룸과 같은 집을 구하는데는 1주일이면 충분할거라 생각했는데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한국에서는 안해도 될 고생들을 여기서는 해야된다는게 지옥과 같았다. 나는 왜 여기서 나고 자라지 않았을까 내 자신을 부정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울면서 돌아다니는게 하루 일과였다. 가만히 방 한 구석에서 울면되지 왜 돌아다니면서 울었냐면 울고 싶은 와중에도 이력서를 써야됐고 면접을 보러가야 했고 집을 보러 가야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같은 워홀러였던 이민자에게 '캐나다에서 살고 싶으면 일단 버텨'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말을 주문 외우듯이 되새기며 살았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리를 잡기 전에 방황하던 시기에도 한국에 갈까 고민하던 시기에도 여기에 남기로 결심한 이유가 지금은 한국에 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기 귀국에 대한 갈망이 짙어질 때마다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 워홀을 오기로 결정한 이유를 곰곰히 생각했다. 왜 여기에 오기로 했는지. 무엇을 바라고 어떤 걸 목표로 하고 왔는지. 그러면 마음이 다잡히곤 했다. 한국을 사랑하지만 한국을 떠난 이유는 한국에서의 삶에 지쳐서였다. 모든게 편리하고 빠르지만 그만큼 개개인에게도 속도감을 요구하던 사회. 9시에 출근해서 6시까지 일하고 혹은 그 이상을 일하고 그러면서 남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해야하고 잠깐의 휴식도 인정되지 않는 사회에서 너무나도 지쳐있어 여기에 오기로 결심을 했다.


사실 캐나다에서의 삶이 한국보다 쉬운건 아니었다. 한국보다 더 경쟁적이고 더 대단한 사람들이 많으며 나에게 주어진 기회는 너무나도 적었다. 한국에서보다 더 적은 기회가 주어졌고 그 와중에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들까지 해결하는데 시간을 들여야 하는걸 보며 정신적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어디든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걸 깊게 깨달았다.


그럼에도 한국보다 어려운 생활을 해야했음에도 이곳에 남은 이유는 캐나다에서의 생활을 좀 더 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안정을 찾기 시작했는데 막 시작한 시기에 모든걸 멈추고 돌아가기엔 현재 주어진 기회가 아쉽게 느껴졌다. 미래가 더 나아질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여기서 얼마나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있을 수 있는만큼, 할 수 있는 만큼, 버틸 수 있는 만큼은 지내보고 싶었다. 최대한 모든걸 경험해보고 후회가 없을만큼의 노력을 해보고 싶다.


사실 1년이 넘어가니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엄마와 함께 걷던 밤거리, 친구들과 하던 쓸데없는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한 내 방 등 사소한 것들이 종종 조각 조각 떠오를 때가 있는데 그럴때면 미친듯이 한국에 가고 싶어진다. 당장 퇴근하고 회사를 나가면 우리 동네에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럴 수 없는걸 깨달을 때마다 그리움과 외로움에 잠식 당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렇지만 순간의 그리움으로 인해 돌아간다면 그 결정을 후회할 내 자신의 모습이 분명하게 떠올라서 어떻게든 버티기로 결심했고 그 결심으로 비자를 변경하여 2년을 더 살 수 있게 되었다.


원래 1년만 살 예정이었기 때문에 1년 이상의 캐나다에서의 삶을 살아갈 내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살다보면 어떻게든 살아가지겠지 하는 마음으로 좀 더 버텨볼 생각이다. 과연 얼마나 있을지 예측이 어렵지만 있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해 이곳에서의 삶을 그리고 내 인생을 즐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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