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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 yuni Apr 28. 2020

하나의 외로움이 또 다른 외로움을 만나

  

 “선생님, 저 요즘 우울증 약 먹고 있어요.”

 수업 시간이 마칠 즈음에 친구가 말했다. 평상시에도 자신의 이야기를 곧잘 꺼내놓곤 하는 친구는 얼마 전 병원에 갔던 이야기를 했다. 병원에서는 우울지수가 높은 편이라고 진단을 내렸고, 꾸준히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제가 우울 지수가 높아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만 있으려고 한다고 했어요. 사실... 저 약 중독될까 봐 약을 먹고 싶지 않은데,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계속 먹으라고 권유하셔서 먹게 되었어요.”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 전, 학생의 아버지와 함께 아동복지 센터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자식에 대한 걱정으로 조금은 초췌한 모습이셨다. 바쁘신 중에 선생님께 어려운 부탁을 드려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하시며 센터에서 우리 아이에 대해 물어보면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부탁하셨다. 아이는 늘 친구관계가 어렵다고 말했다. 내가 본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터놓을 사람이 없어 외로워 보였다. 친구도 없었고, 바쁜 부모님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어 보였다. 쉽고 재밌는 걸 좋아하는 친구들 사이에서 진지하고 내성적인 성격을 지닌 아이는 늘 주변인 같았다. 툭툭 치듯이 농담을 건네는 친구들의 말에 자주 상처를 받아 스스로 자신의 세계 속에 갇혀 지냈다. 하지만 간절히 친구를 원했다. 마음 맞는 친구가 곁에 다가와주기를. 아이는 늘 또래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친구를 원하지만 이루어질 수 없는 현실에서 마음 아파하고 힘겨워했다. 센터장님의 물음에 나는 내가 봐 온 학생의 모습에 대해 하나하나 답을 해주었다.

 “선생님이 아무리 학생에 대해 안다고 해도 아버님, 가정에서는 어머님이 가장 중요해요. 어머님이 더 신경을 써 주셔야 해요.”

 어머님이 바빠서 아이를 신경 쓸 새가 많이 없다고 말씀하시던 아버님은 내게 고개를 돌려 잠시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했다. 센터장님과 한참을 대화를 나눈 후 아버님은 마지막으로 수업 진도는 안 나가도 되니, 아이 하나 살린다고 생각하시고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달라고 거듭 부탁하셨다.

 “선생님, 저 있잖아요. 약에 중독될까 봐 많이 걱정돼요. 약을 먹긴 할 건데 스스로 게을러지지 않고 변하려고 노력하려고요. 약 기운에 변하는 게 가장 무서워요.”

 나는 마음이 무거워지며 갖가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내색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서현아, 너무 걱정하지 마. 우울한 마음은 감기와 같은 거야. 감기약 먹으면 감기가 낫듯이, 마음의 감기를 낫게 하는 약을 먹는 거야. 게다가 네가 약의 힘이 아니라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가 있어서 앞으로는 많이 좋아질 거고, 좋은 일만 생길 거야.”

 수업을 마치고 길을 걷는데 학생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씻는 것도 귀찮고, 나가는 것도 귀찮아 하루 종일 앉아서 텔레비전만 보고 스마트폰만 하다가 과식하는 게 일상이라고 말했던 아이의 말이 떠올랐다. 다음날이 되면 후회하지만 그다음 날이 되면 똑같은 일상이 되풀이되어서 지친다고 했다.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과 변하고 싶은 마음, 어쩌지 못하는 상처 받은 마음 사이에서 아이는 늘 괴로워했다. 어떤 날은 ‘제발, 오늘은 어제와 다른 오늘을 주세요.’ 라며 학교 등교 길에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고도 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마음이 아팠다.

 나는 요즘 마음이 잘 잡히지 않는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도무지 무얼 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다. 시간과 공간 어느 중간 지점에서 하염없이 맴돌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일상이 미치도록 견디기 힘들어서 떠나고만 싶은 마음이 자주 들곤 한다.

 길을 걷는데 떨어져 존재하는 나무들이 보였다. 기대지 않고 홀로 존재하는 나무들은 떠도는 바람을 만났다. 하나의 외로움이 또 다른 외로움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외톨이 곁에 또 다른 외톨이가 되어 아이의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작지만, 온 힘을 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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