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새의 노래 06화

뿌리에 고인 사랑

chater 5. 그 새는 누구인가

by 유니제이


놓지 않은 감정은 뿌리에 스며들어, 나를 더 깊은 심연으로 끌어내렸다. 그곳에서, 나의 존재는 느리게 썩어가고 있었다. 나는 나무가 되었고, 너는 오지 않았다. 하늘은 여전히 나를 향해 열려 있었지만, 나의 존재는 더 이상 그 드넓은 창공을 향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감각의 신이던 나는, 처음으로 무릎을 꿇는 방식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뿌리를 땅에 박고, 가지를 움츠린 채, 나의 모든 의식은 너의 부재가 드리운 심연으로 가라앉았다. 나의 존재는 땅에 속박되었고, 그 속박은 너의 침묵으로 인해 마치 쇠사슬처럼 견고해졌다.


놓지 않은 그 감정은 나의 뿌리에 고여, 나의 모든 것을 끈끈하게 묶어갔다. 시간은 내게서 다른 감각들을 잔혹하게 앗아갔다. 한때 세상 모든 소리와 빛, 존재의 파동을 흡수하던 나의 오감은 너의 부재 앞에서 무력하게 메말랐다. 햇살은 더 이상 생기를 불어넣는 온기가 아니라 무의미하게 피부를 스치는 건조한 자극이 되었고, 바람은 허공을 가르는 공허한 울림일 뿐이었다. 남은 것은 오직, 너의 희미한 흔적이라도 감지하려는 나의 뒤틀린 촉각과, 맹목적으로 네 노래를 기다리는 메마른 청각뿐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시체처럼, 나의 감각은 오직 한 방향으로만 집요하게 곤두서 있었다.


나는 매일 땅속으로 더 깊이, 끝없이 가라앉았다. 나의 뿌리는 의지처럼 아래로, 어둠 속으로 뻗어나갔다. 기다림은, 아래로만 자라는 감정이다. 그것은 희망의 싹을 틔우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심연을 파고드는 고통스러운 삽질과 같았다. 너의 침묵은 단순한 소리의 부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가느다란 비늘처럼 나의 모든 뿌리에 겹겹이 덮여 들었고, 나의 숨통을 막고, 생명의 물기를 막아 나를 점점 더 끈끈하게 묶어갔다. 그 침묵은 마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축축하고, 무겁고, 무엇보다 너의 부재를 닮은 차갑고 눅눅한 온도를 가졌다.


그 눅진한 온도는 나의 내부를 서서히 썩게했다. 줄기 안에서는 알 수 없는 부패의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올랐고, 껍질 아래에서는 미세한 균열들이 거미줄처럼 번져갔다. 때로는 축축한 이끼 같은 것이 스며들어 나의 갈라진 틈을 메웠고, 알 수 없는 벌레들이 그 안을 파고들어 나의 조직을 갉아 먹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역겨운 냄새가 나의 후각을 잠식했지만, 나는 그 모든 고통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 썩음조차 나는 내 감각의 일부처럼, 너의 부재가 남긴 흔적처럼 받아들였다. 썩어 들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나는 너를 향한 집착을 단 한 순간도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고통이 나의 집착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나는 매일 밤낮없이 너의 잊힌 목소리를 뿌리 끝에서 상상했다. 너무나 간절하게, 너무나 집요하게 상상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 소리가 진짜였는지, 내가 만들어 낸 환청이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새의 노랫소리는 때때로 맑고 선명하게 들리다가도, 이내 찢어지는 듯한 비명으로 변하고, 다시 희미한 속삭임으로 스러졌다. 현실과 망상의 경계는 흐려졌고, 나는 그 혼돈 속에서 너의 그림자를 좇았다. 나의 모든 감각은 그 헛된 환청을 쫓아 미쳐가고 있었다.


너의 이름이 나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질수록, 내 안에서는 새로운 가지들이 솟아났다. 그것들은 이전에 돋아난 기형적인 가지들보다 더욱 앙상하고, 핏줄이 비치듯 붉은빛을 띠었으며, 마치 고통으로 비틀린 손가락처럼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그 가지들은 너를 모르고 자랐다. 오히려 나의 본질을 비웃듯, 끊임없이 나에게 물었다.


“그 새는 누구인가?”

“왜 그 이름은 이토록 아프게 들리는가?”

“왜 우리는 이토록 썩어가면서도, 피지 않는가?”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나의 대답은 항상 너무 늦었고, 너의 부재가 만들어 낸 공허함보다 더 공허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의 존재는 너의 부재에 의해 정의되었고, 나의 정체성은 너의 침묵 속에서 서서히 소멸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내가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너를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나의 진정한 모습이 그림자처럼 사라졌다는 것을 섬뜩하게 깨달았다.


어느 날이었다. 적막을 깨고 낯선 날갯짓 하나가 나의 잎사귀 위를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너의 날갯짓보다 훨씬 무거웠고, 거칠었다. 내 가지는 마치 전기에 감전된 듯 움찔했고, 잎은 비명을 참는 듯 파르르 떨렸다. 나의 모든 감각은 그 낯선 존재를 향해 일제히 곤두섰다. 나는 그 새가 너일까 봐, 아니기를 간절히 바랐고, 동시에 너였기를 필사적으로 바랐다. 그 미세한 희망과 공포의 줄다리기 속에서, 그 새는 머물지 않았다.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나는 미련 없이 잎을 닫았다. 그리고 그 닫힌 촉감은, 아주 오래전, 나의 무지 속에서 너를 밀어냈던 내 손의 감각과 뼈저리게 닮아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일부러 울었다. 나의 존재를 뒤흔드는 고통과 절망 속에서, 나는 울음을 터뜨리려 했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신의 울음은 이제 외부로 퍼지지 못하고, 나의 뿌리 안에서만 고통스러운 진동으로 울려 퍼졌다. 그 진동은 마치 수억 마리의 벌레처럼 나의 조직을 집요하게 갉아먹었다.


나는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너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너를 기다리는 감정을 그저 반복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습관처럼, 아무 감각도 남지 않은 껍질처럼. 그러니 이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사후였다. 죽은 사랑의, 차갑고 끈질긴 잔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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