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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대처하는 법> / 정문정

by 윤슬log Mar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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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절도 근육이 필요한 일이라 처음에는 어렵지만 작은 것부터 해보다 보면 갈수록 쉬워진다. 의외로 거절을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 안된다는 말을 하면 주변 사람들이 나를 떠나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인간관계가 더욱 좋아졌다. 나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이용하던 사람들은 떠나갔고 동등하게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으려는 사람들은 늘어났다.

◉ 별 쓸모가 없는데도 살아 있으니 더 대단한 일 아닌가. 그러니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다.  

◉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면 일단은 적당한 거리를 둔 후 생각해도 늦지 않다. 어떤 경우에는 노력하지 않는 것이 최선일 때가 있다.     

- 정문정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대처하는 법> 중





입사를 위한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본인의 '단점'을 쓰는 란 앞에서 늘 고심했던 기억이 있다. 단점인 듯 단점 아닌 단점 같은 부분을 찾아야 하니 여러 가지 버전으로 글을 써보고 그나마 제일 무난한 것을 골랐던 기억이 난다.


제일 먼저 떠올렸 한 가지 취약점은 "거절을 못한다."는 점이었다.

'이 사람이 오죽하면 나한테 이런 부탁을 했을까?'

 헤아리보니 내 영역이 침범되면서까지 억지로 끌려가고 있었다. 나이가 어릴 때는 간단한 부탁 정도였지만 삶 연차가 쌓이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하게 되니 나는 자주, 쉽게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 있었다. 만남이 즐겁지 않고, 에너지 소모가 많거나 때때로 불쾌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내색을 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힘든 상황에 나까지 외면하면 가 더 힘들어할 것만 같았다.

'많이 힘들어서 그러는 거겠지. 원래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버거워하는 나 자신을 다독여가며 관계를 이어가려고 애썼다.

지금 생각하면 참 바보 같은 생각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누구보다 힘든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앞가림도 어려운 상황에서 상대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발 벗고 나섰더라도, 반대로 내가 힘들 때 그들이 곁에 있어 주는가는 별개의 문제였다. 


상황은 변하고 관계는 언제나 불공평했다.  




네 번째 암 수술 후 몸에 압박 붕대를 감고  나는 몸을 세우는 일조차 힘들었다. 전에 받은 방사선치료 때문에 살이 늘어나지   상당히 어려웠다고 의사는 이야기했다. 결국 성형외과 팀까지 합류해 겨우 수술을 마쳤고,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을 때 턱 아래부터 잔뜩 살을 당겨놓은 탓에 목을 돌리기 어려웠던 기억이 다. 입원이 여러 번이라 지인들에게도 알리지 않았고, 면구스러워 병문안도 거절했지만 기어코 멀리서 나를 보겠다고 온 후배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고, 오래 사귄 남자친구에게 차여 삶이 힘들다며 안락사를 알아봤다"했다.


기가 막혔다. 퇴사하고 믿었던 애인에게 버림받는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다니 힘들겠다 싶었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암환자 앞에서 (그것도 병원까지 찾아와서) '안락사'를 운운하는 게 과연 상식적인 일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태도는 자못 진지하고 비장했기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후배를 데리고 병원 꼭대기에 스카이라운지로 향했다. 그곳에서 제일 비싼 밥을 사주고 커피도 샀다. 그녀를 배웅하고 돌아온 병실에서 나는 내 병과는 또 다른 종류의 심란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후배에게

"너 그때 병원 와서 그런 얘기했던 거 기억하니?"

하고 물으니 전혀 억하지 다. 황당했지만  지나간 일이었다.


사람은 결국 이기적이다. 극한 상황일수록 남의 처지는 살피기 힘들다. '다른 사람의 중병보다 내 손톱 밑에 낀 가시가 더 아픈 법'라는 옛말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언제나 그 중병에 걸린 쪽이었다.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나의 다섯 번째 술은 친구의 이혼과 비슷한 시기였고, 우리는 힘든 부분은 달랐지만 남들이 잘 겪지 않는 시련을 겪고 있다는 묘한 연대감에 서로의 버팀목이 되었다. 힘들 때 편하게 전화하고, 허심탄회하게 속 이야기를 나누고, 답답한 상황을 토로하며 이따금 눈물을 보여도 찮은 사이.

람이 겪는 스트레스 순위에서 '이혼'은 늘 상위에 머물렀기에 친구가 느끼는 상심이 얼마나 클지 가늠도 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특히 더 많이 힘들어했고 못 견디게 괴로워했다. 회사에 출근도 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전화 통화를 이어가면서

"어제는 너무 힘들어서 손목을 그었다."

고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에 나는 몹시 놀랐고 괴로웠다. 그리고 화가 났다. 병원만 가도 힘든 수술과 치료를 기약 없이 하면서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들 이렇게 소중한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날은 내가 일주일간 입  막 퇴원한 이었다.


"고생했고 퇴원 축하해."

라는 말에서 끝났으면 참 좋았을 텐데, 친구는 내 이야기를 조금 듣더니 그날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본인의 아픔들을 한꺼번에 풀어놓았다.

"가 힘든 건 알겠는데 이혼한 사람들이 다 이렇게 자살 시도하고 죽고 싶어 하지는 않아. 너는 자식도 있고 번듯한 직장도 있고... 힘들어도 기운 내서 다시 일어서야지. 내가 이야기 들어주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이건 나의 영역이 아니라 정신과에 가서 전문가랑 상담하고 필요하면 약도 먹고 그래야 할 것 같아."

나는 단호한 어조로 그녀에게 말하고 상황을 겨우 정리했지만, 뜨끈해진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뒷목이 뻣뻣해 타이레놀을 털어 넣어야만 했다. 




나는 거절하지 못하고 휘둘리고 있을까. 인간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위한 최소한의 방어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했는데, 하고 싶은 말은 늘 입 안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yes맨' 말로만 듣던 '착한 사람 콤플렉스'주인공이 나였던 걸까.


종종 런 상황에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피어오르 시작했고, '나부터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이어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참고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지 않으려면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몹시 불편하다. 지금 내 감정이 어떠하다."

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었다.


 인간관계나 소통에 관한 여러 가지 책을 찾아 읽었고, 시작이 된 책이 정문정 작가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대처하는 법>이었다.

그리고 작년 여름 대한암협회에서 진행한 무료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이러한 고민들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상담사 선생님 역시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불편한 상황이 반복될 경우 나의 감정을 솔직하게 상대방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건강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상대에게 맞춰주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바로설 수 있어야 하고 나의 상황과 감정이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다.  배워야만 아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게 참 어려웠던 나로서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반드시 체득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거절을 연습하기로 했다. 특히 감정적으로 교류가 깊어지고, 잦아지다 보면 이전의 일들처럼 선을 넘게 되는 경우가 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이 관건이었다.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이 책의 말처럼 거절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는 예전처럼 무조건 참거나 지레 겁먹지 않는다. 본인의 의사와 다르다고 떠나가는 사람은 굳이 붙잡을 필요는 없으니까.


날씨가 화창했던 주말 아침 외출을 준비하던 내게 전화해

"너랑 똑같은 의사한테 너랑 똑같은 방법으로 수술하고 치료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척추와 장기로 암이 전부 전이되어 손 쓸 수 없게 된 사람을 봤다. 그래도 나는 시한부는 아니니까..."

라고 이야기하며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은 자신이 다행이라고 말하는 정신 나간 환우에게는

"나도 잊고 살려고 하는데, 아침부터 전화해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르겠고. 들을수록 너무 우울해져서 나중에 연락하겠다."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루 종일 기분이 더러웠지만 더 이상 그런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세상에는 몸이 아프지 않더라도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몰라 늘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남과 비교하며 '그래도 그들보다는 낫다'라고 정신승리 하는 사람도 다. 그래서 관계가 더 어려웠다.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힘든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바뀌고 성격이 변할 뿐이었다. 투병을 하면서 언제나

'나만 생각하자. 내 마음 편한 게 최고지.'

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았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늘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고 싶었나 보다. 나에게 먼저 좋은 사람이 되었어야 하는 데, 이 단순한 진리를 마흔에야 깨달았으니 지난 세월 바보같이 살아온 내 자신이 후회스럽기만 하다. 가끔 이기적이고 때론 냉정하더라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데 뒤돌아 속으로만 아우성치던 지난날과는 영원히 작별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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