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30. 우천 취소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한화와 그냥 어떠한 관계가 맺어져 있음을 깨달았다.
하필 한화의 경기만 우천취소됐다. 부상으로 많이 망가진 이 팀에겐 호재다. 다른 팀을 늦게 상대하는 게 좋다. 할 일을 마치고 느긋한 마음으로 잠시 타 팀 경기를 시청했다.
롯데와 NC는 도합 19명의 투수를 쏟아부으며 혈전을 펼쳤다. LG와 KT는 11회말까지 혈전을 펼치며 끝내기 홈런으로 경기를 마무리 했다. 확실히 한화보다 잘하고 경기를 재밌게 한다. '야구는 역시 홈런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한화의 타자들의 홈런 갯수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대호의 오늘 홈런 갯수와 김태균의 올 시즌 홈런 갯수가 동일할거다. 내일도 비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타 팀의 야구는 확실히 더 좋은 퍼포먼스를 보인다. 그렇다고 더 몰입하지는 않았다. 다소 건조한 감정을 느꼈다. 몰입감은 퍼포먼스에 비례하는 것 같지는 않다. 도파민을 자극하지 못한다. 축구를 시청하거나 다른 문화 예술 활동에 참여할 때와는 다르다. 운영의 묘미를 누리며 그 시간을 즐기는, 그런 즐거움을 잘 느끼지 못 하겠다. 야구 그 자체를 감상하기보다 팀과의 관계와 의존하는 정도가 높은 것 같다.
결핍감을 느끼는걸까. 현재의 내가 살짝 거지 같은 부분이 물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내 인생에 제법 만족하던 순간들에도 야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똑같았다. 야구 그 자체에 대한 매력을 느끼기보다 한화 이글스에 대한 몰입감이 나를 티비 앞, 경기장 관중석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다, 거의 늘.
그러니까 이건 오랜 친구 관계 같은거다. 친구가 정말 깝깝하고 부진해도 상황을 돌봐주고 쓴 소리도 한다. 잘 어르고 달래보기도 한다. 상대방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일은 정말 드물다. 때로는 이 지긋지긋한 관계에 질려서 연락을 뜸하게 하지만서도 차마 손절은 못하겠는 그런 관계인거다.
다양한 추억이 쌓이며 라포가 형성되었는데 어떻게 하루 아침에 그 기나긴 관계를 끊겠는가. 그래서 어제 져도 오늘 다시 기대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