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차오른다. 가자

때론 일출보다 월출이

by 윤이나


이사 준비가 한창이다. 떠나는 날을 받아 놓으니 시간이 더 빨리 간다.


1월의 첫 주말에는 남편과 오대산 월정사에 다녀왔다. 드라마 <도깨비>에도 등장하는 월정사 전나무숲길이 집에서 50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라 여름에도 한 번 혼자 가서 맨발 걷기를 하고 돌아왔다.


월정사를 처음 찾았을 때부터 항상 오면 들렸던 <산촌>에서 능이버섯 솥밥과 강원도 나물밥으로 한 상 거하게 식사를 하고, 바로 맞은편에 조성된 '오대산 자연 명상마을'을 둘러보았다. 소박하게 흘러가는 강 건너로 '동림선원'이 자리하고 있어 거기까지 산책 겸 다녀왔다.


다리에 새들이 부딪치지 않게 투명한 스티커를 붙여놓았지만 작은 새 한 마리가 머리를 찧었는지 축 늘어진 채 누워있었다. 전에도 양양 북카페에서 남편과 데이트하다가 숨이 다한 박새를 언 땅을 파고 묻어주고 왔는데, 그때 생각이 났다. 그냥 지나치려다 다리 중간쯤 가서

"추운데 저렇게 두고 못 가겠어. ㅠㅠ"

남편이 내 얼굴을 잠시 살피더니 가던 길을 돌아 새에게 갔다. 다행히 내가 끼고 온 장갑과 무무가 챙긴 휴지 2장이 있었다. 휴지로 아래위를 잘 감싸 해가 잘 드는 곳으로 갔다. 나도 튼튼해 보이는 나무 막대기를 주워 들고 남편 뒤를 따랐다. 잘생긴 향나무 근처에 얼지 않은 땅이 있었다. 이왕이면 따뜻하게 있으라고 양지바른 곳을 찾아 새를 보냈다.

검정과 흰색이 섞인 박새도 아니고, 배 부분이 주황빛이 도는 딱새도 아니고, 전체적으로 짙은 색에 꽁지 부분만 푸른빛이 더 돌았다. 참새보다는 크고 직박구리 보다는 작은데, 나도 나름 새를 좋아하지만 무슨 새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하늘나라에 잘 도착했길.

"다음 생애는 꼭 인간으로 태어나라."

무심결에 이렇게 빌었는데, 새로 태어나는 것보다 사람의 인생이 더 좋은 것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새를 배웅해 주고 월정사로 향했다. 새해라 그런지 월정사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초를 켜고 소원지를 달며 저마다 올 한 해 소원을 되새기는 것 같았다. 남편과 나란히 전나무 숲길을 걷고, 볼 때마다 감탄하는 벼락 맞은 나무도 보고, 절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바람이 차서 입이 떨어질 것 같아 다원에 들러 쌍화차와 대추차를 나눠 마시고 돌아왔다.


다음 날은 이삿짐을 싸며 버릴 것들 주로 옷과 가구들을 정리했다. 3개월 동안 7킬로 정도가 빠져서 중학교 2학년 때 몸무게로 돌아갔다. 따로 다이어트를 한 것이 아닌데, 단기간에 이렇게 빠지는 게 맞는지 걱정되긴 하지만 확실히 몸이 더 가볍고 군살이 없어져 좋긴 좋다. 안 맞는 옷들, 오래 들고 다닌 해묵은 옷들 과감하게 정리하고 버리기 아까운 것들은 중고 거래를 위해 따로 모아두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쪼개진 책상다리와 상판을 교체하며 휴일을 보냈다. 두 박스 정도 쓰레기가 나와 하나씩 들고 내려가는데, 이것도 무리라면 무리인지 흉곽이 뻐근하고 답답하게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8시간 이상 잘 잔 날은 컨디션이 좋아 평소보다 무리하게 되는데, 늘 그러면 탈이 났다. 어제 꿀잠 잤다고 오늘 뻐렁쳐서 반나절 이상 체력을 소모했더니 다시 골골 모드 ㅎㅎ

삼출 있는 부분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어서 완벽히 몸이 돌아와야 다시 근육도 붙이고, 코어 운동도 하고 그럴 텐데 아직은 무리인 것 같다.


저녁에는 남편이 6시 8분에 뜨는 보름달 보러 가자고 해서 급하게 밥을 먹고 사천 해변으로 출동!

달이 흔적도 없어서 구름에 가렸나 보다 하고 그냥 걷다가 들어가려는데, 저 멀리 수평선에서 뻘건 보름달 발견했다. 구름과 같이 떠오른 레드문이 신기하고 진귀하기만 했다. 우리가 서서 연신 셔터를 눌러대자 사람들이 같이 걸음을 멈췄다.

"저게 뭐야? 해야?"

이런 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정말 해처럼 붉은 달이었다. 달님을 보고도 무무와 함께 소원을 열심히 빌었다.


바닷가에 살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일출만큼 월출도 정말 장관이라는 점이다.



남편은 1월 2일 자로 발령이 나서 올해부터는 대학원 공부를 하게 되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첫 평일날 부모님이 추천해 주신 울진 '덕구온천'에 다녀왔다. 국내 유일의 자연용출수라고 하는데 물이 정말 부드러웠다. 모처럼 냉온욕도 하고 온천 자체를 만끽하고 돌아왔다.


고속도로 타려고 달리다가 삼척 즈음에서 빨간 전망대가 보여 급 들려보았다. '수로부인 헌화공원 전망대'라고 한다. 고전 시가 중에 <헌화가>와 관련된 곳이었다. <구지가>와 <해가>도 찾아볼 수 있었다.


매표를 하고 전망대에 올라가니 20분 정도 잘 닦인 대나무 숲을 따라 더 오르는 길이 나온다. 중간에는 거북이 바위도 있고 삼척 바닷가가 아주 잘 보여서 전망이 좋았다. 꼭대기에는 수로부인상, 울릉도가 보이는 전망대와 카페도 있었다. 안 들렀으면 어쩔 뻔했는가. 생각보다 한적하고 좋아 올라오길 잘했다 싶었다. 바람이 어마무시하게 불었지만 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멋진 풍광이었다.


개인적으로 40대가 가기 전에 대학원에 진학해 고전 시가를 공부하는 게 꿈이라서 이곳이 더 반가웠다. <공무도하가> <정석가> <정읍사> <찬기파랑가>...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조선시대 옛시조까지. 우리 조상들이 지은 오래된 문장들을 새롭게 배워보고 싶다.


수로 부인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전에 삼척 왔을 때 맛있게 먹었던 메밀 아이스크림과 팥 라테를 호로록 마시고 가열하게 장을 보고 돌아왔다. 길었지만 알찬 하루였다. 뭔가 장을 보면 그날은 내 할 일을 다했다는 느낌? 이만하면 잘했지 하는 느낌이다. 곳간이 든든히 채워져서 그런가.

보통 마트에 참소라나 광어회 정도만 있는데 오늘은 우럭+광어회를 같이 팔길래 하나 남은 거 얼른 집어왔다. 곰피랑 곱창김에 싸서 먹으니 사치스러울지언정 식감이랑 맛이 굉장했다. 앞으로 회는 이 조합이라며 무무와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

화요일이 된 오늘은 <흑백요리사>가 공개되길 기다리며 오전에 경제 신문 읽고, 책 보고, 글 쓰고, 둑방길로 운동을 다녀왔다.

사천면 근처에는 딸기 농장이 많아서 자기 이름을 붙인 '김 00 딸기', '이 00 딸기', '문가네 딸기' 등등 다양한데 오전이 지나면 매진이다. 여러 군데 먹어보고 제일 입에 맞는 집 찾아놨는데 2시에 가니 이미 절판이라 명주도서관에서 책이나 두 권 빌려왔다.

원래 어떤 값비싼 음식도 '제철'과 '산지'는 못 이긴다고 했는데... 다음 주에 떠나는데 이렇게 되니 갑자기 딸기가 엄청나게 먹고 싶어 지는 게 아닌가. 처음 가보는 집 근처 딸기 농장에 가니 다행히 딸기도 남아있고, 덤으로 작은 딸기도 더 주셨다. 가격도 제일 저렴했다. 집에 와서 강원도 두백 감자에 집 앞 농장 싱싱한 딸기 씻어 남편과 간식을 먹었다.


행복한 소소한 일상!

특별할 것도 대단한 것도 없는 하루였다. 별 일이 없었다는 게 가장 큰 포인트다.


날이 좀 풀려 철새가 많이 없길래 아쉬워했더니 조금 올라가자 '비오리' 떼가 반겨주었다.

보고 싶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