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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지아 Oct 16. 2024

시간을 되돌리는 방법

후회를 덜 후회하기

나는 지인들 사이에서 소문난 드라마 덕후다. 

그 말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장르불문 여러 장르의 드라마를 보고, 봤던 드리마를 또 보고 블로그로 드라마 해석은 물론이고 작가의 숨겨진 의도까지 검색해 보기 때문이다.

심지어 드라마 내용을 요약해 설명하는 것까지 잘한다. 왜냐, 내가 그 사람으로서 살아봤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내가 드라마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사람으로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잠시나마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짜릿한가. 

게다가 그 인생의 결말까지 알 수 있다니, 불안 장애를 겪고 있는 나에게 이보다 마음 편안한 일이 있을까?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관에 갈 때는 굳이 결말을 찾아보고 가지는 않지만 우연히 스포일러를 듣게 되면 눈살을 찌푸리기는커녕 속으로 대환영을 외친다.


다만 다른 드라마 덕후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결말을 알고 보는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정확하게는 결말을 알고 보거나 이미 봤던 드라마를 다시 보는 것을 좋아한다.

결말을 모르는 드라마의 경우, 결말을 보기가 두려워 시작부터 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바라던 결말이던 아니든 간에 불안해서 끝까지 볼 자신이 없다.

아무리 재밌다고 소문난 드라마일지라도 아직 종영하지 않았다면 절대 시작하지 않는다. 그래서 본방송을 매번 놓치고 만다. 일부러.


좋은 점이 있다면 두 번, 세 번 정주행 할 때 몰입이 더 잘 된 다는 것, 그리고 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이건 여러 번 시청해서 일 수도 있지만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가 되어서 또는 주인공과 같은 상황에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나이가 되었을 때쯤 다시 보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드라마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빙의가 된다. 

빙의가 되는 대상은 주인공일수도 조연 혹은 엑스트라일 수 있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결말까지 다 보고 나면 만약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굳이 저런 선택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등 여러 생각에 빠진다. 그러면서도 결국엔 이해하게 된다. 

'저 사람(역할)에게는 그 선택이 최선이었겠지.'


반면에 나는 지금 내 모든 선택을 후회하고 앞으로의 선택도 망설이고 있다. 

작가의 상상으로 만들어진 주인공보다 나 자신을 더 이해할 수 없다.

절망적이게도 나에게 관대하지 못해 그동안 좋은 기회를 놓친 적이 많다. 물론 좋은 기회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울증 진단을 받은 후부터는 거의 매일 지나간 일들에 대한 후회로 머릿속을 채운다.

아주 작은 선택, 심지어 어제 먹은 점심메뉴까지도 후회하곤 했다.

'이렇게 배 아플 줄 알았다면 매운 거 먹지 말걸'

이렇게 잦은 후회를 하는 걸 알기 때문에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면 둘 중 무엇을 선택하더라도 내가 후회할 것을 안다. 그때마다 덜 후회할 것 같은 것을 선택하자는 생각으로 선택한다.

더 좋아하는 것, 지금 더 끌리는 것 말고 나중에 덜 후회할 것 같은 것.


시간을 되돌리는 것 말고는 지나간 과거를 바꿀 수 없다. 과거를 후회하지 않을 방법도 없다.

다만 내가 알게 된 후회를 덜 후회하는 방법은 과거의 선택에 후회 없게끔 앞으로 해나가는 것.

내가 찾은 방법은 이것뿐이다. 그래서 과거의 후회되는 일로 머릿속이 복잡해질 때면 속으로 되뇌게 되는 말이 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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