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제목이 신박해서 고르긴 했지만, 읽는 내내 집중하기 힘들었음을 고백한다. 몇 번이나 책을 다시 들어 정독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이내 덮게 되었다. 곰곰이 이유를 생각해 보니 내가 아는 모든 천주교의 교리와 상식, 믿음을 조목조목 부정당하는 느낌이어서였다.
사실 나의 경우 책을 선택할 때 제목, 지은이, 출판사 그리고 앞뒤 서문을 보고 고르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다. 책 맨 뒤에 문구가 “진정한 기도는 하느님에게서 시작된다. 사람이 하느님에게 기도한다고 생각하는가? 기도는 하느님에게 무엇을 구하고자 간청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일이다.”라는 글귀를 보고 가톨릭의 진정한 기도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하고 청하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 핵심인 줄 알았다.
하느님이 친히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를 한 구절 한 구절 반박하는데 몹시 불편했다. 예를 들면 ‘우리 아버지’라는 구절을 두고 종교는 우리를 유치하게 만든다고 서술했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전능하신 아버지로 묘사함으로써 우리는 평생 미성년임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것. ‘하늘에 계신’이라는 구절은 오히려 하늘 높은 곳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우리 아버지’라고 바꾸어야 한다는 것.라는 식이다. 그러면서 책의 맨 마지막에는 본인이 새롭게 쓴 기도문이 실려있는데 여기서 입을 떡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천주교의 모든 기도문은 단순히 입으로 외워서 낭송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개인이 자유롭게 해석하고, 음미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톨릭의 성경과 교리를 바탕으로 한 상식적이고 틀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마치 통용되는 모든 기도문은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전제로 자신의 주장을 책 한 권으로 나열해 놓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우리가 고등학교 때 문학을 배울 때 정작 시인과 작가는 시험에 나오는 그 의도를 가지고 그 구절을 쓰지 않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박완서씨의 책에서도 내 글이 교과서에도 나오고 시험에도 나온다는데, 나는 시험 문제에 출제된 그런 뜻으로 그 단어나 구절을 쓴 게 아니라고 말했다. ‘내 생각은 이런데, 이 구절은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가 아닌 ‘이것도 틀리고 저것도 틀리고 이게 맞다.’라는 식의 정의는 상당히 불편했고,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길래 이런 주장을 하지?’ 하고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좋게 해석한다면 인간이 일방적으로 하느님에게만 빌고 매달릴 것이 아니라 하느님도 인간이 있어야지 그 존재가 더욱 빛을 발하듯 상호 간의 의미 있는 교류를 통해서 신앙생활을 하자는 것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