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뒹굴뒹굴 행복론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 김신회

by 윤슬log Feb 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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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를 둘러보면 열심히 사는 사람밖에 없는데, 정작 자기 삶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다들 힘들어하고 자주 외로워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뭘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몸과 마음, 기분과 생각을 스스로 돌볼 수 있어야 한다.      
◉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음으로써 비로소 완벽해질 수 있다.     

◉ 그런 의미에서 자체 휴가 날에는 그동안 갖고 싶었지만 참아온 것들을, 왠지 낭비처럼 느껴져서 머뭇거렸던 일들, 게으름이나 한심함으로 여겨졌던 일들만을 한다.
눈 뜨자마자 맥주를 마시고, 안 사도 될 것들에 지갑을 열고, 하루 종일 시간을 허비하면서 ‘생산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하루를 보낸다. 그러는 동안 조금씩 나에게 관대해지는 법을 배운다.      

- 김신회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중




이전에 소개한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재밌게 읽은 나는 비슷한 계열의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김신회 작가의 <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안구나> 역시 '나에게 관대해지는 법'을 이야기하고 있는 책으로 술술  읽혔다.


처음 발행한 브런치북 <윤이나는 삶>에 '내 사전에는 없는 말'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적이 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40년의 시간에서 '아무것도 안 하기' 내 인생에 없었다. 아무것도 안 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앞만 보고 달릴 줄만 알았던 나는 정작 멈추는 방법이나 휴식을 취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경주마처럼 달리던 삶은 몇 차례 '암'이라는 고비를 만나 달리는 말에서 걷는 말로, 풀을 뜯는 말로, 마구간에서 휴식을 쉬는 말로... 유유자적하는 시간들이 늘어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들과 아무것도 아닌 날들이 지속되다 보니 무기력과 우울이 찾아왔다. 무언가를 해내려 부단히 애썼고 할 일을 찾아서 노력했지만 반복되는 투병으로 공든 탑이 몇 번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고는 긴 방황이 찾아왔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달라진 삶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의 시간이자 꼭 필요했던 시간들이었지만 당시에는

'젊은 나이에 이렇게 오래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될까? 사지가 멀쩡한데 그래도 얼른 치료만 끝나면 원서 써서 회사에 들어가야지.'

이런 생각들로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던 나였다.


... 왜 그랬나 싶다.




퇴사 후 1년간 시각장애인 학생을 위한 학습 봉사를 한 적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맹학교로 방문해 고3 학생에게 언어영역을 가르쳤다. 시각장애인들은 모두 선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선입견이 보기 좋게 빗나간 순간이었다. 친구는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축구부에서 활동할 만큼 신체 건강한 학생이었는데, 중도 실명으로 어느 날 갑자기 시력을 잃게 되었고 '체육 교사'라는 꿈도, 대학 입시도 좌절되어 오랜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삶에 닥친 갑작스러운 시련으로 등교도 거부하고 집에서만 생활하다가 친척분의 소개로 절에 들어가 일 년 정도 생활을 하고 나서야 마음이 정리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방황의 시간이 길었지만 절에서 생활하며 차차 본인의 상황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점자를 배워 새롭게 수능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이후 시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에서 공부하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로 전학을 왔고, 고등학교 1학년 과정부터 다시 공부했다는 친구는 힘든 시간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적응했다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인생에서 마주한 시련의 종류는 다르지만 나도 내 이야기를 들려주며 잔뜩 용기를 불어넣어 줬던 게 생각난다. 그 친구 역시 평범한 인생에서 갑작스러운 실명으로 세상을 등진채 좌절하고 절망하고, 칩거하다가 오랜 인고의 시간을 지나 비로소 세상으로 나갈 용기를 얻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러운 시간이라도 돌아봤을 때 어느 하나 의미 없는 시간은 없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부지런히 일해서 성과를 내고 목표를 이루던 날들도, 아프고 피곤한 몸으로 하루 종일 뒹굴거리며 먹고 자고를 반복한 날들도, 손가락 하나로 핸드폰을 휘저으며 침대와 물아일체가 되었던 시간들도. 그 시절 나에게는 꽤나 필요한 시간들이었다.




결혼 후 신혼살림을 차린 곳은 지방의 소도시였다. 자전거 도로가 상상 이상으로 훌륭하게 조성된 곳이었는데, 세종에 살며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나 제일 인상적이었던 시간을 꼽으라면 건강을 위해 매일 왕쑥뜸을 뜨러 한의원에 출근 도장을 찍은 것도 아니고 꼬박꼬박 운동을 한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본격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일도 아니었다. 하루 두 끼 매일 집에서 밥을 먹던 남편과의 식사를 위해 요리책을 뒤져가며 고군분투하던 모습도 아니었다. 모두 나의 건강과 안녕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이고 유익한 일들이었지만 정작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볕 좋은 날 자전거를 타고 호수공원을 달려 '소금빵 기행'을 다니던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자체 휴가 날에는 그동안 갖고 싶었지만 참아온 것들을, 왠지 낭비처럼 느껴져서 머뭇거렸던 일들, 게으름이나 한심함으로 여겨졌던 일들만을 한다.

눈 뜨자마자 맥주를 마시고, 안 사도 될 것들에 지갑을 열고, 하루 종일 시간을 허비하면서 ‘생산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하루를 보낸다.

그러는 동안 조금씩 나에게 관대해지는 법을 배운다."


라는 이 책의 표현처럼 주부의 삶에 드는 한 줄기의 햇살과도 같은 시간을 나는 최대한 달콤하게 누리고 싶었다. 세종은 젊은 층이 많고 꾸준히 인구가 유입되고 있는 도시라 걸출한 디저트 카페들이 많았다. 맘카페나 블로그를 검색해 맛있다는 소금빵집을 모두 지도에 표시하고 자전거로 기행을 다녔다. 정제 탄수화물을 멀리하는 게 좋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삶의 원초적인 기쁨들을 모두 차단할 수는 없어 가끔씩 허용하고 있다. (본인에게 후한 )

사실 초콜릿과 디저트류를 좋아해 초콜릿은 최대한 다크 초콜릿으로, 빵은 진짜 너무너무 먹고 싶을 때 가끔씩으로 줄이기는 했지만 소금빵의 유혹은 참기 어려웠다. 담백하고 고소해 하나 정도 맛있게 먹으면 속이 부대끼지 않았고, 특별히 좋은 재료를 찾아 쓴다는 가게를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했다.


노릇노릇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소금빵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하교하는 초등학생들도 구경하고, 마중 나온 어른들의 모습도 관찰했다. 학교 근처는 왜인지 모르게 늘 생기가 넘친다. 외곽에 자리한 카페에 들렀을 때는 분위기도, 맛도, BGM도 모두 독서하기에 적합해 책 한 권을 금세 읽고 나오기도 했다. 풍경이 아름다운 카페에서는 누군가를 위한 편지도 적어보고 소금빵의 고소한 맛을 음미하며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가을이 무르익어갈 때까지 나는 한낮의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라이딩을 즐겼다. 세종을 가로지르는 금강변을 따라 오늘은 '소담동'으로 내일은 '아름동'으로 이름도 예쁜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며 소금빵 탐방을 했다. 결국 '빵은 맛집이 맛있는 게 아니라 갓 나온 빵이 맛있는 것'이라는 큰 깨달음을 얻고 소금빵 기행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물론 누군가의 눈에는 게으름이나 한심함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안 사도 될 것, 굳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될 것을 쫓아 신나게 다녔으니 말이다. 당장 돈을 벌거나 눈앞에 결과를 내는 생산적인 일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에겐 새롭게 무언가 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는 원동력은 되어 주었다. 힘들 때 먹는 자양강장제처럼 맛 좋은 소금빵에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힘차게 자전거 페달을 밞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장을 보고 근사한 저녁상을 차린다. 한창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쓰던 때라 잠들기 전 글 한편을 뚝딱 쓰고서는 기분 좋게 꿈나라로 출발하곤 했다.


 거 없는 하루였지만 하고 싶은 건 모두 다 한 날이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어서 감사한 날들이었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 동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날인지 여실히 깨달았다.


는 내가 무탈했으면 좋겠다. 나를 둘러싼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내가 전부 통제하 수 없으니 나의 몸과 마음, 기분과 생각을 스스로 잘 돌보아 그저 건강하고 무사하고 싶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공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 뒹굴거리며 행복했던 날들에 죄책감 느끼며 불편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다 보면 대단한 뭔가를 하게 되지."

라는 곰돌이 푸의 말처럼 인생에 '쉼표'는 반드시 필요하다. 잘 쉬는 일, 혼자서도 심심하고 지루한 시간들을 잘 보내는 일, 나아가 이런 시간들을 보내며 응축된 에너지들을 모아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세종을 떠나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바다 바로 앞이었다. 항구의 방파제를 향해 달려온 파도가 끊임없이 부딪치고 물보라가 이는 것이 보였다. 바다는

'오늘은 조금 더 예쁜 파도를 만들어야지. 오늘은 서핑하기 딱 좋은 너울을 만들어봐야지.'

고 생각하지 않는다. 바다는 그냥 바다다. 방파제를 만나거나 해안선에 다다라 곡선의 아름다운 물결로 완성된다. 어떤 목표나 특별한 뜻이 없어도 바다는 바다로서 완벽하고 스스로 완성된다. 그것을 보며 이런 감정, 저런 감정을 느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뿐이다. 바다는 언제나 홀로 초연하다.


인간으로 태어나 사회에 보탬이 되고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다면 좋겠지만 설령 그렇게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내 삶이 가치 없고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날에 위축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기회는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른다. 알차게 쉬고 스스로를 잘 가다듬어 멋지게 점프라도 해 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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