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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junwon Jan 24. 2023

05. 명상의 경험

명상에 진지하게 임해 본 이야기

인도에서의 TTC를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정리하는 글입니다. 과거이지만 현재형을 사용하고 시간순으로 작성했습니다.


처음 해 보는 명상



매일 반복되는 수련은 명상으로 마무리한다.

첫 명상을 기다리며 드는 생각은 '가만히 앉아서 대체 무엇을 생각해야 하나' 하는 고민뿐이다.

실제로 명상 지도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에 하나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라고 한다. 그럴 때면 보통 선생님들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생각하라' 정도의 대답이니 이렇게 무책임할 수 없다.


어쨌든 명상은 시작되었고 바르게 앉아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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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해야 일분 정도 지났을 것 같은데 앉은 자세가 불편함을 느낀다. 자세를 고쳐 앉고 싶지만 다른 수련생들의 명상을 방해할까 싶어 움직임은 참기로 한다.


명상에 집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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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명상을 하는데 집중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것인가. 집중이라는 것은 하나를 골똘히 생각한다는 것인데 무엇에 집중한단 말인가. 역사상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명상이라는 것이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은 믿음에 다시 한번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는다.


우리 몸에 흐르는 에너지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명상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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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감았으니 보이는 것은 차단하였지만 들려오는 소리들은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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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의 얇은 새시들이 얕은 바람에 간혹 흔들린다. 공사하는 옆건물에서 들려오는 인부들이 내는 소리, 지나가는 오토바이 등 서울과는 낯선 건물 밖의 소리들을 귀담아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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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리도 먼 인도에까지 와서 나는 명상을 하고 있는가. 남들은 별일 없이 잘 겪어내는 사회생활이라는 것에 왜 나는 유난인 것인가. 나의 빈자리로 인해 불편해할 가족과 회사 동료들을 두고 온 나는 이기적인 것인가.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을 떠올린다. 한명 한명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마음을 전해본다. 마음을 전하다 보니 나는 그들과 함께 있다. 멀리 있지 않다. 그들은 나를 안아준다. 나에게도 전해본다. 나는 나를 돌아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인가. 세상이란 곳은 나에게만 혹독했던 것인가. 내가 약한 것인가. 아니면 유별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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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생각해 보면 나는 잘해 왔다. 그리고 운도 많이 따랐다. 더 높은 곳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높지만 이 정도도 매우 훌륭하다. 나는 썩 괜찮다. 그리고 지금의 나 자신이라면 아직 가능성도 많다. 작은 상처들에 집착할 어떤 이유도 없다. 흘려버리고 나만을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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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천천히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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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귀가 열리면서 현실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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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돌아왔음에도 생각은 주변 사람들과 나에게서 아직 못 빠져나온 듯하다.



처음 경험한 명상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를 만나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리운 사람들을 매우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나에게 말을 거는, 내가 나를 관찰하고 위로하는 낯설고 어색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명상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나를 움직일 수 있었다.

멀리 있는 사람을 피부 가까이 느낄 수 있었고,

어린 시절의 나에게, 작년의 나에게,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건낼 수 있었다.




싱잉볼 명상을 진행해 주시는 선생님




비슷한 경험을 책에서 만나다


인도에서 돌아와 읽은 책에서 비슷한 경험을 만났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수용소에서 혹독한 시간을 보낸 이가 가족을 그리워하는 장면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첫 명상에서 내가 그리운 이들을 만났던 그 감정과 매우 흡사하다.

이렇듯 명상이란 나 자신 깊숙이 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빛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나는 몇 시간 동안 얼어붙은 땅을 파면서 서 있었다. 감시병이 지나가면서 욕했고, 나는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자 점점 더 그녀가 곁에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녀는 정말로 내 곁에 있었다. 그녀를 만질 수 있을 것 같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이 너무나 생생했다. 그녀가 정말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서에서' 일부)





PS. 사실 이후에 하는 명상들은 처음처럼 잘 되진 않았다. 다른 종류의 명상을 경험하면서 집중이 어려웠을 수도 있고 첫 명상의 좋았던 경험 이상을 경험해야 한다는 필요 없는 생각에 잘 안되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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