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의 상상으로 만드는 길
얼마 전 아이들의 심리상담을 해주는 프로그램 영상을 보던 중, 나의 어린 시절과 비슷한 아이의 모습을 보았어요. 그 아이가 혼자 집에 있을 때 책 속의 주인공들과 이야기하며 상상 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문가는 그 모습에 대해 외로움과 심심함을 달래는, 일종의 그 아이만의 놀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도 열 살 전후로 상상 놀이에 푹 빠져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아, 그 무렵 책을 굉장히 많이 읽기 시작하면서 혼자인 시간에는 나만의 상상에 빠지는 시간이 많아졌던 때였지요. 그때의 저처럼 영상 속의 아이도 책 읽는 것과 상상하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이 친구가 좋아하는 상상놀이는 ‘메리포핀스’ 작품의 등장인물들과의 놀이였습니다. 제가 상상놀이를 즐겨 하던 작품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처음으로 읽었던 두꺼운 책인 “걸리버 여행기”였습니다. 다른 버전의 책으로 네 권까지 읽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특히 걸리버가 소인국에서 소인들의 생활을 엿보던 흑백 삽화가 그려져 있던 책이 가장 많이 기억납니다.
그 책을 읽은 후부터 많은 상상 놀이를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상상 속의 나는 인형의 집에 사는 예쁜 마론인형이 되어서 천장 위에서 누군가가 –걸리버와 같은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는 상상을 자주 했습니다. 나를 지켜보는 사람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대로 내가 움직이게 된다거나, 가끔은 내가 장난을 치거나 동생을 괴롭히면 무서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내가 공부하거나 엄마 심부름을 할 때는 머리 위에 금빛 꽃가루를 뿌려준다는 상상을 하며 일상생활을 하곤 했습니다. (물론 상상입니다) 심지어 어떤 행동을 하다가도 이건 내가 하는 게 아니라 누가 나를 인형처럼 움직이는 건 아닐까, 하며 흠칫 놀라는 적도 있었는데 그건 ‘맞다. 상상이었지.’라고 다시 현실로 오는 과정일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저는 상상 속의 제가 아주 작은 존재이고, 누군가의 의도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며, 모든 일의 결과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이미 정해진 건 아닌지 귀여운 고민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저의 상상 속 세계는 영화 ‘트루먼 쇼’ 아니면 ‘브루스 올마이티’와 비슷하기도 하네요. 나를 보는 누군가, 지켜주는 누군가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상상이.
어느 날은 하교 후, 집에 도착하자마자 배가 고파서 간식으로 달걀을 삶다가 내팽개친 적이 있었어요. 왜 내팽개쳤을까요. 그렇게 배가 고픈 와중에도, 정수리 뒤쪽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열 살을 조금 넘겼던 저는 어떻게 했을까요?
“삶은 달걀 안 먹고 프라이를 해 먹을 거야, 그리고 두 개 아니고 세 개 먹을 거라구~”
혼자 있는 것이 무서운 마음에 뭐가 있을 리 없는 벽이었기에 엉뚱한 상상을 떠올리며, 듣는 사람도 없는 걸 알면서도 혼잣말했지요. 당시에는 용감하다는 생각도 들고 나조차도 우스웠지만 나름대로 ‘역시, 나는 내 맘대로 해,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야.’라고 뿌듯해했답니다. 지금 떠올리니 새삼 손발이 오그라드네요. 대화체의 혼잣말이라니. 그땐 아마 무서움보다 심심한 마음이 더 컸던 게 아닐까요? 엄마가 늦게까지 일을 했기 때문에, 저는 하교 후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서 혼자 있는 걸 너무 싫어했거든요. 엄마가 퇴근하고 돌아오는 저녁이면, 혼자서 열쇠로 문 따고 들어오기 싫다고 몇 번을 말했었는지 아직도 기억나요. 물론 엄마는 매번 같은 대답이었어요. “그건 안돼.” 거절의 말일수록 길게 하지 않는 엄마이기에 더 길게 떼를 쓸 수도 없었습니다. 엄마가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하교 후 나를 반겨주며 학교에서 있던 일을 물어 봐주는 엄마와의 수다가 시작되던 힐링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보내는 그 시간이 더 공허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외로움을 지워 버릴 상상 세계를 만들게 되고, 그 안에서 나만의 의미를 만드는 계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어린 나의 상상들을 되새겨보며 오랜만에 웃어봅니다. 어린 시절의 상상하는 습관은 어쩌면 지금의 저에게는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도 더 나은 때를 상상하며 버틸 수 있는,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되어주었습니다. 글을 쓰다가 잠시 멈추고, 무엇이든 상상해 봅니다. 하지만 그 어린 시절만큼의 창의적인 상상은 불가능한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노력으로 되지 않는 게 있다는 것이라는 걸 한 번 더 실감하는 순간입니다.
상상과 현실 사이의 작은 틈 사이에서 어린 시절 상상 속 세계에서 나를 바라보던 걸리버는 바로 나 자신이 아니었을지요. 달래주는 사람 없이, 쉬지 않은 관계들 속에서 일찍 찾아온 사춘기로 힘들던 그때의 나를 달래주던 상상 속 또 다른 나. 그래서 어린 날 상상으로 많은 치유를 받은 것처럼 혼자만의 시간이 외로움을 감당하는 시간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 정말 내가 원하는 나를 찾기도 하는 의미 있게 보냅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은 숨어있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시간으로서 의미가 있고, 혼자만의 시간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 되어 줍니다. 저는, 제가 가는 길이 맞든 틀리든 일단 앞으로 나아가는 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어느 길에 진짜 제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죠. 바로 그 생각들이 지금 저의 강점이 되어준 여러 직종과 업무에서 도전과 실패를 경험할 수 있는 계기였습니다. 그 힘의 원천은 어쩌면,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혼자만의 시간’이 아닐까요.
세상에는 완벽히 좋은 길도, 완전히 잘못된 길도 없습니다. 어렵겠지만 외롭다 느껴지는 오늘이라면, 지금만큼은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미래의 나에게 이 시간이 훨씬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어보세요. 그렇기에 오늘도 저와 함께 천천히 걸어볼까요.
먼 훗날, 만족스럽게 삶을 즐기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