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선운사에서

선운사에서 / 최영미

by 윤슬log


선운사에서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청춘의 열병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또 예고 없이 끝난다. 내 나이 서른이 되던 해 불같았던 사랑에 종지부를 찍었다. 단둘이만 사는 별처럼 아름다운 말들로 속삭였고, 그와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꺼질 것 같지 않던 불꽃은 쉬이 스러져 재만 남기고 말았다.


그날도 슬픈 노래를 들으며 버스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몸을 맡기고 있었다. 초점 없이 밖을 응시하던 나는 벌써 시내가 가까워졌음을 알아차렸다. 대형 서점 두 곳이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에 위치한 광화문과 종로 사이 어디쯤. 오가는 사람들 속에 나의 우울한 감정 따위는 가볍게 숨길 수 있을 것만 같아 무작정 내려버렸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듯 서점으로 향했다.


나는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해소하는 방법이 비교적 명확하다. 가벼운 수준의 스트레스는 지인들과 나누는 왁자지껄한 수다로 날려 버리고, 그보다 더한 압박이 오면 조용히 기도하며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한계치에 이르렀을 때. 즉 사람을 만나기도 싫고 기도마저 하기 싫을 때는 서점으로 달려가 사고 싶은 책을 몽땅 구입해 꼼짝 않고 다 읽어버린다. 누군가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말은 실로 참말이었다. 내가 부릴 수 있는 온갖 사치를 책에 쏟아부은 후 몇 날 며칠 읽고 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힘이 샘솟았다.


그날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잔인한 제목의 시집이었다. 서른 살의 봄을 누리기도 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내 모습과 어딘가 닮아있는 책이었다. 시집 한 권을 품에 넣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책의 제목이 된 시보다 큰 울림이 있었던 것은 「선운사에서」라는 연가(戀歌)였다. 꽃이 피고 지는 것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는 것이 영영 더 한참이라는 시는 마음속에 진한 여운을 남겼다. 시가 너무 좋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읽고 또 읽었고, 시인이 낭송하는 「선운사에서」를 듣기 위해 직접 강연장에 찾아가기도 했다.


최 시인은 이 시에 얽힌 일화도 전해 주셨는데, 실제로 그녀는 시를 발표하기 전까지 선운사에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선운사에 동백이 유명하다는 소리를 듣고 겨우내 사찰 관리소에 전화해 “지금 동백이 피었나요?” 하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며 발랄하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언제가 기회가 된다면 선운사에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절을 가득 메운다는 꽃들도 보고 싶었고 애송시의 배경이 된 선운사가 궁금하기도 했다.




이후로도 줄곧 마음속에 그 문장들을 품고 다녔고, 하늘이 유난히 높고 파란 어느 날 기다리던 선운사행 버스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버스 창 너머로 풍경들이 쉴 새 없이 바뀌었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선운사에서」 뿐이었다.


몇 번이나 되뇌었을까. 한참을 달리던 버스가 선운산 도립공원에 멈춰 섰다. 템플스테이 집합 시간에 맞추어 선운사로 걸음을 옮겼다. 내가 찾아간 시기는 뜰 안 가득 꽃무릇이 천지로 피어있는 초가을 즈음이었다. 꽃대 위에 바로 새빨간 꽃을 피워낸 꽃무릇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선운사 경내는 고요했다. 철 지난 매미 소리가 귓가를 울렸고, 선방 어디선가 나지막이 울려오는 목탁 소리도 들렸다. 사찰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나누어 주신 옷으로 갈아입었다. 세속의 묵은 때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한 일종의 의식 같았다. 1박 2일 동안 지켜야 할 간단한 기본 사항들을 비롯해 사찰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대웅보전 좌우에 한 그루씩 나란히 선 백일홍 나무와 빛바랜 불두화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병풍처럼 둘러선 동백숲도 빼놓지 않고 설명해 주셨다.


인자한 부처님의 미소도 좋았지만 선운사에 핀 꽃이며 나무들의 정취에 빠져 절 이곳저곳을 살펴보느라 저녁 공양 시간이 다 되었는지도 몰랐다. 공양은 조용했다. 함께 식사하는 이들은 더러 있었지만 마치 밥 먹는 일 자체와 오롯이 마주하는 느낌이었다. ‘충만한 고요함’이란 이런 것일까. 외롭지만 쓸쓸하지 않았고 고독하지만 소외된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여기서 지내는 하루 동안은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식사 후 차담(茶啖) 시간에 「선운사에서」라는 시를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는 이곳이 미당 서정주, 김용택, 임영조 등 여러 문인들에게 영감을 준 곳이라며 편히 쉬었다 가라고 말씀해 주셨다. 입에 잘 맞았던 절밥만큼이나 달고 맛난 잠을 자고 새벽 예불을 위해 숙소를 나섰다.

‘두둥- 둥- 둥- 두둥-’

보이지도 않는 길가를 더듬으며 내려오는데 새벽을 깨우는 북소리가 들려왔다. 검푸른 어둠을 뚫고 적막한 산사에서 흘러나온 북소리는 심연을 깨우기 충분했고, 미처 다 내려놓지 못하고 온 티끌 같은 잡념마저 흩어지게 만들었다.


가장 좋았던 시간은 참회와 용서의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던 108배였다. 죽비 소리에 맞추어 시작된 절은 시간이 흐를수록 무아지경의 황홀경에 빠지게 만들었다. 눈물 콧물 할 것 없이 속절없이 터져 나온 마음의 상처에 쌓여있던 미움과 원망이 말갛게 씻기는 것 같았다. 힘든 기색 없이 108배를 마친 나를 보고 스님은 절을 하기 전과 기운 자체가 달라졌고 이야기해 주셨다. 말로는 다 표현하기 힘든 상서로운 기운이 따스하게 몸을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템플스테이의 마지막 프로그램은 도솔암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를 걸으며 명상을 하는 시간이었다. 깨끗이 비워내고 산을 오르니 몸과 마음이 한층 더 가볍게 느껴졌다. 산길 위를 수놓은 도토리, 밤을 주우며 아이 때로 돌아간 것 마냥 즐거웠고,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구슬땀을 식혀주니 이만한 행복이 또 없지 싶었다. 이곳에 온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힘들었던 시기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었던 그 시(詩)처럼 선운사가 주는 따뜻한 위로를 나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 못내 아쉬워 하산 길에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았는지 모른다. 절은 초연한 모습으로 나와 눈을 맞추었고, 꽃무릇이 정거장까지 붉은 카펫을 만들어주었다.

꽃무릇의 꽃말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고 한다. 언제가 추운 겨울 지내고 봄이 오기 전에 동백을 보러 선운사에 다시 오고 싶다. ‘그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동백꽃에 담긴 의미처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날을 그리며 나는 버스에 올랐다.





keyword
이전 16화다리, 신발 그리고 매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