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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POST Mar 01. 2018

그릇된 욕망과 권위주의

한국 사회의 민낯 


욕망이 넘치는 세상 


최근 일어나는 뉴스들을 보면, 한국 사회의 욕망과 그 욕망에 대한 욕구불만이 아주 가득차 있음을 발견한다. 이 욕망들은 개인의 결핍과 결합되어 더 큰 파괴적인 행동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문제는 사회적 욕망이 채워졌을 경우, 그들이 타인을 너무 쉽게 업신 여기는데 있다. 권위주의다. 즉 욕망이 계급안에 존재하고 자신에게 복종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권위주의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추구한다.  



존재감 


사람들은 욕망 속에서 존재감을 잃어 간다. 욕망에 묻혀 자신의 존재감, 자존감마저 상실한다. 성취가 자신을 보여주는 기준이 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패배감에 싸여 절망한다. 반대로 성취감이 타인이 존재까지 무시할 수 있는 우월감으로 작용하는 세상이다. 자신의 우월 의식 속에 권위주의적 발상을 가지고 타인의 존재감을 무시한다. 


특히 그런 권위주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약자들이 자신에게 복종하기를 원한다. 이런 행태들이 이성에서는 성추행과 성폭력으로 나타난다.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성추행과 성폭력은 권위주의적 발상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즉 그릇된 욕망의 결과들이 자신의 존재감 인양 착각하며 권위적으로 타인을 무시하고 공격한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는, 그 권위 뒤에 숨어서 자신의 치부를 숨긴다. 그리고 피해자를 더욱 권위로 공격한다. 




미투 운동 


미투 운동은 어쩌면 약자의 존엄성을 세우는 운동이다. 또한 욕망의 권위주의에 인간의 존엄성을 알리는 운동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또 하나의 욕망이지 않았냐?'라는 형식으로 다시 피해자에게 귄의주의적 발상을 가지고 공격하기도 한다. 피해자를 마치 꽃뱀 인양 몰아가는 성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접근이다. 왜냐하면 만약 피해자가 그런 욕망이 있었다면, 이런 극심한 정신적 피해와 고통을 가지고 살아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이 피해를 입은 것은 단순히 몸의 화학 작용이 아니다. 이들의 피해는 정신적이고 영혼의 피해이다. 존엄성을 공격당한 인격 살인이다. 그래서 미투 운동은 피해자가 피해자 스스로 일어 서기 매우 힘든 운동이기도 하다. 만약 사회적 지지가 없다면 스스로의 존재감을 일으켜 세우기가 매우 힘이 든다. 사회가 권위적이기 때문이다. 


타인을 존중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미투 운동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을 내세울 수 있을까? 이 운동의 근원은 인간 권리의 근본적인 존엄성에 대한 운동이기에 충분히 의미가 있다. 


개인의 그릇된 욕망과 그 안에 견고하게 짜여진 권위주의가 개인의 존엄성마저 위협하고 있다. 이 위협은 매우 저질이다. 


문제는 이 저질인 악행을 사회적 이해로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 노력 뒤에 숨겨진 자신들의 더러운 욕망은 꺼내지도 않은 체, 그것을 이해해달라고 이야기한다. 그건 결국 욕망의 구렁텅이에서 스스로 못 나오는 더러운 사람이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꼴인데... 참 뻔뻔하다.  차라리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 철저히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고 이에 대한 처벌을 받는 것이 순서이다. 



당신을 응원합니다. 


존엄성을 무시하는 거짓된 귄위주의 속에서 잘못된 사회적 이해를 바라는 것은 더 나쁜 권위주의적인 발상이다. 이건 사회 통념 자체가 권위주의적임을 스스로 표현하는 것이다. 사회는 오히려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그들을 위로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가 할 일이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존엄성 자체에 있다. 그래서 그들의 미투 운동은 지지 받아야 한다. 당신들을 위한 사회적 지지가 많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당신은 충분히 존엄하다. 그것이 당신과 나의 Me too 운동이다. 



H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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