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이장애 극복과정
목표, 하고 싶은 일 없이 지내다 보니 '그냥' 살게 되었다. 시간을 허무하게 흘러 보낸 것이다.
자연스레 내 삶에 지루함이 찾아왔고, 지루함을 극복할 가장 쉬운 방법으로 먹는 것을 택했다.
끊임없이 먹다 보면 2-3시간이 자연스레 지나가 있다. 배부름에 고통스러워하다가
SNS 파도 속에 허덕이는 나를 발견하고 더부룩함을 애써 잊으며 잠든다.
근데 무의식의 나도 알고 있었나 보다. '이렇게 살면 안 돼.', '네가 원하는 20대는 이런 삶이 아니었잖아.'
라고 수백 번 외치지만 1차원적 욕구는 그 외침을 묻어두기 바빴다.
아마도 지금 모습에 만족스럽지 못해서 그러하겠지. 날씬했던 그때와 달라진 몸 사이의 인지부조화로
스스로를 어둠 속에 가두는 자신이 안쓰럽달까.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과거에는 이틀에 한 번 꼴로 약속이 있었다. 사교 모임을 가면 곧잘 주도권을 잡곤 했다. 외적 모습에서 오는 자신감 때문인지 주목받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있는 약속도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취소하곤 한다. 변화한 나를 보며 그들이 어떤 생각할지 지레짐작하며..
홀로 사색하는 시간도 많아져서일까, 여느 때와 같이 퇴근 후 저녁(이라 부르고
콘소메맛 꼬북칩 한 봉지와 쿠앤크 아이스크림 한 통이 끼니인)을 먹은 후였지만,
백색소음용 TV도 켜지 않고 가만히 의자에 앉아 있었다.
떠오른 생각은 하나였다.
.
.
'벗어나고 싶다.'
어디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외로이 살아가고 있는 내 처지? 동태눈으로 마지못해 다니는 회사?
그 생각의 꼬리를 물며 가다 보니 도착한 지점은 깊은 곳에 숨어있는 무력감이었다.
그래, 무력감에서 벗어나고 싶다. 근데 어떻게? 좀 더 파고들어 봤다. 평소엔 회피하고 싶었던 내 마음을
이제는 들여다봐야 할 차례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 둘 실천함으로써 무력감에서 벗어나려 한다.
하지만 좀처럼 머릿속에서 마땅한 게 떠오르지 않더라. 인생을 28년이나 살았는데도 좋아하는 일 한 가지 떠올리기도 힘들다니..
그래서 난 지난 20대의 끝자락에서 불안과 설렘 속에서도 행복을 찾았던 20대 일생을 회상하려 한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발자취를 따라가며 기록해 나가면 분명 좋아했던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의 한 페이지를 펼치기도 전에 심장이 떨려온다.
오늘 밤에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지 않아도 되겠다. 공허함이 잠시나마 사라짐을 느꼈다.