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니 yuni Apr 24. 2020

그리움을 담아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소중한 무언가를 담는다는 것-

  

 동그란 얼굴형과 하얀 피부, 웃는 얼굴과 상냥한 말씨가 귀여운 미술 선생님과 그림을 작업하는 시간은 내 하루에 또 다른 기쁨을 주었다. 한 가지 한 가지 기억의 조각들을 더듬어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선생님과 추억을 나누는 시간이기도 했다. 완전한 기억의 형태는 아니더라도 내가 기억하는 특별한 추억을 그림이라는 도구로 꺼낼 수 있다는 건, 특별했다. 지나칠 수 있는 사랑의 조각들도 담아놓을 수 있었고, 잊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작년 9월에 아롱이와 다롱이는 특별한 인연이 되어 우리 가족에게로 왔다. 서울에 사시던 작은할아버지께서 괴산으로 귀농을 하시고 몇 년이 지난 어느 가을에, 작은할아버지 댁 장독대 위에 어미 다람쥐가 새끼 다람쥐 다섯 마리를 낳았다. 어미가 돌볼 거라 생각하고 다람쥐를 장독대 위에 그대로 두었는데 지나가던 길고양이가 아기 다람쥐들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바람에 아기 다람쥐들을 방 안으로 옮겨와 키우기 시작하셨다.

작은 아기 다람쥐들은 작은할아버지와 작은할머니의 보살핌으로 하루가 다르게 자라났고, 괴산에 벌초를 하러 간 우리 엄마가 다람쥐들을 발견하시고는 그 중 두 마리만 달라고 부탁하셨다. 작은할아버지는 흔쾌히 허락하셨고, 그 중 두 마리가 청주 우리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복실이라는 작은 강아지를 키운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반려 동물을 맞이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도 다른 동물도 아닌 다람쥐를 키우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일반 가정에서 잘 키우지 않는 다람쥐를 잘 키우기 위해서 엄마와 나는 인터넷을 뒤적이며 다람쥐 공부를 했다. 다람쥐는 사람을 잘 따르지 않고, 독립심이 강하기 때문에 아무리 작은 아기 다람쥐라도 한 장소에 함께 두면 한 마리가 죽을 때까지 싸운다는 것과, 재빠르게 숨기를 잘해 풀어두면 다른 곳에 숨어서 절대 사람의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와 나는 반려 견 센터에 들러서 아기 다람쥐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케이지 두 개를 사고, 높은 나무 기둥에 들어가 잠을 잔다는 특성을 고려해 작은 새 집도 샀다. 좁은 공간이 답답할 수 있으니 뛰면서 놀 수 있는 바퀴 두 개까지 샀다.

 집으로 돌아 온 후, 다람쥐가 생활할 공간을, 잘 쓰지 않는 수건으로 조각조각 오려서 곳곳에 놓아 보금자리를 만들고, 파란 케이지에는 성격이 활발하고 털털한 다롱이를, 분홍 케이지에는 작고 예쁜 얼굴에 새침 떼기 같은 아롱이를 넣었다.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도 다람쥐들은 자기 머리보다 큰 알밤을 두 손으로 번쩍 들고 맛나게 먹었다. 음식을 먹고 남으면 양 볼에 저장해 두었다가 배고플 때마다 꺼내 먹었다. 다람쥐들은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잠자리에 들었는데, 작은 천을 이불 삼아 돌돌 말고 자기도 하고, 천들을 자기 몸에 맞게 더 잘게 잘라서 잠자리로 가져가기도 했다. 작은 천 조각 속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먹이들을 저장하면서 겨울을 대비했다.

다람쥐들은 작고 연약해 경계심이 심했다. 사람을 잘 따르지 않아 친해지기가 힘들었지만 작고 귀여운 얼굴로 귀엽게 행동하는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워서 지켜보기만 해도 좋았다.  

 자연을 무척 좋아하는 다람쥐들은 화단 창가를 자주 바라보곤 했다. 가을에는 가을 낙엽이 지는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연 속에 낙엽을 밟으며 풀내음을 맡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져 그 모습이 무척 쓸쓸해 보였다. 봄날 벚꽃이 하늘하늘 날릴 때는 케이지 맨 꼭대기에 앉아 벚꽃이 날리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도 했다. 부지런한 다람쥐들은 우리 가족들 중에서 가장 먼저 아침 해를 맞았고, 부지런하게 먹이를 모으고 달렸다. 다롱이, 아롱이는 먹이를 물고 바퀴를 달리다가 창 쪽에 가장 가까운 곳에 앉기를 반복했는데, 좁은 케이지를 벗어나 자연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 행동들로 보였다. 하지만 아무리 달려도 다람쥐들은 좁은 케이지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그 때 주말도 없이 바쁘게 학습지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다람쥐들의 모습이 내 모습과 같게 느껴졌다. 현실이라는 넘을 수 없는 벽에 갇혀 매일을 똑같이 살고 있는 모습이 마치 내 삶처럼 보였다.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다람쥐들은 성년이 되었다. 둘 다 암컷인 다람이들의 생식기가 빨갛게 부어올랐고, 짝짓기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렸다. 다롱이와 아롱이는 화단 밖 풍경을 바라보며 새처럼 짹짹거리는 소리를 냈다. 다람쥐들은 짝짓기 할 때가 되면 암컷 다람쥐가 새소리를 내며 수컷 다람쥐들을 부른다. 다람이들 중 다롱이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잠이 들기 직전까지 소리를 냈다. 목이 터져라 불러도 수컷 다람쥐는 올 수 없었다. 아무리 우리 가족이 예뻐하고 따뜻한 보금자리를 제공한다고 해도 다람쥐들은 불행했다. 우리의 욕심 때문에 다람쥐들이 더 이상 답답한 하루하루를 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람쥐들이 많이 살고 있는 근처 작은 산에 다람쥐들을 놓아주었다.

 텅 빈 화단이 다람쥐들을 그립게 만들었다. 작고 귀여운 요정 같은 외모가, 바퀴 굴리는 소리가 그리웠다. 걱정되는 마음에 다음 날 다람쥐들이 가장 좋아했던 옥수수를 들고, 다람쥐들을 놓아 준 장소로 가 보았다.

 “우리가 여기에 다람쥐들을 놓아두었나? 여기 맞지?”

엄마는 다람쥐들을 놓아 둔 장소를 찾으며 얘기했고, 나와 아빠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빠가 차에 물건을 두고 온 것이 있다며 자리를 비우셨고 그 사이 녹색 철조망이 둘러쳐져있는 곳에 다람쥐 한 마리가 온 몸을 쫙 편 채 매달려 있었다. 마치 나 여기 있다고 알리는 듯이.

 “어머, 저거 우리 다람쥐인가?”

엄마와 나는 조심스레 그 철조망이 있는 곳으로 갔고, 다람쥐와 눈이 마주쳤다. 한 눈에 보아도 다롱이었다.  

 “어머, 다롱아, 다롱이 맞니? 어떻게? 다롱아...”

엄마는 다롱이를 손으로 잡으려 하셨고 그 때까지 잠자코 우리와 눈을 맞추며 가만히 있던 다롱이는 그 자리를 재빠르게 빠져 나갔다. 그리고 풀숲에 몸을 숨긴 채 ‘짹짹짹’ 소리를 냈다. 마치 나 여기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다. 마음 한 번 열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다롱이가 우리를 기억하고 찾아왔지만 이제는 영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나도 마음이 아팠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아롱이, 다롱이 모두 그 곳에서 행복하게 오래 살게 해 달라고... 우리 가족은 아롱이, 다롱이를 그렇게 오랫동안 기억하며 그리워했다.      

                                               

                                        *

 끝까지 함께할 수는 없었지만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다람쥐들은 우리 가족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었고, 많은 것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작고 연약했지만 씩씩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진정으로 행복한 삶에 대해서도 깨우쳐주었다.

 나는 마음으로나마 아롱이, 다롱이와 함께 하고 싶었다. 그림을 그려서 가족들 모두 함께하는 공간인 거실에 걸어두면 가족 모두 아롱이, 다롱이와 함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다람쥐들의 모습을 그렸다. 아롱이, 다롱이는 생각보다 그리기가 어려웠다. 햇빛에 반사된 털은 갈색과 검은색, 흰색만 있는 게 아니었다. 노란빛, 초록빛도 함께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꼬리 빛깔도 다양한 색이 존재했다. 부드러운 털을 잘 표현하기 위해 색연필로 하나하나 칠해나갔다. 그리고 아롱이, 다롱이가 가을의 모습을 배경으로 넣었다. 우리에게 처음 왔던 그 때 그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그려 넣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단순히 아롱이, 다롱이의 모습만 담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가족과 함께했던 특별했던 순간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겼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잊지 않았던 그 모습 그대로... 같은 공간에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아롱이, 다롱이는 기억이라는 특별한 형태로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될 추억을 선물해주었다.

 그리고 그토록 그리워했던 자연으로 돌아갔다. 다람쥐의 똥은 땅을 비옥하게 해준다고 한다. 아롱이, 다롱이는 마땅히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리고 나도 내가 있어야 할 이 자리에 머물러 있다.         

이전 01화 이야기는 흐르는 물과 같다. 수채화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