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잎을 떨구는 계절에 배운 것들

겨울 나목(裸木)의 당당함

by 그냥 하윤

사람들은 겨울 나무를 보면 '앙상하다'거나 '쓸쓸하다'는 말을 먼저 꺼낸다. 잎을 다 떨구고 빈 가지만 남은 모습에서 상실을 읽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그런 단어들이 먼저 떠오르지 않았다. 감탄보다는 관찰이 먼저였고, 서글픔보다는 형태가 눈에 들어왔다. 겨울 나무는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군더더기 없이 단정해 보였다.


잎과 꽃이 없어서 불완전한 게 아니라, 지금 이 계절에 불필요해진 것들을 내려놓은 상태에 가깝다. 겨울 나무에서는 다른 것들이 더 또렷해진다. 기둥의 굵기, 가지가 뻗어 나가는 방향, 전체를 지탱하는 균형, 몸통에 남은 질감 같은 것들. 장식이 사라지면 구조가 드러난다. 나목(裸木)이라는 말이 '벗은 나무'를 뜻한다지만, 내 눈에는 벌거벗었다기보다 필요한 것만 남긴 모습으로 보였다.


나는 이것을 나목의 당당함이라 부르고 싶다. 여기서 말하는 당당함이란 근거 없는 자신감이나 남을 압도하는 기세가 아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비워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태도에 가깝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당당한 게 아니라, 있어야 할 것만 남아도 흔들리지 않고 서 있을 수 있다는 것. 그 정도라면, 당당하다는 말을 써도 무리는 없겠다.


요즘의 나는 그 나무 쪽에 더 가깝다.

평온하지만, 그것이 삶이 풍족해서라거나 여유가 넘쳐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어야겠다. 체력은 예전 같지 않고, 말수는 자연스럽게 줄었다.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내 상황을 설명하는 데 쓰던 에너지가 눈에 띄게 줄어든 상태다. 감정이 무뎌진 것은 아니다. 다만 에너지를 쓰는 방식이 바뀌었다. 지금의 나는 유지 가능한 최소치를 찾는 쪽으로 기울어 있다.


불경기를 체감하고 있었고, 실제로 이번 달 일감은 지난 3분기 평균 대비 약 20퍼센트 줄었다. 기존 거래처만으로는 안정적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졌고, 이전보다 먼저 움직이며 영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내 일상 바깥의 존재들까지 함께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상황을 가볍게 넘기고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12월을 안식일처럼 보내기로 했다. 먼저 연락을 돌리고, 메일을 쓰고, 새로운 제안서를 들이미는 일들. 지금의 나는 그걸 하지 않는다. 안식일이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멈추는 날을 뜻한다면, 이 시간이 그렇다. 불안해서 이것저것 건드리기보다는 멈춤을 허락하는 쪽을 택했다. 포기가 아닌 판단에 가깝다.


물론 계획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새해가 시작되면 포트폴리오를 다시 정리할 것이고, 상반기에 다녀왔던 직무 관련 컨퍼런스에도 다시 가볼 생각이다. 지금보다 더 큰, 더 많은 클라이언트를 만나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다만 지금은 아니다.


나목은 다음 계절을 몰라서 멈춘 게 아니다. 알고도 지금은 뻗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건 성장보다 균형이라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다. 더 나아가지 않아도 되는 시기, 애쓰지 않아도 하루가 무너지지 않는 상태.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하느냐가 어쩌면 삶의 속도를 결정하는지도 모른다. 잎을 달지 않은 채로도 하루를 건너갈 수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겨울은 충분히 오래 머물 만한 시간이 된다.





당신도 그런 겨울을 보내고 있다면,

그 시간이 부족함이 아니라 필요한 단정함으로 읽히기를.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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