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커피

by 윤군

남자에게 커피는 단 한 가지였다. 쓴 것.


처음 마셨던 커피는 헤이즐넛이었다. 야자 시간, 교실 안에 은은하게 퍼지는 그 달콤한 향기에 홀린 듯했다.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친구와 무려 식권 하나의 빅딜을 하고 얻은 한 잔. 한 모금을 마시는 순간 남자는 생각했다.


‘속았다.’


열일곱 인생의 어떤 기념비적인 사건이 될 뻔했던 그의 첫 커피는 헤이즐넛 향기의 십 분의 일만큼도 달콤하지 않았다. 그냥 썼다. 식권이 아까워서 한약을 먹듯이 코를 막고 한 번에 삼켰다. 빈 잔에서 달콤한 향기가 올라왔다. 후각과 미각의 괴리감에 어떤 배신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날, 남자가 겪은 ‘배신’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삼십 분쯤 뒤부터 아파오는 배를 살살 달래며 수도 없이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잘 시간을 훌쩍 넘긴 새벽 세시에서야 겨우 잠에 들었다. 남자는 몇 시간 잠들지도 못한 채 일어나 퀭한 얼굴로 세수를 하며 다짐했다.


‘이게 다 그 커피 때문이야. 다시는 먹지 말아야지.’


그의 첫 커피는 썼고, 아팠으며, 피곤했다.




“진짜? 커피를 한 번밖에 안 마셔봤다고?”

“응. 10년쯤 전인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

“헐. 뭐 마셨는데?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카라멜 마키아또?”

“헤이즐넛. 향이 좋아서 마셨는데 그냥 쓰기만 했어.”

“아... 헤이즐넛이 보통 저급 원두에 향만 입힌 게 많아. 왜 고기도 질 좋은 건 생고기로 먹고 질 나쁜 고기는 양념해서 먹잖아.”

“그래?”

“그러니까 오빠는 아직 제대로 된 커피를 안 마셔 본 거야. 가자. 내가 살게.”


10년 동안 거의 찾을 일이 없었던 커피 전문점. 테이블에는 ‘에티오피아 무슨체프’라는 이상한 이름의 커피가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었다.


“대부분 커피는 원산지가 그대로 이름으로 쓰이거든. 얘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지역에서 나온 원두로 만든 거야. 꽃향기가 살짝 돌고, 초콜릿처럼 달콤한 맛이랑 약간 신맛이 나지. 향은 어때?”

“향은 괜찮네.” ‘꽃향기라기엔 좀 애매하지만.’

“마셔봐. 얼른.”


계속되는 여자의 재촉에 남자는 조용히 한숨을 쉬고 한 모금을 마셨다. 썼다. 그럼 그렇지. 초콜릿처럼 달콤한 맛은 무슨.


“어때? 끝 맛이 달콤하지 않아?”


창 밖에는 해가 지고 있었다. 창가에 앉아 고양이처럼 가만히 눈웃음을 짓는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눈 모양만으로 말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런 뜻이었겠지. ‘맛있지? 맛있지? 빨리 맛있다고 말해.’ 저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여자의 웃음에 쓰기만 한 커피가 달콤해졌다.


“써.”


입을 삐죽거리는 여자를 보며 다시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았다. 남자의 두 번째 커피는 처음처럼 썼지만 동시에 달콤했다. 굳이 평을 하자면 마실만 했다. 하지만 남자는 앞으로 커피가 더 달아질 거란 걸 알았다. 아마도 여자의 웃음처럼.




처음 헤이즐넛을 마시고 10년이 지나서야 남자에게 한 종류의 커피가 더해졌다.

쓴 것과 단 것.

혼자 마시는 것과 함께 마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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