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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ngry Traveller Aug 11. 2017

비행공포증 traveller의 육로 여행 5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발틱 3국으로

그 술주정뱅이 러시아 할아버지의 자리는 원래 내 윗 칸 침대였다. 내 자리라고, 비켜 달라고 표를 보여줘도 할아버지는 윗칸에 올라가기 싫은지 나 보고 위로 올라가라고 윗 침대를 손짓했다. 나는 이 침대는 내 꺼라고 비켜달라고 계속 말했지만 할이버지는 연신 보드카만 마셔댈 뿐 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듯 했다. 승무원에게 사정도 해 보았지만 그 할아버진 승무원 말도 무시해서 어쩔 수 없이 윗 침대로 올라 가려고 하는데 다행히 부인과 갓난쟁이 아기와 함께 탄 젊은 러시아 남자가 내 대신 그 할아버지와 싸워줘서 나는 아랫칸인 내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혹시 큰 싸움이 날까 걱정되어 내가 젊은 남자를 말리고 윗층 침대로 가겠다고 했지만 그 남자는 안된다며 할아버지를 끝내 내 자리에서 비키게 했다. 2등석에 드디어 자리가 났는지 그 남자는 부인과 아기를 2등석으로 보내고 혼자 내 앞 칸에 자리했다. 술주정뱅이 할아버지가 무서웠지만 그 남자가 나한테 안심하라고 눈짓해 줘서 맘이 놓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행 3등석 기차에서 시켜 본 홍차

그 남자를 따라 나도 홍차 한 잔을 시켜 봤다. 장식이 화려한 은빛 손잡이를 유리컵에 끼운 홍차는 뭔가 러시아스럽게 느껴져 좋았는데 홍차는 생각보다 너무 써서 속이 쓰리고 게다가 불안하기도 하고 해서 밤새 잠을 설쳤다. 술주정뱅이 할아버지가 다행히 내 뒤쪽 아랫칸 침대자리가 비어서 그쪽으로 옮겨 가 좋았지만 밤새 술을 마시고 시끄럽게 주정을 해대서 내가 무서워서 잠을 못자고 불안해 하니 나를 위해 싸워준 러시아 젊은 남자가 승무원에 강력히 항의했으나 승무원도 그 술에 쩔은 할아버지를 어쩔 도리가 없는 듯 했다. 그래도 역시 시간은 흘러 새벽 다섯시 즈음 목적지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했고 나는 기차에서 내리기 전에 나를 위해 싸워준  젊은 러시아 남자에게 고개를 숙여 깊은 감사를 표했다. 인종차별이 심하다던 러시아에서 난 단 한 번도 그런 낌새 조차 느낀 적이 없었다니, 이건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되려 나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이 더 많았고 그들이 있어 참 따뜻하고 즐거운 여행이 된 것 같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호스텔 도미토리 룸

아직 새벽 5시. 도시는 깜깜했다. 호스텔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면 되는데 버스가 다닐 시간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어둠 속을 50분이나 혼자 걸을 용기도 부족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유럽이라고 불리며 다른 러시아의 도시와는 달리 매우 개방적이라고들 했지만 새벽녘의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불안했다. 혹시나 하고 주변을 둘러 보았지만 죄다 러시아인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서성댔을까, 갑자기 커다란 배낭을 맨 서양남자가 보여 용기를 내 말을 걸어 보았다. 목적지가 비슷했는데 슬슬 걸어간다고 했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왔는데 사실 러시아인과 크게 구분도 되지 않는데다 남자여서 50분간 호텔을 향해 어둠 속을 걷는 게 무척 즐거워 보였다.  나도 같이 걸어도 돼? 라고 물으면 거절당할 듯 하여 차마 말을 못하고 좀 더 기다려 일곱시 경이 되지 버스가 다니는 것이 보이고 날이 밝아져서 드디어 버스를 타고 호스텔로 향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호스텔의 주방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나는 주방으로 달려갔다. 따뜻한 커피가 간절했기에. 가는 길에 모스크바 호스텔 주방에서 그 떠들던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던 중국인 커플 중 남자와 마주쳤다. 역에서 두시간 기다리고 겨우 왔다니까 자기들은 5시에 택시 타고 바로 호스텔로 왔다면서 반가워했다. 내가 모스크바 호스텔에서 그들의 짐을 날라줬었다면 나도 새벽 다섯시에 그들과 함께 택시를 타고 호스텔로 와 씻고 지금 즈음 편히 쉬고 있었을텐데...... 후회도 되고 미안하기도 했다.  중국인 커플 처럼 볶음밥은 못해먹어도, 그 동안 호스텔 주방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서양인들을 많이 지켜봐서인지 이제 샌드위치 정도는 만들어 먹을 수 있을 듯 하여 호스텔 근처 수퍼로 가 호밀빵, 토마토, 슬라이스 햄과 치즈 등을 사왔다. 빵은 얇기 잘라 토스트기에 넣고 토마토를 얇게 썰고 햄과 치즈 등을 준비했다. 남은 재료는 비닐에 싸서 공동 냉장고에 넣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였다. 물이 끓는 동안 다 구어진 빵에 호스텔 주방에 비치된 마요네즈와 케찹을 뿌리고 토마토, 햄, 치즈를 넣고는 다시 빵으로 덮은 후 끓는 물을 컵에 부어 커피까지 다 준비가 되었다. 짜잔! 이제 아무도 없는 텅 빈 주방에서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그럴싸한 맛이 났다. 원래 빵을 싫어 했는데 빵이 참 맛있구나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마 빵의 맛을 어렴푸시나마 알게 된 것 같다. 영국 유학 시절에 만나 한국어 학당을 다니기 위해 2달 간 한국을 다녀갔던 내 영국 친구 팀이 말하기를 영국인에게 있어 샌드위치란 한국인의 김밥과 같은 것이라고 했다. 서울에서는 맛 좋은 샌드위치를 맛보기 힘들다며 불만을 토로했던 팀. 샌드위치 따위가 맛이 있어 봐짜 얼마나 맛 있다고, 역시 세계 최악의 요리라고 평가되는 국가의 국민다운 말이군 생각했지만 지금의 나는 한국에서 조차 밥 보다 빵을 주식으로 하는 그리고 한국인든 어디에서든 맛있는 샌드위치를 민들기 위해 질 좋은 바게트를 찾아 두리번 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아마 러시아에서 알게 된 빵의 참맛 때문이 아닐까.


카잔 성당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의 일정은 고작 1박2일이었기에 여기저기 부지런히 다녔던 것 같다. 사실 여행기를 쓰고 있는 현재는 많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강이 흐르고 있었고 터널이 있고 러시아라기 보다는 유럽의 어느 한 도시를 걷는 것 같은 느낌.

이름 모를 어느 러시아의 정교회

가리에는 관광객들과 젊은이들로 꽈 차있어서 모스크바에서 느끼지 못했던 안도감 같은데 느껴졌던 것 같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모스크바가 더 좋았다. 역시 러시아는 러시아스러워야 더 멋진 법이니까.

다음 날, 라트비아의 라가로 이동해야 했기에 마음이 급해 버스터미널로 가서 라가행 버스표를 끊는데에 큰 애를 먹었다. 말길이 잘 통하지 않는데다 갑자기 전산망이 꺼져버려서 화딱지가 나 2층 카페테리아에서 거금 7000원이나 주고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원래 먹을 계획은 없었으나 쌀알이 보였기에 오랜만에 쌀을 흡입했는데 맛은 밥이라기 보다는 샐러드에 더 가까웠다. 발틱 3국은 다 들를만 한 시간이 없어 발틱 3국 중 가운데에 위치한 라트비아의 수도인 라가에서 하룻밤만 잘 계획이었다. 다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라가까지 가기위해서는 중간에 낀 에스토니아 국경을 넘어야만 한다.

the dance of Matisse in the Hermitage museum

라가행 버스를 타야했던 다음 날, 느즈막히 호스텔 체크아웃을 하고 짐은 호스텔에 맡긴 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유명한 겨울궁전으로 향했다. 겨울궁전은 학생에게는 무료로 개방되기 때문에, 그리고 라가행 버스시간까지는 6시간이나 남아 있었기에 이 박물관에서만 5시간ㄹ 보낸 것 같다. 미술전시 그리고 이집트 등의 유물전시관 등등이 연결된 아주 큰 규모의 박물관이라 5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성이삭 성당 기념품 판매점에서

모스크바에서부터 꼭 하나 사고 싶었던 마트료시카. 생각보다 비싼 가격으로 포기했으나 성이삭 성당 기념품 판매점에서 3000원대 작은 인형을 발견하고 냉큼 사버렸다.

스타벅스라니...

이제 이 트랜스 시베리아 론니플래닛도 필요 없어져서 난 이 책을 호스텔 거실에 두고 다른 책으로 바꿔 갈까 했는데 앞으로 내가 갈 발틱 3국, 폴란드 혹은 독일이나 영국에 관련된 책이 없어 난감했다. 사실 중간중간 물건을 조금 사서 내 배낭은 포화상태라 되어 난 물건을 좀 줄이고도 싶어 이 책을 호스텔 책장에 넣고서 누군가 모르고 빠트리고 가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H & M 썬글라스를 대신 들고 왔다. 저녁 버스를 타기 전에 남을 루블로는 담배값이  쌌던 러시아 담배 4갑을 샀다. 이제 터미널로 가 라가행 버스에 오를 시간이 되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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