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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log Oct 15. 2024

놀이터로 출근합니다

그해 봄은 참 길고도 잔인했다.


전에 앓았던 병이 재발하면서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수월하게 넘길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여러 가지 부작용에 시달렸다. 힘든 치료를 버텨내려 수면제와 항생제를 달고 살았고, 덕분에 몸과 마음은 한껏 너덜너덜하고 늘 몽롱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의 터널을 지날 때 한 줄기 빛이 되어준 것은 책과 글이었다. 쉬는 기간 동안 내가 원하는 책들을 정말 원 없이 보았고, 한번 읽고 손에서 놓기 아쉬운 문장들을 만나면 정성껏 노트에 옮겨 적었다. 예쁜 글씨와 따뜻한 마음들이 고스란히 내 세상 속에 담기는 느낌이었다.


특히 간결한 문장으로 영혼을 치료해 주는 시집을 즐겨 읽었는데, 정일근 시인의 「어머니의 그륵」이라는 글을 필사하며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했다. 시인 소개에 작은 별표 표시로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이라고 적혀있는 것이다. 얼굴도 모르는 작가였지만 나는 턱을 괴고 가만히 앉아 시인의 마당을 상상해 보았다. 아담하고 낮은 집에 잘 가꾸어진 정원일까. 인적 드문 시골길에 듬성듬성 들꽃이 핀 마당일까. 그 마당의 어느 한 곳에는 시인이 마음껏 시를 구상할 수 있는 조그마한 작업실도 있을 것이다.


보통 책에 나오는 작가의 약력이라 함은 그가 졸업한 학교와 수상 경력, 발간한 책 등을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아무런 설명 없이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이라니. 낭만적이었.      


나는 거실로 달려가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치료하면서 멀리 갈 수 없어 낮에 잠시 햇살을 쐬며 앉아있던 놀이터와 벤치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매일 놀이터로 출근하는데...’

하루 일과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 점심 먹고 잠시 공원에 나갔다 오는 게 전부였던 때였다. 나는 마당으로 출근한다는 정일근 시인처럼 공식적으로 놀이터로 출근하는 사람이 되어보기로 했다.


‘나는 지금 다른 일은 할 수 없으니 이렇게 앉아만 있는 거야.’라는 슬픈 생각이 ‘나는 매일 햇살이 가장 좋은 시간에 놀이터로 나와 출근 도장을 찍는 거야.’라는 밝고 희망찬 생각으로 바뀌었다.

삶의 의지를 다지면서 나의 놀이터 출근기는 시작되었다.      




벚꽃이 한창인 사월에는 낮 두 시쯤 햇살이 가장 포근하게 느껴졌다. 인조 잔디가 깔린 작은 놀이터에는 아파트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운동기구가 몇 개 있었고, 농구 골대도 설치되어 있었다. 왼편으로는 일렬로 나무로 만든 벤치가 놓여 있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거실 소파에 앉아 공원을 내려다보기만 했는데, 약기운이 조금 빠져나가면 다행히 외출이 가능했다.

나는 매일 똑같은 운동복을 입고 햇볕이 제일 잘 드는 의자를 찾아 앉았다. 가늘게 뜬 눈, 잔뜩 움츠린 자세로 햇살을 즐기는 고양이처럼.       

차들의 소음을 막기 위해 높은 방음벽으로 둘러싸인 놀이터였지만, 그 안에도 다양한 세계가 존재하는 듯했다.


하루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와 아이의 엄마, 할머니로 보이는 분이 나와 있었다. 아이가 천천히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탄성이 터졌고, 두 명의 어른은 박수와 격려를 보내며 아이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몇 걸음 못 가 아이가 넘어지면 어른들은 재빨리 달려와 아이를 일으키고 잘했다고, 괜찮다고 다독여주었다. 잘 걷는 것만으로 다 큰 어른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재미있었다.

‘내가 어릴 적 첫걸음마를 떼었을 때 우리 부모님도 저렇게 기뻐하셨겠지?’

모든 아이들의 처음이 누구에게나 환영받고 사랑 가득한 순간이기를 진심으로 빌었다.     


어느 날은 코트에서 홀로 농구하는 학생이 보였다. 공이 바닥을 튕기며 올라오는 소리가 경쾌하게 느껴졌다. 요즘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방과 후에 학원이나 PC방을 갈 것만 같았는데, 이렇게 공을 들고 홀로 운동장에 나와 야외 활동을 하는 건실한 학생이라니 신기했다. 학생은 그렇게 한참을 농구공과 씨름하며 땀을 흘렸다.

문득 꿈 많고 웃음 많았던 청소년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나의 인생 계획에 투병은 없었는데 난데없이 찾아온 불청객과 싸우느라 아까운 청춘이 다 가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졌다. 그래도 놓지 않는 목표가 있다면 언젠가 다시 건강해져서 누구보다 아름답고 찬란한 두 번째 스무 살을 맞이하고 싶다는 것이다.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라는 말을 나는 믿는다.     


그곳에서 꽤 자주 마주치는 분들도 있었다. 조금 이른 시간이나 늦은 오후에 공원에 나가면 자녀들을 배웅하고 들어가는 어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누구 엄마, 누구 엄마. 호칭은 대부분 그랬다. 사실 내 나이와 크게 차이가 나 보이지는 않는데 그들은 이미 학부모였다.

일찍이 ‘현모양처’가 꿈이었던 나는 그냥 겉으로 느껴지는 모습만 보고 그녀들의 여유가 참 부러웠다. 단란한 정에 남편과 자녀가 있고, 저녁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오붓하게 식사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따뜻한 그림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몇 년 후 가정을 꾸려 생활하게 되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일은 진정한 ‘위대한 일상가’의 길임을 깨달았다. 그녀들의 짧은 만남은 그저 그런 수다의 장이 아니라 바쁜 생활에 달콤한 활력을 불어넣는 생산적인 여유였던 것이다.     


어르신들은 놀이터를 더 다양하게 활용했는데, 공용 운동기구를 번갈아 이용하다가 이내 벤치로 모여 앉는다. 그들은 햇살이 가장 좋은 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잠시 딴생각을 하다 보면 한 분, 두 분 나와 어느새 옆자리 벤치를 가득 메우고 앉아 계셨다.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들이 알록달록 눈에 잘 띄는 옷을 입고 한 줄로 쪼르르 앉아있는 모습은 밑에서 보아도, 창문 위에서 보아도 참 귀엽다. 늘 같은 시간에 나와계시는 분들이라 누군가 며칠 동안 보이지 않으면 서로 걱정도 해주고, 안부를 묻곤 하신다.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매일 같이 햇빛도 쐬고 바람결을 느끼는 벗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모습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재활훈련을 하는 분들이다. 한쪽이 마비되어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는 할아버지, 보행 보조기로 공원을 몇 바퀴째 돌고 있는 어르신, 휠체어에서 일어나 더듬더듬 걸음을 옮겨보는 아저씨도 있었다.

손발의 움직임은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어딘지 모르게 나와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멀리 가지 못하고, 집 앞을 뱅글뱅글 돌면서도 삶의 의지와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 사람들. 흐리고 바람 부는 날에도 어김없이 나와서 조금 더 나아질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 나도 그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해 봄 우리 동네 작은 공원에는 아이도, 어른도, 노인도 아닌 그 어디쯤에 애매하게 걸쳐진 내 모습이 있었다. 아무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무나’가 된 것 같아 가끔 서럽기도 했지만, 몇 년이 흐른 지금은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예쁜 가정을 꾸려 잘 지내고 있다.


매년 봄바람이 불어오면 놀이터에 우두커니 앉아 햇살 속에 머물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고단하고 힘든 계절이었지만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보며 때론 감상에 젖기도, 같이 힘을 내기도 했다.


솔발산 산자락 어느 마당으로 출근한다는 시인과 같이, 그해 봄 작고 푸른 놀이터가 나의 유일한 직장이고 가장 큰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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