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항 해수교환시설에 대한 고찰
주문진에 어둠이 내리면 유난히 밝은 빨간빛이 눈에 들어온다. 시간차를 갖고 일정하게 점멸하는 그 불빛에 시선을 두면 머지않아 등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밤에도 조업을 하는 뱃사람들을 위해 홀로 갸륵하게 빛나고 있는 등대.
하늘이 유난히 맑았던 어느 날 우리는 동네 산책 겸 그 등대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주문진 수산시장을 지나 고깃배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항구를 지났다.
돌계단을 올라 방파제에 올라섰을 때, 철제 난간 없이 탁 트인 바다가 눈 바로 앞에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과장을 조금 보태 방파제에 걸터앉으면 금방이라도 발이 바다에 닿을 것 같았다. 이미 그렇게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는 중년 부부의 모습도 보였다.
"오! 여보 여기 완전 히든 스팟이다. 우리도 김밥 싸가지고 여기 와서 바다 보면서 먹자."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남편에게 소리쳤다.
"좋지. 안 나와봤으면 후회할 뻔했네. 오길 잘했다."
남편도 꽤 만족스러운 눈치였다. 그리고 등대를 향해 경쾌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오른쪽으로는 주문진 항구가, 왼쪽은 테트라포드가 쌓인 방파제로 파도가 쉼 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넘실거리던 파도가 방파제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졌다. 쉼 없이 물보라를 만드는 파도가 신기해 한참을 구경 중이었다. 무한정 밀려드는 파도 사이로 물을 가둬두는 경계가 보였다. 그 안에서 바닷물이 출렁이고 있었는데, 흡사 '바다 목욕탕' 같은 모습이었다. 커다란 반원 형태로 경계석에는 손잡이 모양의 볼록한 고리들이 박혀있었다.
앞에 세워진 푯말에는 '주문진항 해수교환시설'이라는 설명이 보였다.
주문진항 해수교환시설
방파제 외측에 아치형 월류제(유수지)를 설치하여 월류제를 넘어온 해수가 항내로 유입될 수 있도록 해수교환 방파제(케이슨)를 설치하고, 대구경 도수관로를 매설하여 외해의 해수가 도수관로를 통해 항내로 유입되게 하여 오염된 항내 해수를 순환시켜 항내 수질을 개선하는 시설
* 항내 담수량 / 일일 유입량 : 994천 제곱미터 / 71천 제곱미터
* 항내 전체 해수교환 소요일수 : 약 14일 소요
* 기대 효과: 항내 수질개선을 통한 해양환경 개선
태어나 처음 보는 시설이었다. 바닷물도 이런 시설을 거쳐 깨끗하게 정화될 수 있다니 신기했다. 보통 항구는 거센 파도를 피해 방파제를 쌓고 육지와 인접하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조류의 순환이 보다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위와 같은 시설을 설치한 것이었다.
특히 눈길이 갔던 것은 '항내 전체 해수교환 소요일수 14일'이라는 부분이었다. 보름이 지나면 주문진 항구의 해수가 깨끗하게 걸러진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지 않은가.
바다가 부러웠다. 내 마음에도 '해수교환시설'처럼 마음을 정화하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속에 혼자 사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오염된 마음을 깨끗하게 만드는 '리셋 버튼'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 산에 홀로 사는 사람도 고독이나 외로움을 견뎌야 하고 산짐승의 공격, 먹거리와 땔감 걱정이 없을 수 없으니 자연인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마음에 티끌하나 두지 않고 살기는 참말로 어려운 일이다.
요즘은 인공지능 시대로 AI와 대화도 하고 업무도 한다는데, 기술이 더 발전해 차량의 '공기정화 버튼'처럼 내 마음속 리셋 버튼을 누르면 잊고 싶은 기억도, 나쁜 마음도 금방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가까이는 주문진으로 이사 와서 층간 소음으로 인해 괴로웠던 기억을 잊고 싶다. 지인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니 너도 나도 한 번씩 경험한 층간 소음 일화를 무용담처럼 들려주었지만 큰 위로는 되지 않았다. 그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은 겪어야 하는 거구나.'
라는 생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웠던 나는 적반하장으로 일관하는 윗집과의 대면에서 쌈닭이 되었고, 소중한 에너지를 층간 소음에 쏟아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 살면서 겪지 않아도 된다면 반드시 피하고 싶은 일이다.
두 번째는 2022년에 했던 항암치료의 기억을 잊고 싶다. 재발이 잦았던 나는 여러 가지 약을 바꿔가며 3년에 한 번 꼴로 항암 치료를 했다. 세포독성 항암제를 썼을 때에도, 머리가 전부 빠지는 독한 약을 맞았을 때도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방사선 치료 부작용으로 힘들어하는 환자들도 많았지만 다행히 그런 것도 없었고, 젊은 나이라 그런지 회복이 빠른 편에 속했다.
하지만 3년 전 그때는 국소재발만 이어지던 터라 이미 쓸 수 있는 약을 다 써버린 후였다. 전에 썼던 항암제를 다시 쓰는 대신 용량은 증량하기로 했고, 난소 보호를 목적으로 맞는 '졸라덱스'라는 주사는 맞지 않기로 했다. 조금 더 공격적인 치료에 돌입한 것이다.
총 12번의 주사를 맞아야 했는데 초반에는 괜찮았지만 이후로는 두 달 넘게 출혈이 계속되었다. 나중에는 피가 하도 많이 쏟아져 눈도 안 보이고, 이빨이 흔들려서 음식을 모두 갈아먹었다. 운전하는 것도 걷는 것도 모두 힘들었다. 항암 부작용으로 인해 복용하고 있었던 항생제와 수면제에서도 어려움이 있었는데, 수면제를 먹은 지 한 달 정도 됐을 때 환청을 겪고 나서 단박에 끊어버렸다. 잠을 못 자면 다음날 약 부작용이 더 심해질 거라는 강박에 수면제를 먹은 것이었지만 수면제의 부작용은 말 그대로 '어나더 레벨'이었다.
세상 나돌아 다니기를 좋아했던 내가 집 앞 놀이터에만 겨우 나갈 수 있는 정도로 체력이 안 좋아졌고, 말도 어눌하고 눈빛에 있던 총기도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한 걸음도 제대로 못 떼고, 어버버 하며 천천히 말하는 내 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남자친구의 모습이 떠오른다. 당시 나는 머릿속이 안개로 가득 차 점점 멍청이가 돼 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급기야 하루는 로션을 머리에 바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무너져 내렸다.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생각도,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처음으로 가져보았다.
나는 흐리멍덩한 눈으로 주치의에게 물었다.
"선생님... 저... 안 죽죠...?"
의사는 모니터에 나와있는 피검사 수치와 전신 검사지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곧 나와 눈을 맞췄다.
"안 죽어. 안 죽어."
그녀는 도리질을 하며 '안 죽는다'고 말했다. 말투는 단호했지만 안쓰러운 눈빛이었다. 지난 십수 년간 진료를 보면서 늘
"괜찮아요. 좋아요. 할 수 있어요."
라고 이야기하던 나였다.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지만 '(이 정도로) 죽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이 서럽도록 반가웠다.
죽을 것 같이 힘들었지만 다행히 죽지 않았다.
과다 출혈로 치료는 한동안 중단되었고, 졸라덱스(난소 보호 주사)를 맞고서야 피가 멈췄다. 나는 그 사이 과호흡과 각종 약 부작용으로 응급실을 몇 번이나 드나들었다.
항암 치료가 이렇게나 힘들었다면 내 인생 한 번으로 충분했을 텐데, 나는 늘 할만하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큰 두려움이 없던 게 화근이었다. 이때 일을 계기로 정신 바짝 차렸으니 다시는 이런 힘든 경험을 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겠다.
시간은 흘러간다.
비록 2022년 봄-여름은 알싸하게 코를 찌르는 항암제 냄새로 기억이 되고, 2025년의 시작은 층간 소음 프로파일러로 살았지만 간간히 좋은 날도 있었다. 살다 보니 적응하고 싶지 않은 것에도 적응이 됐고, 나름대로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는 중이다.
무엇보다 '꽤 괜찮은 세상'이라는 것을 한 번씩 깨달을 때마다
'그래, 오래 살길 잘했지. 버티길 잘했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진항에서 만난 해수교환시설을 보며 내 인생에서 정화하고 싶은 기억들을 소환해 보았다.
'싹 사라지면 좋을 것 같은데. 가위로 싹둑 잘라 들어내면 더 괜찮은 인생일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일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위안해 본다.
결국 인생은 '기분 관리', 행복은 '정신 승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이렇게 또 한 번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