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밤나무와의 추억 저장소
이른 아침, 동네 아이들의 등굣길 풍경을 바라보며 제가 어릴 때 살던 동네를 떠올려 봅니다.
그곳은 경운기가 양쪽으로 오가며 손 인사를 할 수 있을 만한 크기의 길을 가운데에 두고 한쪽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논이 펼쳐져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가정집이 열다섯 채 정도가 군데군데 모여있는 작은 동네가 있습니다. 그 뒤로 동네를 가로지르는 모양의 낮은 산이 보이는데, 그 산에는 동네 아이들의 비밀 아지트가 숨어있는 곳입니다. 여기는 제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경기도의 어느 마을입니다. 그 작은 동네 속, 우리 집은 동네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집으로,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마당 입구가 작게 보입니다. 집 안팎의 담벼락 아래로 봄이면 짙은 분홍색으로 계절을 알려 주는 철쭉 몇 그루가 피어나고, 여름이면 우리 집 마루에 모여 동네 언니, 동생들과 모여앉아 손톱 끝을 주황색으로 물들일 수 있는 봉숭아꽃이 풍성하게 피었습니다. 또한, 계절마다 액자를 바꿔 끼우듯이 피어나는 무궁화, 나팔꽃, 장미 같은 꽃들도 있었는데, 피어야 할 때 피고, 지어야 할 때 조용히 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동네 가장자리에 고여있는 작은 물길은 빗물로 물이 가득 차는 날이면 비를 맞으며 친구들과 장난치며 노는 곳이었고, 마을과 논 사이의 길에서는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이 경운기가 달릴 때마다 솟아오르는 흙 연기를 마시면서 그 뒤를 쫓아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을 떠올리면, 동네 전체가 놀이터인 웃음소리 가득한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 시절의 저도 한쪽 구석에서 친구들과 큰 잎사귀들을 따와선 흙으로 밥을 짓고 꽃잎으로 반찬을 지어내던 추억이 숨어있지요.
동네 한가운데는 우물이 있고 –각 가정에 지하수를 이용하게 되어 덮이던 날엔 얼마나 아쉬웠던지요.- 우물 뒤로 돌아가면 우리가 부르던 작은 '가게방'이, 들어서는 길부터 중반까지는 마을 입구 양쪽으로 참깨, 고추 등 채소들이 잔뜩 자라고 있는 밭이 보입니다. 자연스레 동네로 들어서는 길이 만들어진 이 길은 폭신한 고운 흙으로 만들어진 ‘골드카펫’입니다. 그 길을 지나, 양쪽으로 밭을 거느리고 동네로 들어서면 그 한가운데에 강아지 가족이 보입니다. 우리 집으로 스스로 찾아와 키우게 된 덩치 큰 어미 개와 지난 계절에 어미 개가 낳은 일곱 마리의 강아지들입니다. 그 아이들은 산책을 즐기며 집으로 향하는 나를 반겨줍니다. 그 아이들을 뒤로하고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대문도 없는 우리 집의 짧은 오르막 앞에 다다릅니다.
우리 집은 겨울에 눈 덮인 마당이 제일 예뻤습니다. 첫눈이 오는 날이면, 엄마와 첫 발자국을 남기고, 아빠가 퇴근하면 손이 꽁꽁 얼도록 눈을 만지며 놀았습니다. 다음 날이면 처마에 만들어질, 강아지 이빨처럼 뾰족한 고드름을 기다리며 잠을 청하곤 했지요. 밤이 되면 푸른 형광등 빛을 받아 파란 솜이불처럼 보이는 마당에 소복이 쌓인 눈밭의 풍경. 그 겨울밤은 그 어떤 봄보다 더 따뜻하고 환한 밤이었습니다.
우리 집 마당을 지나면 집 바로 뒤로 약간 올라앉은 밭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그 밭도 제겐 놀이터였지요. 그 밭으로 올라가려면 오래되고 커다란 밤나무를 지나야 합니다. 밤나무가 서 있는, 작지만 가파른 오르막은 저와 동네 꼬마들이 옷이 시커멓게 흙 범벅이 되도록 오르락내리락 미끄럼틀 타듯 줄지어 놀던 곳입니다. 그렇게 낮 동안 놀이터가 되어주는 언덕을 지키는 밤나무는 캄캄한 밤이 되면 저에게 특별한 나무가 되어주곤 했습니다. 언젠가 삼촌 방에서 자다가 본 나무의 모습이 귀신인 줄 알고 놀란 마음에 뜬눈으로 밤을 보낸 날도 있었지만, 평소에는 잠들기 전 창문을 통해 삐에로 모양이나, 눈이 별 모양으로 빛나는 곰돌이 얼굴을 자신의 나뭇가지로 만들어 보여주며 잠들 때까지 놀아주는 저의 애착 나무였달까요.습니다. 중학생 때쯤이었을까요, 다시 그 집에 갔을 땐 나무 밑동만 덩그러니 남아있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마지막 모습이 이랬을까 싶어, 속상한 마음에 동네 어른들에게 나무를 왜 잘랐느냐고 투덜거린 일이 생각납니다. 나이가 들어 한참을 아팠다가 죽었다더라구요. 죽은 나무는 집에 두는 게 아니라 베었다는 어른들의 말씀에도 속상함은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얼마 후 밑동마저 뽑히며 밤나무는 제 마음에서만 살게 되었습니다. 작은 언덕을 오르내리며 꼭 끌어안으면 느껴지던 나무 허리의 까슬한 촉감, 그 온기. 그 온기가 그리워 잊지 않으려 나도 모르게 노력하는 건지, 가끔 꿈에서 곰돌이 얼굴을 만들어 보여주던 밤나무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그날은 작더라도 좋은 일이 생길 때가 많은데 아마 기분 좋은 아침이 만들어 준 우연이 아닐까요?
이렇게 밤나무 덕에 제 어린 날 기억 속의 집은 따뜻하고 나를 감싸주는 공간으로 기억합니다. 개인 방이 없이 네 식구가 나란히 이불을 펴고 한방에서 자던 그때가, 오히려 지금의 우리 아이들보다 훨씬 많은 나만의 쉴 곳이 동네 곳곳에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네요. 밤나무가 달빛 아래서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다 멈추는 모습까지 예쁜 그림으로 남아서 지금쯤은 식어가는지도 모르는 동심을 찾아주는 마음의 쉴 곳이 되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저에게 있어 집은 그런 곳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썽을 부리고, 동네 친구들과 싸우고 들어와서 엄마한테 혼나는 날도 많던 집이었지만 나를 감싸주던 할머니가 있었고, 아빠가 일찍 퇴근하는 날은 최선을 다해 놀아주었던 곳. 그 기억이 저에게 집의 정의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빨간 머리 앤’이라는 만화영화가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앤이 언덕 위의 나무 위에서 단짝 친구와 이야기도 나누고 책도 읽고, 시원한 바람도 맞으며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낸 소녀였듯, 저 역시 밤나무의 보드라운 애정을 듬뿍 먹고 자랐기에 힘든 시기를 이겨내며 나를 중심으로 주변과 함께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데 의미를 두고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밤나무와 지낸 시간은 짧았지만 그랬기에 더욱 소중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집을 그려보라고 한다면 봄빛으로 가득한 연분홍으로 바탕색을 칠한 뒤 초록과 연두색, 하늘색과 갈색이 몽실몽실 내려앉은 모습으로 완성될 것 같습니다. 가능하다면 그림 위에는 설탕을 좀 뿌려도 좋을까요?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우리 아이들은 십 년이 지난 후에 우리 집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상상하게 됩니다. 혹시라도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몇 년 전까지 생각하던 것처럼, 들어가고 싶지 않고 불편한, 그런 집은 아닐런지 잠시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둘째가 여섯 살 무렵부터 부쩍 일이 힘들어져 일과 집안일까지 혼자 병행하느라 아이들에게 짜증도 많이 내고, 그때부터 현재까지 부부싸움이 잦아진 점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런 일들 때문에 혹시라도 아이들이 집을 불편하게 여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들은 내가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우리 집이 좀 더 편하고 아늑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지게 했습니다. 아이들의 열 살 무렵까지 엄마라는 자리에서 성실하게 모든 시간을 보낸 것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들어, 아이들에게 엄마 대접을 강요한 것은 아닌지, 반대로 따뜻한 말과 칭찬에 인색해진 것은 아닌지, 반성하며 이제는 제가 우리 아들들에게 밤나무 같은 존재가 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밤나무처럼 안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그 따스한 기운을 피부에서 전해지는 온도뿐만 아니라 마음의 따뜻함까지 전해줄 수 있는 그런 엄마 나무가 되어, 아이들이 집을 더욱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으로 기억되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